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1-05 20:09:42

사도적 고려


1. 개요2. 내용3. 이후 성공회의 반응

1. 개요

사도적 고려(Apostolicae Curae)[1]는 교황 레오 13세가 성공회의 사도계승의 부정을 선언한 회칙으로, 1896년 9월 13일에 반포되었다. 성공회 안에서는 1550-1552년에 처음 도입되고 가톨릭 신자인 메리 여왕이 통치하는 시대에 폐지된 에드워드 6세의 서품 예식서 (Ordinale)는 마침내 1559년부터 성직 서품에 쓰였다. 성체성사에 관련된 진술, 특히 미사의 희생제사로서의 성격과 관련하여, 이 서품 예식서를 따르고 있는 성공회 서품은 로마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2]

2. 내용

아래 한글번역은 '하인리히 덴칭거 :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 덴칭거 책임번역위원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BCK), 2017'에 의한 번역이다. 라틴어 원문영어역본도 참고할 것.


각 성사의 거행과 집전에 관한 예식에서 우리는 질료와 형상[3]이라고 일컫는 의례적인 부분과 본질적인 부분을 올바로 구분한다. 그리고 모든 이들은 신약의 성사들이 보이지 않는 은총의 감각적이고 효과적인 표지로서, 그것들이 일으키는 은총을 표시하고 또한 그것들이 표시하는 은총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표지는 온전한 본질적 예식, 곧 질료와 형상 안에 포함되어야 하기는 하지만, 특별히 형상에 속한다. 왜냐하면 질료는 자체로 규정되는 부분이 아니라 형상을 통하여 규정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품성사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 성사의 수여에서 질료는, 이 자리에서 고려되는 한, 안수이다. 그런데 안수는 자체로는 아무런 결정적인 것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마찬가지로 특정한 성품들을 위해서도 또 견진성사를 위해서도 사용된다.

최근까지 도처에서 성공회 신자들이 사제 서품의 고유 형식으로 사용하는 말마디들 곧 "성령을 받으시오.”는 사제품 또는 그 은총과 권한 특히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희생 제사에 대한 단순한 기억”이 아닌 그 희생 제사에서,“주님의 참된 몸과 피를 축성하고 봉헌하는”권한을 결코 옳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은 그 후에,“사제의 직무와 과업을 위해”라는 말들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성공회 신자들 자신이 그 첫 형식이 결함이 있으며, 사안에 적합하지 않았음을 보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한다. 그런데 이 첨가가 형식에 정당한 의미를 부가할 수 있기 위해서라면, 「에드워드의 서품 예식서」(Ordinale Eduardianum)가 수용된 이후 한 세기가 이미 경과한 터이기에 너무 늦게 도입된 것이다. 왜냐하면 교계 제도가 폐지된 이후에 더 이상 서품권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교 서품도 유사하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으시오.." 라는 정식에 “주교의 직무와 과업을 위해" 라는 말들이 뒤늦게 첨부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에 관하여 본인이 곧 말하게 될 것과 같이, 가톨릭 예식과는 다르게 판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감사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을 인용한 것도 사안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마찬가지로 최고의 사제직을 설명하는 언사들을 축소시켰기 때문이다. 확실히 여기에서는 주교직이 사제직의 보충인지 다양한 직무 가운데 하나인지, 또는 이른바 비약하여, 사제가 아닌 사람에게 주어지는 서품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그리 중대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것 <주교직>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리스도께서 설정하셨기 때문에 실제로 성품성사에 속하며 탁월한 지위에 있는 사제직이다. 주교직은 거룩한 교부들의 표현법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례 관습에서도 최고의 사제직, 거룩 직무의 총체라고 불린다.

이러한 사실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성공회 예식에서 성품성사와 그리스도의 참된 사제직이 완전히 삭제되었고, 더구나 이러한 예식의 주교 서품에서 사제직이 어떠한 방식으로도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주교직은 어떤 방식으로도 참되고 적법하게 부여될 수 없다. 게다가 거룩한 성찬례희생 제사를 위한 봉사자를 축성하는 것이 주교직의 첫 직분에 속하기 때문이다.

성공회 「서품 예식서」에 대한 올바르고 온전한 평가를 위해서, 몇 가지 부분에서 비난받은 것을 제외하고, 어떤 상황에서 그것이 만들어졌고 공식적으로 효력을 갖게 되었는지를 어떻게 올바로 평가할지는 확실히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것을 각각 추적한다는 것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며,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각 시기의 역사는, 「서품 예식서」 작성자들이 가톨릭 교회에 대해 어떤 기본 입장을 가졌는지, 다른 분파들로부터 어떤 지지자들을 끌어들였는지, 마침내 그들의 계획을 어디에 연관시켰는지를 분명히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신앙과 예식, 신앙의 법과 기도의 법 사이에 떼어 놓을 수 없는 어떤 연계가 있는지 실제로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 전례의 본모습을 복구한다는 핑계로, 다양한 방법으로 전례의 질서를 개혁자들의 오류들로 변형시켰다. 따라서 성공회의 전반적인「서품 예식서」에는 제사, 축성, 사제직, 제물을 축성하고 봉헌하는 권한에 대한 명백한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가톨릭 예식의 전혀 배척되지 않은 기도문들에 남아 있는 이 요소의 모든 흔적이 의도적으로 삭제되었고 본인이 앞서 다루었던 것이 폐지되었다.

서품 예식서의 본디 특성과 정신은, 그것들이 말하듯이 그 자체로 명백하다. 그러나 「서품 예식서」가 처음부터 이러한 결점을 수반했기 때문에, 서품 때 사용하기에 어떤 방식으로도 유효할 수 없었다면, 그것은 앞으로도 시간이 흘러간다 해도 그런 상태이기에 절대로 유효할 수 없다. 찰스 1세 시대부터 「서품 예식서」에 첨가를 이루도록 한 어떤 것을 제사와 사제직에서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던 이들의 수고가 헛되었다. 최근에 모인 그리 많지 않은 성공회 신자들은 마찬가지로 헛수고를 하고 있으며, 이 예식서가 건전하고 올바른 의미로 이해 되고 그러한 방향으로 이끌린다고 생각하고 있다.

본인이 말하듯이, 이러한 시도는 헛된 것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는 또한 현재의 성공회「서품 예식서」에서 몇 가지 표현들이 이중이 의미로 나타난다면, 이 표현들이 갖는 의미를 가톨릭 예식에서 그대로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예식이 한 번 갱신되면서 성품성사가 부인되거나 왜곡되었고 축성과 제사에 모든 언급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성령을 받으시오"라는 이 표현은, 성령이 성사의 은총으로 영혼에 부어지기 때문에 더 이상 지속성이 없다. 마찬가지로 "주교나 신부의 직무와 과업을 위해”라는 표현도, 그리고 다른 유사한 표현들도,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실재가 없이 이름으로만 남아 있기 때 성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서품이 성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지향의 결핍과 이러한 가장 내면적인 형식의 결점이 연계되어 있다. 생각이나 지향에 대해서는 교회가 판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 자체로 어떤 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것이 표출되는 한도 내에서 그것을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 성사를 거행하고 집행하기 위해 진지하고 규정에 맞게 상응하는 질료와 형상을 사용했을 때, 사람들은 그에 대해, 교회가 행하는 것을 그가 분명히 행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받아들인다. 성사가 이단자들이나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직무를 통해서일지라도 만일 가톨릭의 예식에 따라 집전된다면 참으로 성사라고 견지하는 가르침은 이러한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와 반대로 교회에서 인정하지 않은 다른 예식을 도입하고, 교회가 행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제정에 의해 성사의 본질에 속하는 것을 거부하려는 노골적인 의도에서 예식이 변경된다면, 이것은 성사를 위해 필요한 지향이 결핍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성사에 반대되고 모순되는 지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4]

... 성무성성[5] 자문위원들은 제출된 사항이 이미 오랫동안 사도좌에 의해 완전히 인식되었고 되었다고 만장일치로 확인하였다. ... 이와 같은 사안이 본인의 권위로써 다시 선언되는 것을 본인은 최선책으로 여겼다. ... 따라서 본인은 선임 교황들의 교령들을 분명히 확인하고 갱신하며, 마찬가지로 성공회 예식에서 거행된 서품이 완전히 헛되고, 전적으로 무효였으며 무효임을 자발적으로, 그리고 확실한 지식으로 본인의 권위에 의해 선언하며 천명한다.

3. 이후 성공회의 반응

성공회에서는 처음에 별 반응을 하지 않았으나, 이 회칙이 반포된 바로 다음 해인 1897년에 캔터베리 대주교요크 대주교 공동명의로 <잦아진 훼방>(Saepius Officio)이라는 제목의 교서를 냈다.#[6] <잦아진 훼방>은 사도적 고려의 내용을 일일이 반박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톨릭 교회의 근간을 직접 저격하고 있다. 당시 가톨릭 웨스터민스터 교구장이었던 허버트 본 추기경(Herbert A.H. Vaughan, 1832~1903)은 "교황의 이번 회칙이 성공회 측에 제대로 한 방 먹였다"고 평하며 이 상황을 즐겁게 지켜보고 있었지만, 성공회 신자들이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하자 뒤늦게 웨스트민스터 관구 주교단 명의로 <회칙 '사도적 고려'에 대한 옹호>(A Vindication of Bull 'Apostolicae Curae', 1898)라는 제목의 재반박문을 발표했다. 성공회는 애초부터 이와 관련된 논쟁들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고 그냥 무시하는 중이며, 일부 성직자와 평신도들만 논쟁에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잦아진 훼방>과 각종 문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되는 성공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에드워드 6세 시기부터 사용되어 지금까지 개정되고 있는 성공회 서품 예식서는 성서와 전통이 말하고 있는 내용과 비교, 대조해봤을 때 어떤 문제도 없다고 확언할 수 있다. 오히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 쓰는 성품성사 예식서에서 성서 및 전통과 대치되는 오류가 종종 발견되고 있으므로, 성사의 형상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주장은 자폭행위에 가깝다. 그리고, 가톨릭 역시 시대에 따라 성사의 질료와 형상을 계속 변경해 왔다. 성사의 질료와 형상을 계속 바꿨으니 자신들이야말로 스스로가 행해왔던 성사의 지향이 결핍되었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 아닌가. 즉 성공회의 성품성사가 무효이면, 가톨릭의 성품성사도 저절로 무효가 된다.
  2. 또한, 에드워드 서품 예식서를 가지고 영국 국교회 성직자들에게 처음으로 서품을 준 주교들은 가톨릭, 바로 당신들 쪽에서 적법한 주교품을 받은 성직자들이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예식서에 신학적 문제가 있었다면 당시에 주교들이 몰랐을까? 예식서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주교들이 못 찾았다면 신학에 무지한 바보들 혹은 배교자가 될 사람을 주교로 서품하는 꼴을 가톨릭 교회가 용인한 셈이고, 예식서가 애초에 문제가 없었다면 이는 당연히 합법적인 서품이 된다. 그리고 가톨릭에서도 사도계승이 회복되었다고 인정하는 메리 여왕때도 에드워드 왕의 서품 예식서로 서품받은 주교의 대다수는 별개의 재서품을 받지 않고도 서품을 인정받지 않았는가?
  3. 교황청의 말대로 진정 사도계승이 끊겼다고 해도, 성공회는 사도계승을 인정받을 만한 여러 우회로를 준비해 두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키프로스, 루마니아 정교회는 성공회의 사도계승을 인정하기로 결의했고, 이 결의는 취소되지 않았다. 또한, 1932년부터 성공회는 복고 가톨릭교회와 상통 관계를 맺어 복고 가톨릭교회 주교들을 성공회 주교를 축성하는 데 참여시키고 있고, 1969년에는 유효한 사도계승이 다시 연결되었다고 교황청에서까지 인정할 정도가 되지 않았는가. 이런 사실들을 봤을 때, 성공회는 여전히 사도계승을 유지하고 있는 교회임이 확실하다.

[1] 이하 개요와 번역 문단은 '하인리히 덴칭거 :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 덴칭거 책임번역위원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BCK), 2017(이하 덴칭거)에서 발췌, 주석은 편집자 주.[2] 성공회가 가톨릭과 다른 교파이므로 굳이 인정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교회 일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현대 성공회로서는 유감스럽게 여길 여지가 크기는 하다. 또한 단순히 가톨릭이 감정적이라거나 성공회가 타교파라서만 비판한 게 아니라 신학적 근거를 들어 성공회의 서품방식을 지적한 것이므로 천주교로부터의 인정과는 별개로 신학적 논제가 되는 것이다.[3] 가톨릭 신학에서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질료형상론을 성사를 설명하는 개념으로써 차용하고 있다. 세례성사를 예로 들어보자. 물(질료, Materia)을 단순히 이마에 3번 붓는다고 세례성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세례를 줍니다."라는 올바른 기도문(형상, Forma)을 읽으며 이마에 물을 3번 부어야, 하나의 세례성사 행위가 완성된다. 물론, 여기에 집전자의 의향과 배령자의 마음가짐이 준비되어 있어야 이게 유효한 성사가 된다는 사실은 당연히 그리스도교 신자 모두가 알 것이다.[4] 다시 말해서, 성공회에서 이뤄지는 성체성사와 성품성사는 형상이 크게 손상되어 더 이상은 성사로 볼 수 없고, 이로 인해 자연스레 (에드워드 6세 이후 이뤄진) 모든 서품이 무효가 되고 사도계승도 단절되었다는 것이 가톨릭의 공식 입장이다.[5] 현재 교황청 신앙교리부[6] 그러나 이는 그저 두 대주교의 입장 내지는 신학적 논증일 뿐이고, 성공회 공동체는 교리나 각종 문제에 관해 공식입장을 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양한 성향의 신자가 공존하는 성공회에서 공식 입장을 잘못 냈다가는 그 즉시 교회가 분열되는 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