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시가 설치된 2004년 이후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사도시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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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佐, ruby=さ)][ruby(渡, ruby=ど)][ruby(国, ruby=のくに)] 佐渡國 / 사도국 | |
기본 정보 | |
별칭 | 사슈([ruby(佐, ruby=さ)][ruby(州, ruby=しゅう)]) 토슈([ruby(渡, ruby=と)][ruby(州, ruby=しゅう)]) |
소속 | 호쿠리쿠도 |
현재 영역 |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섬) |
국력 | 중국(中国) |
행정구역 | 3군 22향 |
주요 시설 | |
코후 | 니가타현 사도시추정 |
코쿠분지 | 사도 코쿠분지 ([ruby(佐渡国分寺, ruby=さどこくぶんじ)]) |
코쿠분니지 | 미상 |
이치노미야 | 와타츠 신사 ([ruby(渡津神社, ruby=わたつじんじ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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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도국([ruby(佐渡国, ruby=さどのくに)], 구자체: 佐渡國)은 호쿠리쿠도 내 사도섬에 있었던 율령국이다.2. 역사
사도국이 성립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701년에 이곳에 사와다군(雜太郡·雑太郡)을 두었고 721년에 사와다군, 카모군(加茂郡), 시모치군(羽茂郡)의 3군으로 나뉘었다. 가마쿠라 막부가 슈고다이로서 혼마씨를 사도에 파견하였다. 동시에 사도에 들어온 고케닌 시부야, 아이하라 씨 등과 함께 센고쿠 시대까지 이들이 사도를 지배했다.에치고국의 다이묘 우에스기 겐신의 뒤를 이은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평정해 혼마씨는 멸망하였고 에도 막부가 사도 봉행소를 두어 사도국을 지배하였다. 유배지로도 악명이 높았던 섬이 되었고, 유배객으로서 많은 귀족들이 사도로 들어왔고 니시미카와 사금산이 있어 예부터 금의 섬으로 알려졌다. 1601년부터 1989년까지 대략 400년간 금을 채광했으며 17세기에는 세계 최대 금 생산지였다. # 사도금광[1]에서 산출된 금은 막부의 재정을 넉넉하게 했다. 1868년 메이지 유신 때 사도 봉행소를 폐지하고 사도현이 되었다. 1871년 1차 부현 통합으로 아이카와현이 되었고 1876년의 2차 부현 통합으로 니가타현에 흡수되었다. 1896년에는 사도 3군(사와다군, 카모군, 시모치군)이 사도군으로 통합되었다.
3. 현재 지명
사도섬에는 철도가 없으므로 철도역 접두어로는 사용되지 않는다.[1] 일본의 광산은 금광이니 은광이니 하는 명칭이 아니라 자원+山으로 표기한다. 예를 들면, 금광: 킨잔(金山), 은광: 긴잔(銀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