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20 00:15:04

산미겔데투쿠만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투쿠만주의 도시
산미겔데투쿠만
San Miguel de Tucumá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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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구역 투쿠만
시장 Rossana Chahla
면적 2,247㎢
인구 598,835명[A]
도시권 1,059,327명[A]
인구 밀도 6,656.78명/㎢[A]
시간대 UTC-3

1. 개요2. 어원3. 역사4. 주요 명소5. 자매도시

1. 개요

아르헨티나 투쿠만의 주도로 아르헨티나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자 아르헨티나 북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라 북부의 수도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한 아르헨티나 독립 선언이 산미겔데투쿠만에서 이루어져서 공화국의 정원, 아르헨티나 독립의 요람이라는 별명이 있다.

2. 어원

산 미겔은 스페인어로 대천사 미카엘을 의미하며 투쿠만은 케추아어로 국경지역을 의미하는 투쿠마나오(tukkumanao)에서 왔다.

3. 역사

산미겔데투쿠만은 스페인의 귀족이자 콩키스타도르인 디에고 데 발라로엘이 건설한 도시이다. 하지만 산미겔데투쿠만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일부인 칼차키족의 끊임없는 습격을 받았으며 1578년에는 도시가 거의 함락 될 뻔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하늘에서 예수의 12제자인 사도 시몬유다 타대오가 불붙은 칼을 휘두르며 칼차키족을 몰아냈다고 한다.[4] 하지만 계속해서 칼차키족이 도시를 습격하자 결국 도시를 이전하였다.

1812년 9월 24일 아르헨티나 독립 전쟁에서 가장 결정적인 투쿠만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피오 트리스탄이 지휘하는 왕당파군은 마누엘 벨그라노가 지휘하는 독립군을 거의 괴멸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그래서 독립 정부는 마누엘 벨그라노 보고 코르도바로 후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은 벨그라노에게 여기서 저항하라고 요구했고 이들의 결연한 의지에 감명받은 벨그라노는 현지 민병대의 조력을 받아 적군의 후위를 습격하였고 기습에 놀란 스페인군은 적전도주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스페인군을 아르헨티나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그 후 1816년 7월 9일 산미겔데투쿠만에 위치한 한 저택에서 아르헨티나의 독립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도시는 현대화되기 시작했다. 1900년대 초에 400헥타르의 땅이 도시에 편입되어 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1870년대부터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이민자들이 점차 유입되었고, 1910년대 이후에는 주로 시리아와 레바논 출신으로 오스만 제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점점 더 많이 유입되었다. 또한 유럽과 중동에서 박해를 피해서 온 유대인들도 있었다. 또한 설탕 산업이 발전하여 설탕 공장 소유주들은 소유한 호화로운 개인 저택을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6년에 설탕 공장이 폐쇄되고 그에 따른 사회적 위기가 닥치면서 산미겔데투쿠만의 주택 위기가 더욱 심화되었고, 도시 곳곳에 "빌라 미세리아스"(빈민가)라고 불리는 판잣집 마을이 확장하기도 했다.

4. 주요 명소

  • 카사 데 투쿠만 (Casa de Tucumán) : 아르헨티나 독립 선언이 발표된 저택으로 현재 이를 기리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 독립 광장 (Plaza Independencia) : 투쿠만의 주요한 건물들과 관공서들이 들어선 광장.
  • 성모 마리아 대성당 (Catedral de Nuestra Señora de la Encarnación) : 1856년에 만들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성당
  • 산 프란치스코 교회와 수도원 (Iglesia y convento de San Francisco) : 1767년 지어진 교회와 수도원으로 내부에는 아르헨티나 독립 선언서가 서명된 테이블과 투쿠만에서 게양된 최초의 아르헨티나 국기가 전시되어 있다.
  • 7월 9일 공원 (Parque 9 de Julio) : 아르헨티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200헥타르의 공원.

5. 자매도시



[A] 2022년 1월 1일 기준[A] 2022년 1월 1일 기준[A] [4] 현재 사도 시몬과 유다 타대오는 산미겔데투쿠만의 부수호성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