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e0e0e0> 베드로 키베(ペトロ岐部) | |
수도명 | 베드로 |
출생 | 1587년 |
일본 오이타 | |
사망 | 1639년 7월 4일 (향년 52세) |
사망지 : 일본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종교 | 가톨릭 |
직업 | 신부, 수도자 |
소속 | 예수회 |
[clearfix]
1. 개요
베드로 키베(ペトロ岐部)는 일본출신의 수도자이자 가톨릭 신부이다.2. 생애
1587년, 현 오이타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인 로마노 키베와 어머니인 마리아 하타라는 인물 슬하에서 자랐다. 이후 13세 때 아리마의 세미나리요에 입학하여 수학했다. 1606년에 예수회에 입회하고자 소망하였다. 1614년 막부의 키리시탄 추방령에 의해 마카오로 추방되었으며 사제가 되기 위해 마카오의 콜레지오에서 라틴어와 신학을 공부했다. 이후에 로마로 가기 위해 고니시 만쇼, 미노에스 미구엘과 함께 마카오를 탈출해 인도 고아로 배를 타고 건너간 뒤 혼자 페르시아를 거쳐 바그다드를 지나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1620년에는 로마에 도착했다.로마에서 예수회의 심사를 받은 이후, 학식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고는 1620년 11월 15일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32세 나이로 성품성사를 받았다.
키베는 순교를 각오하고서 일본으로의 귀국을 희망했으나, 그 당시 일본에서는 극심한 탄압으로 인해서 사제를 태울 배가 없었다. 키베는 일본으로 갈 방법을 찾기 위해 동남아시아를 떠돌아다니다가 1630년에 마닐라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탑승하는데 성공한다. 난파하긴 했으나 어찌저찌 가고시마현에 도착했다. 16년만의 일본 귀국이었다.
이후 키베는 잠복하여 매우 극심한 박해를 피해 나가사키에서 동북쪽으로 내려가 신도들을 격려했다. 그러나 1639년에 밀고되어 체포되고 만다. 에도로 보내진 그는 배교자인 사와노 다다안[1]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 신앙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권고했다. 키베는 극심한 고문을 받았으나 신앙을 배교하지 않았다. 그리고 구덩이 위에 거꾸로 매달리는 형벌을 받고 1639년 7월 4일에 52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3. 관련 문서
[1] 크리스토반 페레이라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