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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 개요
1. 개요
그리스어 | είδος[1] |
라틴어 | forma |
영어 | form |
한국어 | 형상(形相)[2] |
이데아(idea)로 해석할 수 있다. 플라톤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이다. 그런데 두 철학자가 에이도스(이데아)에 대해 가진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잘 구별해서 사용해야 한다. 참고로 두 단어의 어원은 각각 에이도(eido)와 이데인(idein)인데 둘 다 보다(to see)라는 의미이다. 보편적 단어인 실체와는 다른 개념이다.
주의할 점은 플라톤 철학에서 에이도스가 나왔다고 그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에이도스인 게 아니다. P를 플라톤, A를 아리스토텔레스라 하면 'P에이도스=P이데아, A에이도스=A이데아'이지만, P에이도스≠A에이도스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P이데아도 A이데아와는 다르다. 기본적으로는 이음동의어인데 이 단어가 누구의 철학에서 쓰였냐에 따라 동음이의어란 말.
일반적으로 플라톤 철학에서는 주로 이데아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는 주로 에이도스라고 써서 구분하는 듯하다.
데카르트 사상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쳐 이도스 사상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일부 모태가 된다.
먼저, 플라톤 철학에서 에이도스는 영혼의 눈(이성)으로만 볼 수 있는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데아 항목을 보자. 이 에이도스는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의 한 축을 이루며, 반대 개념으로는 현상이 있다.(현상계↔이데아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에이도스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형상(form)을 말한다. 이 에이도스에 대응하는 개념은 힐레(hyle, matter, 질료)[3]이다.[4] "현실세계가 질료와 형상[5]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주장을 질료형상론, 혹은 형상질료설[6]이라고 한다.
'질료형상론'을 간단히 설명할 때 주로 사용되는 것이 인물 조각상의 예이다. 조각상에서 질료는 대리석이고, 형상(에이도스)은 인물의 형태이다. 즉, 질료는 가공해서 뭔가가 될 수 있는 것이고, 형상은 가능태인 질료를 현실태[7]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질료형상론'이란, 세계는 1.) 질료가 형상을 실현하여 사물(=energeia, 현실태)을 구성한다. 2.) 사물은 또다시 어떤 상위 사물의 질료가 된다. 3.) 반복이라는 시스템에 의해 작동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사족을 달자면 질료+형상=현실태라기보다는 질료→형상=현실태에 가깝다. "질료는 형상(에이도스)을 실현한다."는 목적을 가지는데 이 목적을 실현한 상태를 두고 현실태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힘이 작용하여 점차적으로 형상을 실현해 가는 것이다.
하나 더 주의할 점은 비록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식론적으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에이도스에 대한 두 철학자의 상이한 해석이 서로 상반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플라톤의 이데아의 반대 개념은 현상인데 '현상'은 에이도스라기보다는 그냥 사물에 가깝다. 플라톤이 에이도스를 인지해야 할 진리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도 에이도스는 질료에게 있어서 실현되어야 할 목적이라고 보았다는 점에서는 같기 때문에 오히려 대조 대상보다는 비교 대상으로서 거론되는 편이다.
[1] 고전 그리스어 발음으로 에이도스, 중세 그리스어 발음으로 이도스.[2]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eidos는 forma-形相 혹은 speciebus-種 둘 다의 의미가 있다. 이 항목에서 설명하는 쪽은 전자이다. 또한 여기서 이데아의 의미로 쓰인 形相은 形狀과 形像하고 발음이 같으니 주의할 것. 形像은 figure의 번역으로 쓰인다.[3] 원어 팔레이는 숲의 나무라든가 재목의 뜻이지만 바뀌어 재료, 소재가 된다. 아리스토텔리스에서는 형상(形相)의 대(對)개념, 또는 상대적인 원리이며, 사물의 실체 및 본질을 형상인(形相因), 기체(其體)가 되는 것을 질료인(質料因)이라고 부르는데 이 양자가 결합해 개별적인 것이 성립된다. 하나의 금반지이면 금은 질료이고 원형은 형상을 뜻한다. 형상과 함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중심 개념 중 하나로 형상이 질료의 현실태(가능태가 지닌 변화와 그 능력이 발휘되어 현실화된 상태를 뜻한다. 가능성이 온전한 의미에서 실체화될 때 가능성의 실천을 대표하는 운동, 변화, 활동 혹은 가능성을 완전히 실현해 모든 운동과 변화의 원인이 되는 존재를 가리키고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가능태 혹은 가능태가 지닌 변화하고 실현될 수가 있는 특성이 실현되어 현실화된 상태로 사물이나 존재가 자신의 본질을 완전히 실현한 상태로 더 이상의 변화와 발전이 필요하지 않는 완전한 상태를 뜻한다. 모든 사물은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변화하고 변화는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이동하는데 그 예시로 아이는 어른으로 씨는 꽃으로 되는 것으로 씨가 가능태이고 꽃이 현실태에 해당되고 가능태는 현실태가 있어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순수 현실태는 달리 부동의 원동자라 불리는 것으로 모든 것의 궁극적 목적인으로써 모든 것을 변화시키나 스스로는 순수한 현실태라 변하지 않고 '현실태가 가능태보다 먼저 존재해야 한다'는 전제를 생각해보면 모든 변하는 사물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있어온 모든 것의 원인이자 곧 목적이며 신에 해당되고 가능성이 완전히 실현됨으로써 모든 운동과 변화의 원인이고 변화하는 사물이 거기로 향하는 목적인으로써 작용하고 어떠한 가능태도 포함하지 않는 개념이다.)라면 질료는 무언가로 만들어질 수가 있는 가능태(dynamis.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상태, 예를 들어 아직 X는 아니나 X가 될 수가 있는 능력을 내재했음을 뜻하고 변화의 능력이 있는 요소다. 현실태와 대립해 현실태로 될 가능성이 있는 가능적 존재이고 일반적으로 무언가가 가능할 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모든 '가능성'을 뜻하고 어떠한 형상으로 결정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아직 어떠한 것이 완성 혹은 최종점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여전히 무엇인가를 결여할 수가 있겠으나 이 채워 넣을 수 있는 혹은 실현을 할 수 있는 무엇, 즉 아직 실현의 가능성이 있고 실현되지 않았으나 실현될 수 있는 잠재적 상태 혹은 앞으로 언제고 실현될 수 있고 일정한 실체로 나타날 수가 있음을 뜻하고 사물이나 존재가 지닌 내재적 힘이나 능력, 일정한 실체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능태에는 수동적 및 능동적 두 가지 분류로 나뉘는데 수동적은 아직 무엇이 될지 결정되지 않는 가능성을 능동적은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서양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꼽히며 현실 세계 외에도 가능한 다양한 세계와 현실화되지 않는 상상 속의 세계를 가리킨다. 현대에선 잠재력이라는 의미가 더해짐으로써 어떤 현실적인 결과를 생산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능동적 에너지라는 뜻이 생겼다.) 아리스토텔리스는 이데아라는 궁극적 세계를 상정하고 현실을 부차적 혹은 부족한 것으로 여기는 플라톤의 이상주의에 반박하고 현실의 모습을 긍정하기 위해 질료와 형상이라는 설명 방식을 도입하면서 현실은 질료와 형상의 다양한 결합을 통해 위계적으로 질서 있게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최초의 질료, 즉 제일질료는 어떠한 형상도 가지고 있지 않는 가능태만 지녔다. 달리 내용 혹은 재료, 가공하면 무엇이 되는 원료, 형식을 갖춤으로써 비로소 일정한 것으로 되는 재료이자 물질의 생성 변화에서 여려 가지 형상을 받아들이는 본바탕, 일정한 종류의 사물로 현실화시키는 원리로서 형상과의 결합체, 형상을 얻어 현실의 것이 되는 것 내지 형상이 될 수 있는 가능태, 어떤 형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어떤 가능적 힘이자 원리(반대로 현실태란 그 가능태에 비로소 형상이 실현되어진 어떤 상태로 즉 꽃씨는 반드시 꽃이 되고 달걀은 반드시 닭이 되는 것이 그 예시로 그래서 가능태는 언젠가 현실태가 된다.)를 말한다.[4] 반대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5] 질료의 현실태에 해당된다. 궁극적인 최고의 형상, 즉 어떠한 질료도 지니지 않은 채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을 순수형상이라고 부른다.[6] 세계의 현상과 변화, 그리고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혹은 존재)들은 질료와 형상의 결합이고 질료의 형상은 질료인, 형상인, 동력인, 목적인 4원인실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아리스토텔리스는 세상 만물은 항상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향하는 목적을 갖고 이를 완성하고자 하는 사물들의 작용으로 가득차 있고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모든 사물을 해석하고 만물이 목적에 따라 움직이고 모든 실체는 질료와 형상이 결합된 복합체(어떤 재료에 특정한 모양을 부여해 사물이 생겨났다)라고 주장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가능태와 현실태의 합성으로 이루어져있음을 명제로 삼고 있다 볼 수 있다.[7] 변화, 생성하는 것은 모두 어떤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고 현실태가 그 목적이 된다. 가능태의 최종 목적은 형상이 완전히 실현된 상태인 완전 현실태이다. 형상실현이 진행 상태에 있는 것이 현실태요. 그것이 완료되어 형상이 현현되고 있는 것이 완전 현실태이다. 완전 현실태란 어떤 사물이 가지고 있는 최종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가능태가 완전 현실태를 향해 나가는 이행 과정이 바로 운동이다. 모든 변화와 운동의 궁극적 목표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것으로써 순수 현실태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