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2 18:38:27

백월



1. 개요2. 역사
2.1. 춘추전국시대2.2. 진·한 시대
3. 민족과 언어4. 백월로 지칭된 세력

한자 百越, 百粵, 越, 粵
베트남어 Việt, Bách Việt
영어 Baiyue, Hundred Yue

1. 개요

백월은 중국 장강 이남의 화남 지역, 베트남 북부 홍강 유역에 살던 민족에 대한 범칭이다.

2. 역사

본래 월(越, 粵)은 장강 이남의 이민족들을 칭하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1]

2.1. 춘추전국시대

전국시대 때 양월(陽越)은 오늘날 양저우에 살았던 월족을 부르는 명칭이다. 한편 장강 유역에서 건국된 오나라[2]월나라[3]는 월족이 거주하는 곳에서 세워진 국가였다.

기원전 306년, 월나라가 초나라에 멸망당한 후, 월나라 유민들은 민월, 동구에 이주해서 민월을 형성하거나 초나라에 복종했다고 한다.

2.2. 진·한 시대

기원전 223년, 초나라를 멸망시킨 진시황은 이듬해인 기원전 222년 장군 왕전을 강남 지역으로 보내 백월을 굴복시키고 회계군(會稽郡)을 설치했다. 기원전 221년 제나라까지 멸망시킨 진나라는 민월(오늘날 복건성 일대) 지역에다 민중군(閩中郡)을 설치해 이곳에서 왕노릇을 하던 요, 무제를 폐위시키고 군장으로 삼았다.[4]

기원전 214년, 진나라는 오늘날 광동성, 광서성 지역에 있던 육량(陸梁)을 정복하고 계림군(桂林郡) · 상군(象郡) · 남해군(南海郡) 등을 설치했다. 그러나 진승·오광의 난반진전쟁이 발발하면서 진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진나라의 관리로 파견된 남해군위 조타는 계림군, 상군, 남해군 지역을 빠르게 점령해 남월을 세워서 자립하게 된다.

조타가 세운 남월은 기원전 111년 전한의 침공을 받아 멸망당했다. 한나라는 옛 남월의 땅에 9군을 설치했는데, 이 지역은 후한 시기 교주(중국)로 편성되었다.

3. 민족과 언어

오스트로네시아어족, 크라다이어족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상고한어가 아닌 고대 월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4. 백월로 지칭된 세력

  • 어월(於越) - 월나라를 건국했다.
  • 양월(陽陽) - 고대 중국의 양주 일대에 거주한 백월의 일파.
  • 동구, 민월 - 사기 권7 항우본기에서 ‘파군 오예가 백월을 이끌고 제후군을 도왔다(鄱君吳芮率百越佐諸侯)‘는 언급이 나오는데, 이때 오예를 도운 인물은 민월왕 무제, 동구왕 요였다. 동구는 동월로도 불렸으며,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동구와 민월에 대한 기록을 동월열전으로 수록했다.]
  • 육량(陸梁): 오늘날 광시좡족자치구, 광둥성 일대에 살던 백월의 일파. 기원전 214년 진나라의 백월 정벌을 시행하면서 점령당했다. 육량의 땅에는 계림군(桂林郡), 상군(象郡), 남해군(南海郡) 등이 설치되었다. 반진전쟁 때 자립한 조타는 남월군 번우를 중심으로 남월을 건국한다.
  • 서구(西嘔): 기원전 214년 진나라가 백월 정벌을 시행하면서 서구왕 역우송(譯吁宋)을 죽였다는 기록이 회남자에서 전해진다. 이후 진나라가 혼란에 빠지면서 독립한듯하나 남월왕 조타의 침공을 받아 멸망했다. 어우락(甌貉)과 동일시된다.
  • 낙월(駱越)

[1] 반대로 북방 이민족들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호(胡)가 사용되었다.[2] 비한족계 민족인 구오(句吳)/공오(工吳)족이 인구 다수를 차지했으며, 오나라 왕실은 주 왕실과 같은 희성을 칭했다.[3] 비한족계 민족인 어월(於越)족이 중심이 되어 건국했다. 월나라 왕실은 스스로 하나라 왕족의 후예로 칭했으나 가능성은 낮다.[4] 이후 요와 무제는 반진전쟁 때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으며, 초한전쟁 당시 유방을 지지한 공적을 인정받아 각각 동구(국가), 민월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