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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특별군사작전 지역 제4대 통합군집단 사령관 | |||
<colcolor=gold> 러시아 연방 제7대 총참모장 발레리 게라시모프 Вале́рий Гера́симов | Valery Gerasimov | |||
본명 | 발레리 바실리예비치 게라시모프 Вале́рий Васи́льевич Гера́симов Valery Vasilievich Gerasimov | ||
출생 | 1955년 9월 8일 ([age(1955-09-08)]세) | ||
소련 러시아 SFSR 타타르 ASSR 카잔 (現 러시아 볼가 연방관구 타타르스탄 공화국 카잔) | |||
재임기간 | 제7대 총참모장 | ||
2012년 11월 9일 ~ 현직 | |||
제4대 통합군집단 사령관 | |||
2023년 1월 11일 ~ 7월 8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colcolor=gold> 학력 | 카잔 수보로프 군사학교 카잔 고등전차지휘학교 말리놉스키 전차 및 기계화사관학교 러시아 연방군 총참모부 사관학교 | |
계급 | 중령 (소비에트 연방 지상군) 대장 (러시아 연방 지상군) | ||
병과 | 기갑 → 차량화보병 (소비에트 지상군) | ||
주요 참전 | 제2차 체첸 전쟁 시리아 내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 ||
주요 서훈 | 러시아 연방 영웅 알렉산드르 넵스키 훈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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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의 군인. 2012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러시아 연방군 총참모장 겸 국방부 제1차관, 즉 러시아의 최고위 현역 장성이다.2. 생애
1955년 소련의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타타르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카잔에서 태어났고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카잔 수보로프 군사학교를 나온 뒤 1977년까지 카잔 고등전차지휘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977년 카잔 고등전차지휘학교를 졸업한 뒤 극동군관구에서 소대장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1991년, 러시아군으로 자동 편입됐고 1995년부터 1997년까지는 러시아 연방군 총참모부 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수료 후에 모스크바 군관구 부사령관을 맡았다. 제2차 체첸 전쟁 당시 북캅카스 군관구를 지휘하여 전쟁에 참전했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모스크바 군관구 사령관을 역임했고, 2012년까지 승리의 날 퍼레이드의 지휘를 맡았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복귀한 직후인 2012년 11월에 러시아 연방군 총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1955년생 동갑내기 세르게이 쇼이구 현 국방장관도 같은 시기에 임명되었고, 두 사람은 현재까지 러시아 군부의 대표격으로 활약 중이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가 적극적인 정치-군사적 개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게라시모프 독트린'(Gerasimov Doctrine)이라고 주장하기도 할 정도.
2.1.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 미국 재무부의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기사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 전선이 동부에 국한되어 지지부진해지자 그가 해임되었다는 설까지 나돌았다. 2022년 3월 초 프랑스군 합동참모의장과 전화 통화를 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므로 낭설이었던 모양.4월 말에는 게라시모프가 러시아 연방군의 우크라이나 동/남부 공세를 지휘하기 위해 직접 현장으로 급파되었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역시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는 않았다.
2022년 5월 1일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군 총참모장 발레리 게라시모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위험한 최전방 진지를 다녀온 건 맞지만 우크라이나군이 그를 공격할 틈은 없었다고 우크라이나 고위관리가 언급했다. 미국 관리들 역시 게라시모프가 지난 며칠간 우크라이나 동부에 머물렀던 것은 사실이며 이는 전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2023년 1월 12일, 특수군사작전 지역 통합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세르게이 수로비킨이 임명된 지 3개월만인데, 수로비킨은 우크라이나군의 가을공세 때 위기에 처한 러시아군을 여러 군데서 미리 철수시켜 전선을 안정화시킨 공이 있기때문에 조금 의외라고 할 수 있다. 수로비킨은 공군 담당 부사령관으로 내려왔다.
바그너 그룹의 대표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으로부터 지원을 제대로 안한다는 이유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함께 비난을 받고 있다.
결국 러시아 군부와 바그너 그룹의 갈등은 바그너 그룹 반란으로 폭발하였고,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등 군부에 대한 축출을 천명했다. 하지만 쿠데타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일단락되며 게라시모프 역시 자리를 보전하게 되었다.[1]
보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2024년 2월 5일 신인균의 국방TV에선 여러 OSINT 소식통들이 게라시모프가 지난 2023년 12월 29일 전선 시찰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후 한 달도 더 넘도록 주요 군 지휘관 회의[2]를 비롯한 공식 군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고 이는 우크라이나군이 1월 4일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외곽 지휘소를 공습했을 당시 폭사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주장했다.영상
그러나 2월 말 안드레이 모르드비체프 상장의 아우디이우카 전투의 보고를 받는 모습과 병사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모습이 나왔다.#
3. 평가
3.1. 긍정적 평가
게라시모프는 카잔 수보로프 군사학교, 카잔 고등전차지휘학교, 소비에트 연방 원수 말리놉스키 기갑 군사 아카데미, 러시아 연방군 총참모부 사관학교 같은 수 많은 군사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고 졸업한 후 쭉 러시아군 전략 계통에서 근무한 전략통이다.이러한 능력을 살려서 우크라이나 위기 때 적극적인 정치-군사적 개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였고, 크림반도를 성공적으로 러시아의 영토로 점령하고 돈바스 내전을 일으키는 등 큰 활약을 했다.
제4대 특수군사작전 지역 통합군 사령관으로 임명 받았을 때 최악에 가까운 러시아군의 사기와 기강을 바로잡고, 바그너 그룹을 총알받이로 사용해 정규군의 희생을 최소화하고 우크라이나 정예병을 소모시켜 바흐무트 전투의 승리를 만들어내고 2023년 우크라이나 대반격의 실패를 이끌어낸 장본인 중 하나다.[3]
그 외에도 제2차 체첸 전쟁 때 체첸에서 인종 청소를 저지른 러시아군 장교 유리 부다노프 대령의 체포에 기여한 점이나, 한참 러시아군한테 전황이 안좋게 흘러가던 시기에 군대 사기를 높이기 위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위험한 최전방 진지를 방문해 상황을 직접 확인한 점도 좋은 평가를 듣고 있다.
3.2. 부정적 평가
그러나 그는 바그너 그룹과 러시아군의 갈등을 만들어낸 점에서 큰 비판을 받고 있다.그는 바그너 그룹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제대로된 지원을 바그너 그룹한테 하지 않았고, 심지어 바그너 그룹이 바흐무트를 철수하는 길목에 러시아 육군 제72차량화소총여단한테 지뢰를 설치하도록 지시하였고, 바그너 그룹이 주둔한 후방 캠프에 로켓 공격을 벌였다. 이러한 러시아군의 팀킬 때문에 수 많은 바그너 용병 사상자들이 나왔고 화가 제대로 폭발한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바그너 그룹 반란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다만 이러한 바그너 그룹 홀대와 견제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도 크게 개입한 만큼, 오직 게라시모프만의 잘못은 아니다.
4. 진급 이력
5. 기타
2016년 방산품 시찰 도중 군용 차량의 손잡이가 부숴지자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사진이 찍혔다.[4]영상기혼자로 아내와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현재 장교로 복무 중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는 우크라이나군이 발레리 게라시모프를 존경했고 심지어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도 존경했다고 밝혔다.# 하기야 전쟁 전까지는 서방 진영에서도 그를 '하이브리드 전쟁'(혹은 '게라시모프 독트린')의 창시자로서 두려움과 경외감을 나타냈을 정도였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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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특수군사작전 지역 통합군집단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었다. 후임으로 미하일 테플린스키 공수군 사령관이 임명되었다.[2] 2월 2일 개최되었는데 쇼이구 국방장관 우측에 있어야 할 게라시모프는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이바노프 국방차관이 대신 앉아있었다는 것이다.[3] 2023년 개시된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를 돈좌시킨 공로는 게라시모프만의 것이 아니다. 남부전선의 방어선은 세르게이 수로비킨의 설계로 건설된 것이고,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12월에 역으로 동계 공세를 개시해 우크라이나를 궁지에 몰아넣은 사람은 미하일 테플린스키다. 하지만 바흐무트에 우크라이나를 최대한 묶어두는 사이 남부전선을 사수할 준비를 한다는 전략을 입안해 앞으로 러시아군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대략적인 패턴을 제시한 건 게라시모프라는 평이 중론이다.[4] 무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까지 봤다. 머쓱한 셰브첸코 중장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