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09 20:05:37

변경백국


군주의 호칭에 따른 국가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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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변경백=후작인가?3. 목록

1. 개요

(한국어) 변경백국(邊境伯國)
(라틴어) Marchia
(독일어) Markgrafschaft
(프랑스어) Margraviat
(영어) Margrav(i)ate
군주의 호칭으로 변경백을 사용하는 나라이다. '변경주(邊境州)'나 '변경백령(邊境伯領)' 등으로 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령' 형태의 어휘가 군주에 예속된 제후의 영지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기에 독립적인 세력임을 강조하고자 '변경백국'으로 표기한다고 하지만, 사실 한자 '국(國)'에는 딱히 독립 세력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며 애초에 한자 문화권에서 작위를 받은 제후에게 수여된 것은 '영지'가 아니라 '봉국(封國)'이었다.

참고로 서유럽권의 변경주(후작령)는 Marquisate(영어), Marquisat(프랑스어), Marquesado(스페인어)로 표기한다.

2. 변경백=후작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프랑크 왕국에서는 행정구역 개념으로 Gau(라틴어: Pagus)을 설치하고, 이를 관할하는 관직으로 Graf(라틴어: Comes)를 두었다. 초창기 Graf는 관직이였으므로 프랑크 왕국의 전성기인 6~8세기까진 세습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프랑크 왕국 시절에 변경 지역은 Gau가 아닌 Mark(라틴어: Marca)를 설치하고 Graf를 임명했는데, Mark에는 일반 Gau에 비하면 군사권과 사법권에서의 폭넓은 재량이 인정되었다. 특히 국경을 넘어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특례가 부여되었으며, Mark가 확장될 경우에는 그 예하에 Gau를 신설하기도 했다. 때문에 Mark를 담당하는 Markgraf는 일반적인 Graf보다는 상급의 지위로 인식될 수 있었는데, 프랑크 왕국의 왕권이 약화되고 동프랑크 왕국, 중프랑크 왕국, 서프랑크 왕국으로 분할되면서 지역마다 차이가 생기며 문제가 발생했다.

서프랑크 왕국에선 9세기 말부터 왕권이 약해지며 Comes(Graf) 관직이 세습하기 시작했고 11세기 들어서면 이미 세습 작위화가 완료된 상태였으나, 변경주(Mark)에는 군주의 권한이 일부 위임되는 만큼 국왕이 직접 통제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 Marquis(Markgraf) 만큼은 11세기까지도 세습이 진행되지 않았다. 또한 독자 세력화를 노리는 야심가의 관점에서도 굳이 국왕의 간섭을 불러올 위험성이 짙은 Marquis를 자처할 이유는 없었기에 서유럽에서 변경주는 실질적인 독립국가로 기능한 사례가 없었다.[1] 그러다가 12세기에 왕권이 또다시 약화되면서 점진적으로 백작(Comes)과는 별개의 직위라는 인식과 함께 세습 작위화가 진행되었고, 14세기에는 법적으로 백작보다 높은 국왕이 하사하는 작위로 정립되었다.

반면에 신성 로마 제국은 애초에 프랑크 왕국으로 편입된 시점이 늦은 지역이었고 이에 부족 공국으로 표현되는 기존 게르만의 부족제적인 통치 질서가 자리잡고 있었기에, Graf 관직의 세습화도 상대적으로 서프랑크 왕국보다 비교적 더뎠다. 오히려 공작(Herzog)의 세력을 무너뜨리고자 황제가 하위 관직인 백작(Graf)을 사실상 세습 작위로 공인하는 모양새가 되었고, 부족 공국 체제가 붕괴된 뒤로는 황제와 교황 간에 정치 투쟁이 심화되면서 정치 혼란이 지속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이 안정을 되찾고 제후의 작위 체계가 정립된 15세기 시점에 그 이전까지 상당한 세력을 이루고 있던 Markgarf는 이미 선제후공작으로 승격된 상태였고, 당시까지 남아있던 Markgraf의 세력은 다른 황제의 직속 제후인 백작(Graf)과 구별된다고 하기엔 어려운 수준이었다. 때문에 신성 로마 제국의 영향권인 중부유럽과 이탈리아의 Markgraf는 특수한 백작 칭호 중 하나로 여겨졌을 뿐 별개의 격으로 구분되지는 않았으며, 서유럽권에서도 근원이 같은 자신들의 Marquis와 동일하게 취급하지는 않아서 Margrave라는 별개의 개념으로 통용되었다. 따라서 한자 문화권에서는 일반적으로 '변경백'으로 번역되고 있다.

이 문서에서 다뤄지고 있는 사례들은 중부유럽 및 이탈리아 지역의 '변경백'이 보유한 영지를 가리키므로, 따라서 '후국'이 아닌 '변경백국'으로 통칭한다.

3. 목록


[1] 대표적인 사례가 에스파냐 변경주인데, 프랑크 왕국이 분열되는 혼란을 틈타서 바르셀로나 백작이 에스파냐 변경주 전역을 사실상 통일했음에도, 에스파냐 변경백을 자처하지 않고 그냥 바르셀로나 백작의 위치에서 독립을 선언했다.[2] 이탈리아 반도 피에몬테에 있던 변경백국으로 1531년 사보이아 공국에 병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