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2-20 11:39:30

밀로라드 아르세니예비치

밀로라드 아르세니예비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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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밀루틴 이브코비치
(1930)
밀로라드 아르세니예비치
(1930)
다니엘 프레멜
(1931)
밀루틴 이브코비치
(1931)
밀로라드 아르세니예비치
(1931)
이반 히트레치
(1931)
밀루틴 이브코비치
(1931)
밀로라드 아르세니예비치
(1932)
다니엘 프레멜
(1932)
구스타프 레너
(1935)
밀로라드 아르세니예비치
(1935~1936)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
(1936~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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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RSENIJEVIC.jpg
이름 밀로라드 아르세니예비치
(Милорад Арсенијевић / Milorad Arsenijević)
생년월일 1906년 6월 6일
사망년월일 1987년 3월 18일
국적 유고슬라비아[1]
출신지 스메데레보
포지션 하프백
신체조건 168cm / 68kg
등번호 -[2]
소속팀 마츠바 샤바츠 (?-?)
BSK 베오그라드 (1926-1937)
국가대표 52경기 / 1골 (1927-1936)
감독 유고슬라비아 (1946-1954)



1. 생애
1.1. 선수 생활1.2. 감독 생활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3. 뒷이야기4. 수상
4.1. 클럽4.2. 감독

1. 생애

1.1. 선수 생활

밀로라드 아르세니예비치는 스메데레보에서 태어났지만 그 곳에서는 어린 시절의 기억밖에는 없다. 그의 아버지는 마츠바에서 일하던 회계사였다. 축구는 14살부터 시작했고 잠시 유스에서 뛰었지만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곧 성인팀에서 뛰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베오그라드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수학을 잘했고, 기술 과학 쪽으로 진로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축구도 좋아했기에 축구 선수로서의 생활도 했다. 그는 사바츠의 한 팬에 의해 BSK 베오그라드에서 선수 생활을 지속했는데, 초창기 BSK에는 헝가리에서 건너온 두 명의 선수 겸 감독이 있었다. 그들은 아르세니예비치를 발탁했고 금방 팀에 녹아들어갔다. 분명히 아르세니예비치의 자리에는 요바노비치라는 더 나은 선수가 있었지만 아르세니예비치의 재능을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아르세니예비치는 브라티슬라바에서의 투어에서 선을 보였다. 당시 유럽 축구계는 영국을 제외하면 체코, 헝가리 등 중유럽 쪽이 대세였다. 그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젊은 아르세니예비치는 축구계의 정확한 계시다[3]라는 칭찬도 듣게 된다. 아르세니예비치는 이 칭찬이 가장 가슴에 남았다고 회고했다. 언론들도 앞 다투어 아르세니예비치를 칭찬했지만 다른 것들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그 당시의 축구계가 그랬지만 그는 아마추어였다. 축구보다 공부를 중시했고 2주에 한 번 정도만 연습을 할 뿐이었다. 레모네이드와 차를 빼면 팀에서 어떤 것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그를 축구계 역시 내버려두지 않았고 국가대표팀에서도 그를 발탁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꿈의 실현이 아닌 전쟁에 나가는 군인의 심정, 아버지 조국의 명예를 드높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뛰었다고 한다.

그는 국가대표로 올림픽월드컵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고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 총 52경기를 뛰었다.

1.2. 감독 생활

그는 1948년 이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처음 런던 올림픽 대표팀의 감독을 활동할 때에는 초대 월드컵에서의 팀동료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와 공동 감독을 맡았다. 그러면서 유고슬라비아의 50년대 전성기를 이끌었던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대표팀에서 녹여내었다.

올림픽에서는 주로 공동 감독 체제로 나갔고,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대표팀을 이끌었다. 승승장구했지만 브라질과의 조별 예선 최종전에서 2대0으로 패배하여 2위에 그쳤고 결국 짐을 쌌다.[4]

올림픽에서는 스웨덴매직 마자르에게 결승전에서 패배하며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6년간 국가대표팀을 이끈 이후에는 베오그라드의 아마추어 팀을 이끌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전기 기계 분야와 운송 분야의 교수로 활동하였다. 그 동안 두 권의 책도 썼다고 한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대인 마크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하프백이었다.

3. 뒷이야기

  • 아르세니예비치는 수학 외에도 언어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독일어, 프랑스어, 헝가리어, 러시아어, 루마니아어 등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한다. 그 중 독일어에 특히 뛰어나서 독일어 교수의 잘못된 발음을 교정해줄 정도였다 한다. 이 때문에 미운털이 박히기도 했다. 교수는 그에게 학점을 짜게 줬고 그 때문에 5점짜리로 도배된 성적표에 독일어만 4점이 찍혔다고 한다.
  • 이런 면이 있음에도 매우 겸손하여 그의 팀 동료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함부로 늘어놓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교수와의 일화도 있는 것으로 보아 조금 반항적인 면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있으면서 선수들에게 평을 내린 것이 아직 전해져 내려온다. 예를 들어 라이코 미티치의 경우 위대하지만 고집이 세서 절대 자기 스타일을 안 바꿀 것, 세쿨라라치는 경박하여 피치에서 희롱을 당해도 시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 그를 아낀다는 식이다.

4. 수상

4.1. 클럽

  •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우승 4회: 1930–31, 1932–33, 1934–35, 1935–36(BSK 베오그라드)
  •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준우승 2회: 1927, 1929(BSK 베오그라드)
  • 유고슬라비아 컵 우승 1회: 1934(BSK 베오그라드)

4.2. 감독


[1] 현재 국적으로 따지면 세르비아이다.[2]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3] 원문은 Mladi Arsenijević je pravo fudbalsko otkrovenje.[4] 당시는 1위 팀만 결승 리그에 진출하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