성명 | 성배호(成培鎬) |
이명 | 성창여(成昌汝) |
본관 | 창녕 성씨 |
생몰 | 1887년 4월 4일 ~ 1961년 3월 23일 |
출생지 |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죽산리 |
사망지 | 충청남도 아산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성배호는 1887년 4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죽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이명종(李鳴鍾)ㆍ박원식(朴源植)[1]의 권유를 받고 만세시위를 같이 하기로 하고 최응모(崔應模)ㆍ오인섭(吳仁燮) 등과 함께 만세시위 준비에 나섰다. 이들은 우선 독립선언서를 준비하기로 하고 3월 16일 서승태(徐承台)에게 독립선언서를 보여 주며, 일반인에게 알릴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서승태는 3월 18일 자택에서 독립선언서 문구를 다듬은 새로운 문서를 작성했다. 이후 성배호는 이명종, 박원식, 최응모 등과 함께 오인섭의 집에서 독립선언서 510매를 인쇄하여 그날밤 광천리와 옹암리 일대에 배포했다.그러나 거사 전에 불행히 체포된 그는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같은 해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지만 다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1919년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아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1년 3월 2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성배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