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8 19:34:19

바타타이스(축구)

파일:Algisto Lorenzato.png
이름 아우지스투 로렌자투
(Algisto Lorenzato)
생년월일 1910년 5월 20일
사망년월일 1960년 7월 16일 (향년 50세)
국적 파일:브라질 국기(1960-1968).svg 브라질 합중국
출신지 브라질 합중 공화국 바타타이스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182cm | 76kg
소속팀 코메르시알 FC (?-?)
포르투게자 (1933-1934)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 (1935)
플루미넨시 FC (1935-1947)
아메리카 FC (1942-1943 / 임대)
국가대표 3경기 (1938-1939)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선수 생활2.3.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뒷이야기5. 수상
5.1. 클럽5.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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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1]

2.1. 어린 시절

바타타이스의 원래 이름은 아우지스투 로렌자투(Algisto Lorenzato)이고 이름의 유래는 그가 태어난 도시이다. 그의 집안 역시 가난해서 바타타이스 역시 생계를 위해 목수, 안경 공장 일을 했다.

처음 축구를 시작할 때 바타타이스의 포지션은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였다. 하지만 팀의 골키퍼가 병으로 빠졌을 때 골키퍼 자리에 대신 들어간 바타타이스가 뛰어난 활약을 보이자 그의 포지션은 골키퍼로 고정되었다.

2.2. 선수 생활

2.2.1. 클럽

바타타이스는 1933년 5월 22일에 포르투게자 데뷔전을 치렀고 상대는 산투스 FC였다. 포르투게자는 산투스를 4대2로 이겼다.

6월 5일의 상파울루-리우 컵 대회에서 포르투게자는 아메리카와 상대했는데 아메리카의 골키퍼아이모레 모레이라였다. 모레이라와의 맞대결에서 포르투게자는 5대3 승리를 거뒀다.

바타타이스는 1934년 11월 26일 SC 코린치안스전을 끝으로 포르투게자를 떠났고 포르투게자는 코린치안스에 0대1로 패했다.

바타타이스는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로 팀을 옮겼지만 파울리스트라에서 그의 자리는 나지 않았고 시즌 중에 플루미넨시 FC로 다시 이적하게 되었다. 플루미넨시에서 12년을 뛴 바타타이스는 총 309경기에서 458실점을 기록했다. 그동안 플루미넨시는 히우지자네이루 챔피언십에서 6번의 우승을 거뒀다.

바타타이스는 1941년, CR 플라멩구와의 라이벌전에서 시우비우 피릴루에게 팔을 밟혔음에도 경기를 끝까지 소화하며 플루미넨시의 승리를 지켜내기도 했다.

그러나 1947년부터 바타타이스가 건강이 안 좋아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플루미넨시 구단은 임금 지불을 거절했고 바타타이스는 구단과 재판까지 가서 승소했다. 하지만 이 일로 바타타이스는 팀에 더 이상 남을 수 없었다.

2.2.2. 국가대표

바타타이스의 국가대표팀 경력은 1938년 월드컵에서 2경기가 나왔다.

처음 바타타이스는 브라질의 주전 골키퍼로 내정되었었지만 폴란드와의 1라운드 경기에서 5골을 실점했다. 비록 브라질은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6대5로 승리했지만 바타타이스는 주전 자리를 빼앗겼고 이후 브라질의 골문은 바우테르가 지켰다. 바타타이스는 스웨덴과의 3위 결정전에서야 다시 출전할 수 있었다.

바타타이스는 1939년 1월 15일 로카 컵 아르헨티나전에 다시 출전했지만 브라질은 1대5로 참패했고 이후 바타타이스는 다시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2.3. 이후

축구 선수 생활을 마친 바타타이스는 마라카낭에서 도어맨으로 일하기도 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1940년대 브라질 최고의 축구 선수였던 지지뉴는 바타타이스를 상대로 골을 넣기 위해선 잘못된 방향으로 슛을 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4. 뒷이야기

  • 바타타이스가 처음 포르투게자와 계약을 맺을 때 부대조항 중에는 팀에서 치과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것이 있었다. 당시 브라질에는 열악한 공중위생때문에 충치를 앓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1958년 월드컵 때도 브라질 대표팀 메디컬 팀에 치과의사들이 있었을 정도로 브라질의 공중위생이 나아지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 브라질의 전 대통령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바타타이스를 직접 만나보기도 했다. 바타타이스는 이때 바르가스 대통령에게 들은 칭찬을 인생의 상당한 자랑거리로 삼았다.
  • 바타타이스는 생애 말년에 했던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본 최고의 골키퍼는 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 최고의 브라질 출신 골키퍼는 자신의 플루미넨시 FC 후배이기도 한 카를루스 주제 카스틸류를 꼽았다.

5. 수상

5.1. 클럽

5.2. 국가대표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