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18:04:24

버넬 싱글턴

버넬 싱글턴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fcc33 [[서울 삼성 썬더스|수원 삼성 썬더스]] 등번호 21번}}}
팀 창단 버넬 싱글턴
(1998~2000)
안드레 맥컬럼
(2002)
}}} ||
미국의 전 농구선수
파일:버넬 싱글턴.jpg
<colbgcolor=#eeeeee,#191919> 버넬 싱글턴
Vernel Singleton
출생 1970년 5월 11일 ([age(1970-05-11)]세)
국적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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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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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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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신체 200cm
포지션 센터(KBL), 파워 포워드
학력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1988~1992)
등번호 21
소속 수원 삼성 썬더스 (1998~2000)

1. 개요2. KBL 입성 전3. KBL에서의 활약4. 은퇴 이후의 행보5. 여담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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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농구선수이자 前 영화배우였고 현직 포르노 배우. 선수시절에는 KBL에서 두 시즌간 뛰면서 좋은 매너와 훌륭한 기량을 선보인 바 있다.

2. KBL 입성 전

대학 시절 기록

샤킬 오닐의 모교로 유명한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일명 LSU 타이거스 출신으로, 샤킬 오닐의 대학 1년 선배이다. 대학 4년 동안 LSU 타이거스의 주전 파워 포워드로 뛰며 포스트에서 샤킬 오닐과 호흡을 맞추었고, 팀을 NCAA 토너먼트에 4년 연속 진출시켰지만 최고 성적은 2라운드 진출(32강)까지였다. LSU 통산 득점 9위, 통산 리바운드 9위를 기록 중이다.

파워 포워드로서 부족한 하드웨어 탓에 1992 NBA 드래프트에서 고배를 마신 뒤[1] 당시 미국 하부리그였던 CBA, USBL을 비롯, 프랑스 3부리그, 일본 JBL[2], 파라과이 리그 등에서 뛰었다. 특히 일본 JBL에선 총 4시즌을 보내며 2차례 리그 MVP를 차지하기도 했다.

3. KBL에서의 활약

파일:버넬 싱글턴 삼성.jpg
KBL 시절 하이라이트

1998년 KBL 외국인 트라이아웃에서 1R 4순위로 수원 삼성 썬더스에 선발된 싱글턴은, 시즌 첫경기부터 매력적인 플레이들을 연이어 선보이며 단번에 수원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슈팅능력에 발군의 점프력과 리바운드를 과시한데다 주희정, 문경은 등 국내 선수들과도 조화를 잘 이루면서, 전시즌 블랙홀이나 다름없었던 1순위 센터 존 스트릭랜드(200cm)의 악몽을 말끔하게 지워냈다. 싱글턴의 안정적인 경기력에 또다른 외인 이슈아 벤자민(190cm)의 폭발적인 3점슛까지 더해지면서, 전 시즌 9위팀이었던 수원 삼성이 우승후보 대전 현대, 부산 기아와 시즌 초 1위 경쟁을 할 수 있게 했으나, 시즌 중반 싱글턴이 발목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팀은 중위권으로 급격히 추락했고, 결국 시즌 6위로 턱걸이하며 겨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시즌 막판 복귀한 싱글턴은 인천 대우 제우스와의 6강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1차전 24점 7리바운드, 2차전 44점 17리바운드의 맹활약을 펼치며 원정경기에서 2연승을 따냈고, 결국 3승 1패로 승리하며 4강에 진출한다. 당시 인천 대우는 장신 포워드 카를로스 윌리엄스(198cm)의 맹활약 속에 정규리그 3위에 올랐지만 몸싸움이 약한 윌리엄스 탓에 이은호, 정재헌 등 토종 빅맨을 센터로 기용한 탓에 골밑이 다소 약했고, 힘과 탄력-득점력을 모두 갖춘 싱글턴을 막을만한 선수가 없었기에 업셋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이후 4강 플옵에선 호화군단 부산 기아[3]에 1승 3패로 지면서 탈락했지만, 김동광 감독은 고민의 여지도 없이 싱글턴과 재계약을 맺는다.

99-00 시즌, 새 외인 슈터 G.J. 헌터(188cm)에 루키 강혁까지 가세하면서 수원 삼성은 정규리그 3위에 오른다. 싱글턴은 큰 부상없이 한시즌을 보내며(44경기 출장/총 45게임) 22.5득점-10.6리바-2.2어시-1.5스틸-1.4블락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플레이오프 6강에서도 전시즌 탈락의 아픔을 주었던 부산 기아를 꺾고 2년 연속 4강에 진출하는데 1등 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4강 플레이오프 상대였던 청주 SK 나이츠에는 국보센터 서장훈에 수비왕 재키 존스까지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싱글턴이 1차전에서 부상을 당하는 악재까지 있었다. 싱글턴은 부상에도 불구 2차전에서 35득점 9리바를 올리는 등 시리즈 평균 21득점-5.7리바운드를 올리며 활약하지만, 청주 SK의 트윈타워가 함께 평균 32.7득점-23리바운드를 올린데 반해 싱글턴의 파트너였던 이창수-박상관은 둘이 합쳐서 3경기 평균 9득점-4리바에 그치는 바람에, 4강 플옵에서 내리 3연패를 당하며 허무하게 탈락하고 만다. 사실 이때 외국인 선수를 뽑을때 단신용병을 조니 맥도웰이나 클리프 리드 같은 스타일로 뽑았더라면 3~4번 유형인 싱글턴의 위력이 배가되었을텐데 자꾸만 단신 가드를 고집한 김동광 감독의 스몰 라인업으로 인해 억지로 센터를 맡아서 부담이 너무 커졌고 스타일 노출도 있어서 공격이 지난 시즌보다 많이 막히는 일이 많아진점이 아쉬운점이었다.
포스트업 이후 양발을 벌린 자세의 페이더웨이가 버넬의 시그니처 무브였고, 비슷한 시기 한국을 찾은 데릭 존슨, 로렌조 홀, 제이 웹, 알렉스 스텀 등이 정통 5번 유형이었다면, 버넬은 3~5번 역할을 모두 소화하면서 윙맨역할까지 문안하게 수행할 정도로 볼핸들링이나 본인만의 드리블 리듬을 가지고 수비를 수비게 벅겨냈다. 그 당시에는 일리걸 디펜스룰이 남아있던 시절이었기에 이버츠 등의 신장이 작은 선수 상대로는 골밑에서 욱여넣을 수 있었고, 장신 빅맨 상대했을 때는 볼 핸들링을 통해 쉽게 돌파를 통해 득점을 해냈다. 최근 외국인 선수와 가장 비슷한 선수를 꼽는다면 전DB용병 얀테 메이튼과 가장 흡사한 유형의 선수였다.

시즌 종료 후 싱글턴은 팀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한국을 떠난 이후 더 이상 선수생활을 지속하지 않고 곧장 은퇴했다. 이때 나이는 겨우 30세였는데, 은퇴 이유는 다음과 같다.

4. 은퇴 이후의 행보

싱글턴의 LSU 후배 스트로마일 스위프트(206cm,PF)는 엄청난 탄력을 자랑하며 전미의 주목을 받던 유망주였다. 2000년 NBA 드래프트에서 무려 전체 2순위로 밴쿠버 그리즐리스에 지명될 정도였는데, 싱글턴이 바로 스위프트의 에이전트였다. 스위프트가 어린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던 덕분에, NBA의 차세대 슈퍼스타[4]를 거느린 거물 에이전트로 돈방석에 오르는가 싶었는데, 상황은 원하는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스위프트는 NBA에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스위프트는 NBA에서 총 아홉 시즌을 뛰긴 했지만, 주전급으로 뛴건 01-02 시즌 겨우 한 시즌 뿐이고 총 4번의 이적을 거치며 통산 8.4득점-4.6리바의 벤치멤버 수준의 기록만 남긴채 NBA를 떠났고, 이후 중국 CBA에서 뛰었다.

2017년 2월 11일, 샤킬 오닐을 비롯하여 1990-91 시즌 사우스이스턴 컨퍼런스에서 정규리그 챔피언을 차지했던 LSU 타이거스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관련 기사

파일:버넬 싱글턴 LSU.jpg

2019년 5월 다른 의미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는데 포르노 배우로 전업했다고 한다. 배우 뿐만 아니라 포르노물 감독도 겸하고 있다고 한다. 예명은 'Asante stone' .

5. 여담

파일:싱글턴_에디.jpg

일본 JBL에서 뛰던 1996년, NBA를 배경으로 하는 우피 골드버그 주연의 영화 "에디"에 릭 팍스, 그렉 오스터택 등 NBA 선수들과 함께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배역은 NBA 뉴욕 닉스의 리바운드왕 "자말 던컨".[5]

상당히 미남 + 동안이다. 이미 나이가 52살인데도 포르노 배우로써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KBL 외국인 선수로 뛰던 시절과 별 차이가 없어보일 정도로 여전히 얼굴이 매끈하고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얼굴형이나 피부만 봐도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외모인것도 있고. 다만 수염이나 머리가 그나이쯤 되면 하얗게 샐텐데 싱글턴의 경우 최근에는 민머리 타입이라 알수가 없고 수염은 검게 염색하는듯.

6. 관련 문서



[1] 같이 드래프트에 참가한 샤킬 오닐은 1992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를 차지한다. 2순위는 알론조 모닝[2] 현 일본 프로농구인 B리그 출범 전 운영되던 실업농구리그로, KBL보다 먼저 외국인선수 제도를 도입했다.[3] 강동희-봉하민-김영만-클리프 리드-제이슨 윌리포드 주전에 식스맨이 무려 김유택이었다.[4] NBA 로터리픽(~14순위)만 해도 엄청난 연봉을 받는 스타가 되는게 대부분인데, 하물며 전체 2순위면...[5] 당시 NCAA 슈퍼스타였던 자말 매쉬번과 팀 던컨을 짬뽕한 이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