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도 미상
[clearfix]
1. 개요
고대 중국의 후한 말 삼국시대 인물이며 자는 덕림(德林). 본명은 불명으로 성씨 석씨(石)와 호인 한빈으로 전해진다.2. 행적
양주 안정군 사람으로 본래 성은 석(石)씨이며, 건안[1] 초에 삼보[2]에 머물렀고 장안의 유학자인 난문박에게 가서 배워 시경, 서경 등을 정밀히 하기 시작했으며, 후에 내사를 좋아하게 되어 난문박의 문도들 중에서 가장 현묘하고 묵묵했다.211년 관중에서 난리가 일어나자 남쪽의 한중으로 피난했으며, 생업을 하지 않고 처자를 거느리지도 않았다. 항상 노자오천문과 내서를 밤낮으로 읽었으며, 220년 한중(장로)이 격파되자 무리를 따라 장안으로 돌아왔다.
맛을 따라 먹지 않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항상 헤진 베를 꿰서 옷을 만드는 등 가난한 생활을 했으며, 몸은 더 나은 것이 없는 것과 같으면서 눈은 보는 것이 없는 것과 같았다. 홀로 궁벽한 작은 집에 살면서 친한 사람도 없었으며, 다른 사람이 옷이나 먹을 것을 줘도 받지 않고 군현에서 홀아비에 궁벽하다고 해 매일 5승의 곡식을 지급했지만 먹기에 부족했다.
비틀거리면서 구걸했지만 많은 것을 달라고 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이 성과 자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그의 호를 한빈(寒貧)[3]이라 했다. 그를 본래부터 아는 자가 있어 가서 그를 살피고 구제하면 절하고 무릎을 꿇어 사람들이 그를 미치지 않았다고 했으며, 거기장군 곽회가 장하다고 여겨 그를 불러 원하는 바를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곽회가 육포와 건량, 의복 등을 지급했지만 의복은 받지 않고 육포 한 덩이와 건량 1승만을 받는 것에 그쳤다.
3. 창작물에서의 석한빈
창천항로에서 은둔 명사로 나와 조조가 찾아가서 문답을 주고받는데, 노자의 말은 인용해서 자신은 3개의 보물을 손에 넣고 죽을 것이라면서 타인보다 앞서지 않는 삶,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생활,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얘기했다.조조가 자신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하자 마찬가지라면서 자신이 살아가는 힘에 한 점 의문도 품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굴이 순욱처럼 묘사된다.[4] 원래도 닮게 묘사된 편이며, 조조도 "방해를 했네,
[1] 196년 ~ 220년이다.[2] 후한의 수도권이라 할 수 있는 경조윤, 우부풍, 좌빙익 일대를 말한다.[3] 호의 의미는 춥고 빈한함. 그야말로 은사인 그의 신조를 알 수 있는 작명이다.[4] 조조로부터의 시각처럼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