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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의 아우구스테 공주

<colbgcolor=#D2B48C><colcolor=#000000> 로이히텐베르크 공작부인
바이에른의 아우구스테 공주
Prinzessin Auguste von Bayern
파일:Princess Auguste of Bayern.jpg
이름 독일어 아우구스테 아말리아 루도비카 게오르기아
(Auguste Amalia Ludovika Georgia)
프랑스어 오귀스테 아멜리 루이즈 조르지
(Auguste Amélie Louise Georgie)
출생 1788년 6월 21일
프랑스 왕국 스트라스부르
사망 1851년 5월 13일 (향년 62세)
바이에른 왕국 뮌헨
배우자 외젠 드 보아르네 (1806년 결혼 / 1824년 사망)
자녀 조제핀, 외제니, 오귀스트, 아멜리, 테오딜란드, 카롤린, 막시밀리앵
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
어머니 헤센다름슈타트의 아우구스테 빌헬미네
형제 루트비히 1세, 카롤리네 아우구스테, 카를 테오도어
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3.1. 조상3.2. 자녀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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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이에른 왕국의 국왕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와 헤센다름슈다트의 아우구스테 빌헬미네의 장녀이자 로이히텐베르크 공작 외젠 드 보아르네의 아내.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왕비 요세피나, 브라질 제국의 황후 아멜리, 로이히텐베르크 공작 막시밀리앙의 어머니이다. 또한 바이에른 국왕 막시밀리안 2세와 그리스 국왕 오톤[1]의 큰 고모이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2]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후 엘리자베트[3]의 큰 이모이다.

2. 생애

1788년 6월 21일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와 그의 첫번째 아내 헤센다름슈타트의 아우구스테 빌헬미네 공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1796년 어머니 아우구스테 빌헬미네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는 바덴의 카롤리네 공녀와 재혼했다. 아우구스테는 동생 카롤리네 아우구스테나 카를 테오도어와 달리 새어머니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크면서 점차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한다.

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동맹을 맺기 위해 그의 양아들 외젠 드 보아르네1806년에 결혼했다. 당시에 이미 바덴의 카를 공자와 약혼한 상태였지만, 나폴레옹이 강제로 약혼을 깬 뒤 외젠과 결혼시켰다.[4]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사이에도 불구하고 부부간의 금슬은 매우 좋아, 아우구스테는 외젠과의 사이에서 무려 7명의 자녀들을 낳았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에도 아우구스테는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외젠이 장인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의 명으로 로이히텐베르크 공작 작위를 받으면서 아우구스테도 로이히텐베르크 공작부인이 되었다.

훗날 장녀인 조제핀는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1세와 결혼해 스웨덴의 왕비가 되었으며, 장남 오귀스트는 포르투갈 여왕 마리아 2세와 결혼해 포르투갈의 국서가 되었다.[5] 삼녀 아멜리는 브라질 초대 황제 페드루 1세의 황후가 되었고[6], 차남 막시밀리앵은 아버지와 요절한 형의 뒤를 이어 로이히텐베르크 공작(Herzog von Leuchtenberg)이 되었다. 오늘날 스웨덴 왕실은 모두 아우구스테의 딸 조제핀의 직계 후손이다.

또한 3대 로이히텐베르크 공작인 차남 막시밀리앵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장녀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과 결혼하면서 러시아에 살게 되었다. 여담으로 니콜라이 1세는 사위인 막시밀리앙에게 로마놉스키 공작위 (Prince Romanovsky)와 Imperial Highness (황실 전하) 칭호를 주었기 때문에 로이히텐베르크 공작위를 물려받지 못한 다른 후손들 역시 로이히텐베르크 공자/공녀와 로마놉스키 공작을 칭했고 막시밀리앙의 후손들은 러시아에 귀화하여 러시아식 이름을 쓰게 되었다. 8대 공작인 세르게이 게오르기예비치 드 보아르네가 미혼으로 1974년 사망하면서 로이히텐베르크 공작가는 단절되었고 현재는 귀천상혼 출신 후손들만 남아있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바이에른의 아우구스테
(Augusta of Bavaria)
<colbgcolor=#fff3e4,#331c00>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
(Maximilian I Joseph)
<colbgcolor=#ffffe4,#323300> 츠바이브뤼켄 궁정백 프리드리히 미하엘
(Frederick Michael, Count Palatine of Zweibrücken)
츠바이브뤼켄 궁정백 크리스티안 3세
(Christian III, Count Palatine of Zweibrücken)
나사우자르브뤼켄의 카롤리네 여백작
(Countess Augusta Carolina
of Reuss-Ebersdorf)
팔츠줄츠바흐의 마리아 프란치스카 여백작
(Countess Palatine Maria Franziska of Sulzbach)
줄츠바흐의 공세자 요제프 카를
(Joseph Charles, Hereditary Prince of Sulzbach)
팔츠노이부르크의
엘리자베트 아우구스테 조피 여백작
(Countess Palatine Elisabeth Auguste Sofie of Neuburg)
헤센다름슈타트의
아우구스테 빌헬미네 공녀
(Princess Augusta Wilhelmine
of Hesse-Darmstadt)
헤센다름슈타트의 게오르크 빌헬름 공자
(Prince George William of Hesse-Darmstadt)
헤센다름슈타트 방백 루트비히 8세
(Louis VIII, Landgrave of Hesse-Darmstadt)
하나우리히텐베르크의 샤를로테 여백작
(Countess Charlotte of Hanau-Lichtenberg)
라이닝겐닥스부르크팔켄부르크의
마리아 루이제 알베르티네 여백작
(Countess Maria Louise Albertine
of Leiningen-Dagsburg-Falkenburg)
라이닝겐닥스부르크팔켄부르크의
크리스티안 카를 라인하르트 백작
(Count Christian Karl Reinhard
of Leiningen-Dagsburg-Falkenburg)
졸름스뢰델하임의 카타리나 폴릭세나 여백작
(Countess Katharina Polyxena of Solms-Rödelheim)

3.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왕비 요세피나
(Joséphine, Queen of Sweden and Norway)
1807년 3월 14일 1876년 6월 7일 오스카르 1세
슬하 4남 1녀[7]
2녀 호엔촐레른헤힝겐의 공자비 외제니
(Eugénie, Princess of Hohenzollern-Hechingen)
1808년 12월 22일 1847년 9월 1일 호엔촐레른헤힝겐의 공자 콘스탄틴
1남 로이히텐베르크 공작 오귀스트
(Auguste, Duke of Leuchtenberg)
1810년 12월 9일 1835년 3월 28일 마리아 2세
3녀 브라질 제국의 황후 아멜리아
(Amélie, Empress of Brazil)
1812년 7월 31일 1873년 1월 26일 페드루 1세
슬하 1녀
4녀 뷔르템베르크 백작부인 테오딜란드
(Théodoline, Countess Wilhelm of Württemberg)
1814년 4월 13일 1857년 4월 1일 우라흐 공작 빌헬름[8]
슬하 4녀
5녀 카롤린 공녀
(Princess Caroline)
1816년 1816년
2남 로이히텐베르크 공작 막시밀리앵
(Maximilian, Duke of Leuchtenberg)
1817년 11월 1일 1852년 11월 1일 러시아의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슬하 4남 3녀

4. 여담

  • 미남미녀들이 많은 걸로 유명한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답게 당대에 손꼽히는 미녀였다. 장녀 조제핀도 이런 어머니의 미모를 그대로 물려받아[9] 시집간 스웨덴[10] 전역에서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엄청난 미인이었다.


[1] 친오빠 루트비히 1세의 아들들.[2] 이복여동생인 오스트리아의 대공비 조피의 아들.[3] 이복여동생인 바이에른 공작부인 루도비카의 딸.[4] 대신 나폴레옹은 아내 조제핀 드 보아르네의 전남편 알렉상드르의 당조카이자 조제핀이 피부양자로 데리고 있던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를 양녀로 삼아 프랑스의 공주 직위를 준 뒤 아우구스테의 전 약혼자인 카를에게 시집보냈다.[5] 하지만 결혼한지 두달만에 요절하여 후손은 없다. 이후 마리아 2세는 페르난두 2세와 재혼한다.[6] 딸 마리아 아멜리아(Princess Maria Amélia)를 낳고 잘 살았으나 결혼 5년만에 페드루 1세가 사망하면서 과부가 되었다. 다만 먼저 언급한 오귀스트의 아내 마리아 2세의 아버지가 바로 아멜리의 남편 페드루 1세다. 즉, 아멜리는 친오빠의 의붓장모가 된 셈. 그나마 오귀스트가 자식없이 요절하면서 이러한 개족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다[7] 칼 15세, 오스카르 2세[8] 테오딜란드 사후 공작위를 받았다.[9] 비단 외가인 비텔스바흐 가문뿐만 아니라 친할머니 조제핀 드 보아르네도 젊은 시절 당대의 파리 사교계를 주름잡을만큼 손꼽히는 미인이었다.[10] 스웨덴의 국왕 오스카르 1세와 결혼했고, 현재까지 스웨덴 왕실은 모두 조제핀의 직계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