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5 18:43:49

미스 포츈(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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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문 배경2. 깊은 바닷속으로3. 총잡이와 도박꾼4. 수장5. 구 배경

1. 장문 배경

소금기 가득한 도시, 핏줄처럼 구불구불한 미로를 감춘 도시. 빌지워터에서 악명을 떨친 이들이 대개 그렇듯 사라 포츈 역시 많은 이들의 피를 손에 묻혔다.

사라는 유명한 총기 장인인 애비게일 포츈의 딸로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본토 앞바다에 자리 잡은 섬에 살며 사라는 엄마의 대장간에서 방아쇠를 다듬거나 맞춤 탄환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애비게일의 총기 제작술은 명성이 자자했으며, 맞춤 제작한 권총은 부유한 상선 선장들이 즐겨 사용했다.

하지만 가끔은 사악한 악당들 역시 애비게일의 권총을 탐내곤 했다.

빌지워터의 신출내기 해적 갱플랭크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갱플랭크는 애비게일에게 최고의 권총 두 자루를 만들라고 건방지게 강요했다. 마지못해 거래가 성사되었고 갱플랭크는 일 년 뒤 총을 찾으러 돌아왔다. 처음부터 값을 치를 생각이 없었던 갱플랭크는 지저분한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강제로 권총을 빼앗으려고 했다.

애비게일이 만든 두 자루의 권총은 예술 작품과도 같았다. 만듦새는 정교했으며 정확도도 뛰어났다. 하지만 애비게일은 불한당으로 변해 버린 갱플랭크에게 권총을 넘겨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분노한 갱플랭크는 권총을 집어 들어 애비게일 부부와 사라에게 발사했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대장간에 불을 지르고 돌바닥에 쌍권총을 집어 던졌다. 룬테라에서 포츈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 버릴 작정이었다.

얼마 후, 사라는 고통을 느끼며 깨어났다. 심각한 부상이었음에도 사라는 망가진 쌍권총을 품에 안고 불타는 대장간에서 빠져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는 아물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끔찍한 악몽이 되어 오랫동안 사라를 괴롭혔다.

하지만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 견디고 또 견뎠다. 사라는 어머니의 쌍권총을 수리하고 복면의 살인자에 관한 정보를 모았다. 그자는 빌지워터의 새로운 해적왕을 자처하며 다른 유력한 선장들에게 충성을 강요했다.

상관없었다. 사라는 철저히 복수를 준비했다.

빌지워터 만에 상륙하자마자 사라는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상대는 마이런의 흑주에 잔뜩 취한 해적으로 현상금이 걸려 있던 자였다. 사라는 그를 질질 끌어 보안관 앞에 던져 놓고 수십 개의 현상 수배 전단을 뜯어낸 다음 시내로 향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공고 속 현상 수배범들은 모두 사라졌다. 사라의 표적이 된 불운한 범죄자들은 죽거나 감옥에 갇혔다. 그때부터 술집이나 도박판에서 '미스 포츈'이라는 이름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갱플랭크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빌지워터에 널리고 널린 것이 현상금 사냥꾼이었으니까.

이후 수년간 미스 포츈의 명성은 널리 퍼지고 점점 화려해졌다. 비단 검 해적단의 두목을 럼주통에 처박아 버리거나, 손버릇이 나쁜 한 선장으로부터 '사이렌호'를 빼앗기도 했다. 또한 학살의 부두에서 반으로 절단된 레비아탄의 뱃속에 숨어 있던 미치광이 살인마를 잡기도 했다.

하지만 톱니 갈고리단의 비호를 받는 갱플랭크에게 대놓고 맞설 수는 없었다. 미스 포츈의 목표는 놈의 목숨뿐만이 아니었다. 비참한 굴욕을 선사하고, 그동안 도적질한 물건들을 모두 불태우고 난 뒤에야 애비게일의 대장간에서 죽어 버린 소녀의 한이 풀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사라는 소수정예의 심복들을 모집해 복수를 준비했다.

치밀한 계획을 세운 끝에 미스 포츈은 위험을 무릅쓰고 작전을 개시했고, 결국 갱플랭크의 데드 풀호를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었다. 포악한 해적왕의 압제가 끝나는 순간을 모든 빌지워터인이 목격했다. 사라가 꿈꾸던 복수가 계획대로 이뤄지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복수의 짜릿함은 금방 지나갔다.

갱플랭크가 사라지자 다른 선장들이 도시의 패권을 놓고 싸우기 시작했다. 형식적이나마 존재하던 법도 무시된 채 수많은 민간인이 무고하게 희생됐다. 어쩔 수 없이 미스 포츈은 사이렌호의 선장으로 추대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질 휴전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빌지워터에서 영원한 것은 없듯이 미스 포츈은 해적, 깡패 우두머리 등 자신을 위협하는 모든 이에게 누가 이곳의 주인인지 가르쳐 주어야 했다.

빌지워터를 차지하기 위한 진정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2. 깊은 바닷속으로

빌지워터의 백색 선착장은 그곳을 가득 매운 하얀 새똥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죽은 자를 위한 쉼터로 제격인 이름이 아닌가? 빌지워터 사람들은 시체를 땅에 묻지 않고 바다로 돌려보냈다. 차가운 심해로 가라앉은 사람들의 묘비는 수백 개가 넘는 부표가 대신했다. 바닷물이 넘실거릴 때마다 죽은 자들의 이름이 일제히 흔들렸다. 어떤 것들은 이름뿐이었지만 위풍당당한 크라켄이나 풍만한 섬처녀를 조각한 부표도 있었다.

미스 포츈은 궐련을 가볍게 물고서 선착장 끝에 있는 황홀의 럼주 통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한 손에는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은 관에 연결된 산소 튜브를, 다른 한 손에는 녹슨 도르래로 관 뚜껑에 연결된 다 해진 밧줄을 쥐고 있었으며 쌍권총은 쉽게 꺼낼 수 있는 곳에 차고 있었다.

수평선에 내려앉은 안개 위로 달빛은 그물처럼 촘촘히 내리꽂혔다. 송장을 먹는 갈매기들이 불길하게 끼룩거리며 부둣가의 굽은 지붕에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갈매기들에게는 좋은 징조였다. 누구보다 새로운 먹잇감이 생길 신호를 잘 알아 채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왔군.” 미스 포츈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용 비늘 코트를 입은 대머리 남자가 악취 나는 좁은 골목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선착장의 쥐 떼가 남자를 쫓아오며 찍찍거렸다. 혹시나 자신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남자의 이름은 자크문트 자이글로스로 문신 형제단 중 한 명이었다. 문신을 한 해적은 많았지만 자이글로스의 문신은 그중에도 특별했다. 비단뱀, 연인들, 침몰시킨 배들, 죽인 사람들의 이름으로 온몸이 뒤덮여 있었다. 미스 포츈의 눈에는 어떤 자기소개서보다 완벽해 보였다.

자이글로스는 결연하게 저벅저벅 걸어왔지만 초조한 눈빛을 감추진 못 했다. 허리춤에 상어 이빨 모양의 긴 검을 꽉 움켜쥐고 곁눈질을 하고 있었다. 총은 한눈에 봐도 값진 것으로 매끄러운 금속관이 달려 있었다.

“내 동생은 어디 있나?” 자이글로스가 물었다. “데리고 온다고 했잖아!”

“그거 필트오버 마법공학 소총인가?” 미스 포츈이 자이글로스의 질문을 뒤로하고 물었다.

“대답부터 해.”

“네가 먼저 대답하면!” 미스 포춘은 코웃음을 치며 도르래에 걸친 밧줄을 스르륵 풀었다. 관이 물속으로 기울며 조금 더 깊게 잠겼다.

“이 튜브가 얼마나 긴지 모르겠네. 동생이 숨을 못 쉬어 몸부림치길 원하는 건 아니겠지?”

자이글로스는 씩씩거리더니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미스 포츈은 그의 낯빛이 바뀌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제길. 그래. 필트오버 제다.” 자이글로스가 총을 꺼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비싼 거네.” 미스 포츈이 말했다.

“너라면 잘 알겠군.” 조롱 섞인 말투로 자이글로스가 되받았다.

미스 포츈이 다시 밧줄을 풀었다. 완전히 잠겨버린 관에서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왔다. 끼룩거리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전보다 더 커졌다. 자이글로스는 손을 높이 들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가 빌었다. “총을 줄 테니 일단 동생부터 꺼내줘.”

“얌전히 따라올 거야?”

자이글로스는 체념한 듯 웃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은데. 네가 내 배를 침몰시켰고 부하들도 전부 죽였으니까. 가족들은 빈민굴이나 감옥에 보내버렸고. 대체 뭐 때문에 그런 거냐? 마법공학 총? 아니면 현상금?”

“둘 다. 근데 다른 이유도 있어.”

“젠장. 대체 내 몸값이 얼만데 그러는 거냐.”

“돈으로? 바다뱀 은화 500닢.”

“고작 바다뱀 은화 500닢 때문에 이 소동을 벌이셨다?”

“넌 돈 때문에 죽는 게 아냐. 갱플랭크의 부하라서 그런 거지.”

“죽는다고? 잠깐. 현상금 공고에는 생포하라고 되어있을 텐데!”

“그렇지. 근데 이걸 어쩌나. 난 별로 말을 잘 듣는 편이 아니라서.” 미스 포츈이 밧줄과 산소 튜브를 손에서 놓으며 말했다. 관은 거품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심해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내 자이글로스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칼을 뽑아들고 내달렸다. 미스 포츈은 그가 코앞에 다다를 때까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쌍권총이 불을 뿜었다. 한 발은 눈을, 다른 한 발은 심장을 관통했다.

미스 포츈은 궐련을 바다에 뱉어 버린 다음 총구의 연기를 후 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걸. 그 미친놈이 야수같이 칼을 들고 달려들었어. 이건 정당방위라고.”

미스 포츈은 마법공학 소총을 주워 이리저리 살폈다. 그녀의 취향에는 너무 가벼웠지만 잘 만들어진 위협적인 총이었다. 총의 기름 냄새가 미스 포츈의 기억을 불러냈다. 제작소의 포근한 분위기, 다정하게 어깨에 손을 얹던 엄마의 감촉, 따듯한 바닷바람과 웃음소리. 입가에 미소가 어리는 듯했다. 미스 포츈은 회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바다에 마법공학 소총을 내던졌다. 전리품은 바다에 바치는 게 마땅했다.

미스 포츈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이글로스의 시체는 부둣가에 남겨두었다. 빌지워터에서는 시체를 바다로 돌려보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갈매기와 쥐들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게다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으니 보기 드문 진수성찬이 되리라.

3. 총잡이와 도박꾼

해당 문서 참조 바람.

4. 수장

노틸러스(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문서 참고 바람.

5. 구 배경

5.1. 배경

자신만의 배를 소유하고 승무원들을 거느린다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로망 중의 로망일 것이다. 각자의 가슴 속에 한가득 용기를 품고 룬테라의 험난한 바다를 항해하는 꿈! 이보다 더 근사하고 성공적인 삶이 어디 있겠는가?

빌지워터 출신의 현상금 사냥꾼 세라 포츈(통칭 전설의 여장부 미스 포츈)은 16살 생일이 갓 지났을 때부터 엄청난 위업을 이룩하기 시작했다. 이 매력적인 여성의 직업은 해결사! 각각 '충격'과 '공포'라는 이름이 붙은 쌍권총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포츈에게 해결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사건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현상금 사냥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그녀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자신의 배를 장만할 수 있었다. 당연히 합법적인 거래를 통했겠지만 약간의 미인계가 흥정에 동원되었을 거란 추측도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이 행운을 뜻한다고 해서 그녀가 항상 운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녀는 블루 플레임 섬에 위치한 북쪽 해안가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엄청나게 넓은 항구를 통해 오고 가는 상선들을 바라보는 것은 꽤 운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교역로에는 해적들이 꼬이기 마련. 그녀의 고향은 종종 갑자기 들이닥친 해적들의 약탈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항구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세라는 커다란 총성과 비명소리를 들었다. 현관문은 부서진 채 열려 있었고 그녀의 어머니가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다. 순간 머리로 둔탁한 무엇인가가 날아왔고, 그녀 역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숨진 어머니의 옆으로 쓰러진 그녀는 살인자의 얼굴을 쳐다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썼지만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었다. 악당의 동공은 붉은색이었으며, 그자의 얼굴은 두건 같은 것으로 둘둘 감겨 있었다.

이 끔찍한 사건 이후, 포츈은 해적들을 절대 신뢰하지 않으며 악명 높은 갱플랭크(그녀의 미인계에 넘어가지 않은 유일한 선장이다)와 빌지워터 정치판에 대해 자주 격렬한 논쟁을 벌이곤 한다. 그녀에게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첫 번째 목표는 빌지워터의 주민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강력하고 독립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 두 번째는 그녀의 어머니를 살해한 해적을 찾아 복수를 감행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지지 세력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이 되었다. ||

5.2. 리그의 심판

원문 링크

후보: 미스 포츈
날짜: CLE 20년 8월 31일

관찰

미스 포츈이 실크 블라우스를 걸친 건강미 넘치는 몸매만큼이나 당당한 태도로, 그 무엇도 거칠 것 없이 보무도 당당하게 대전당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 대양의 거친 파도에 흔들리는 배를 빼곤 그 어떤 건물에 들어가든 갑갑함을 느끼는 그녀다. 포츈은 발로란에서도 손꼽히는 장인이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그려내는 장관을 애써 재현해 놓은 우묵한 천정의 금박 장식을 경멸의 눈빛으로 쓱 훑어본다. 선장 지위를 상징하는 화려한 삼각 모자가 흔들리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못마땅해서 고개를 저은 것을 눈치챌 수 없었을지 모른다. 모자 아래로 풍성하게 드리워진 새빨간 머리카락이 어깨를 부드럽게 덮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뭍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타고난 강렬한 매력이, 어쩌면 허리에 차고 있는 금박으로 장식된 커다란 구식 소총보다 더 강력한 무기인 것 같다.

미스 포츈은 타일 바닥을 가로질러 경쾌하게 걸음을 옮긴다. 걸음을 디딜 때마다 매력적인 몸매가 더욱 돋보여, 누구라도 이 모습을 보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도 남을 게 뻔해 보인다.

고개를 드니 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진정한 적은 그대 안에 있나니.

사라는 미소라도 짓는 것처럼 입꼬리를 약간 실룩거리더니, 묘하게 우아한 동작으로 총집에서 소총을 꺼내 손가락으로 빙그르르 돌리고는 "적"이라는 글자를 조준한다. 그리곤 소리 없이 입술만 달싹여 '빵'하고 속삭이고는 총을 다시 총집에 넣는다. 그 이상은 더 지체하지 않는다.

회고

미스 포츈은 두 손을 허리에 얹고서 어둠 속에서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짓이 아닌가. 리그가 심판에 검은 연기 따위 얕은 술수를 쓸 줄 알았다면 상륙 따위 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발밑이 푹 꺼졌다. 몸을 움츠리려 해 봤지만, 사방에서 몸을 압박하는 익숙한 압력이 느껴졌다.

비명을 지르려 벌린 입에서 소리를 삼키며 물거품이 대신 나왔다. 이거 지금 물 속이야? 미스 포츈은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뭔가 단단한 걸 붙들려 애썼다. 저 멀리 위에서 수면이 빛을 반사하며 춤추는 게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맹렬히 팔다리를 휘저어도 빛은 계속 멀찍이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입에서 물거품이 더 새어 나왔다. 다리 피부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게 뭔가 이상했다. 숨이 얼마 안 남아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뭔가 문젠지 휙 돌아봤다. 단단히 뿌리를 내린 해초가 먹잇감이라도 되는 듯 발목을 단단히 감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힘껏 떼려 해 봐도 미끈미끈한 해초는 여간해서 풀리질 않았다. 이제 숨이 다 된 세라 포츈은 마지막 숨이 무심한 물거품으로 올라가며 작아지는 걸 지켜봤다. 소금물이 밀려 들어오며 폐가 따끔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시야가 흐려지자, 묘하게도 마음이 평안해졌다.

지금 가요, 엄마.

극심한 고통에 옆구리가 뒤틀리고 입에선 액체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세라는 내장이라도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 억지로 무거운 눈을 떴다. 흐린 시야가 겨우 뚜렷해지면서, 다행스럽게도 쏟아져 나오는 액체가 붉은색이 아니란 게 눈에 들어왔다. 시야를 가린 희뿌연 해초 같은 게 물에 젖어 늘어진 채 얼굴을 뒤덮은 머리카락에 닿아 있었다. 두 손에 힘을 주자 손아귀에 모래가 잡혔다. 이제야 기억의 공백이 메워졌다. 자신이 무릎 꿇고 앉아있는 이곳은 해변이고, 눈앞에 있는 웅덩이는 내장에서 쏟아져 나온 핏물이 아니라 거품 낀 바닷물일 뿐이었다. 짠물을 토해내려 요동치는 위장보다 먼저, 허파가 부풀며 큰 숨을 들이켰다.

"어린 여자애치곤 참 흉하네. 언뜻 보고 상어 밥인 줄 알았다."

뭐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세라의 입에서는 짠물을 뱉어내려는 기침만 터져 나왔다. 요란하게 차려입은 사내애한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세라는 등을 대고 바닥에 털썩 누웠다. 흑단 같은 머리카락과 음흉한 미소는 분명 능글맞은 바다 사나이의 그것이었지만,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어떻게……."

"운 좋은 줄 알아. 내가 인어를 잡는 중이었거든. 근데 네 다릴 보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알아?"

가쁜 숨이 이제 좀 정상으로 돌아왔다. "내 다릴 보고 실망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뭐 모양은 그리 나쁘지 않지만, 더 예쁜 다리도 많거든."

세라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자, 흠뻑 젖은 옷이 몸에 휘감겼다. "이보다 더 예쁜 다리가 어딨다고 그래?"

사내애가 깔깔 웃어젖혔다. "그래, 물에서 건져준 보답은 뭘로 할 생각이야?"

"고맙다?"

"고맙다는 말은 접수. 하지만 말로 때울 순 없지." 사내애가 세라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거 내놓는 게 어때?"

머리를 더듬어보니 매끈한 물건이 손에 잡혔다. 세라는 소라 껍데기를 다듬어 만든 아름답게 빛나는 빗을 머리카락에서 뽑아냈다. 엄마 빗이잖아? 의심스레 빗을 살펴보자, 마음 한구석에 잠들어 있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려 했다. 하지만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벌리는 순간, 사내애가 갑자기 성큼 다가오더니 세라에게 입을 맞췄다. 그제야 끈질기게 신경 쓰이던 무의식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서 번개 같은 깨달음이 엄습했다.

이 해변, 이 사내애… 엄마가 돌아가신 바로 그날이었다.

세라는 엄마가 흘린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서 집에서 여기까지 정처 없이 걸어왔던 것이다. 파도를 헤치고 걸으면서, 옷에 밴 핏물이 바닷물에 흘러들어 가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해서라도 정신을 차리려고, 그녀는 수면 아래로 몸을 담그고 비명을 질렀다. 파도가 그녀의 눈물과 하나가 되는지, 눈물이 흘러 바다를 이루는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그날, 소년은 제방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날 같았으면 소년이 얼마나 기다렸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어쩌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지쳐서 소년이 거기 왜 있는진 생각도 못한 채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소년의 입이 뭐라고 달싹였지만, 세라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소년이 파도를 헤치고 와서 그녀에게 입을 맞췄고,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감정이 더욱 어지러이 소용돌이쳤다.

소년이 엄마의 빗을 손에 쥔 채 몸을 떼며 키득거렸다. 언젠가는 피도 눈물도 없는 해적이 될 녀석이었다. 그는 전리품을 손에 쥔 채 느긋하게 장화 신은 발로 모래를 밟으며 멀어져 갔다. 그러더니 빗을 높이 쳐들고 몸을 돌리며 외쳤다. "이리 와서 뺏어봐!" 그리곤 깔깔 웃으며 저 멀리 해안을 점점이 수놓은 검은색 돛들 아래로 사라져갔다.

희한하게도 불끈 열의가 솟아나며, 세라의 가슴이 새로운 목표로 부풀어 올랐다. 이제 어머니의 시신을 묻어 드리고 살던 집을 불태워 없앤 다음, 기꺼이 어머니의 유품인 빗을 되찾아오리라.

기억이 다시 제자리를 되찾자, 미스 포츈은 사내애의 품에서 홱 벗어났다.

"너 대체 누구야?!"

"리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뭔가, 미스 포츈?" 뱃사람 말투는 싹 가셔 있었다.

"뭐라구?"

"리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뭔가?"

"난… 힘을 키우고 약탈할 거야." 자기 귀에도 신뢰가 가지 않는 대답이었다.

"리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뭔가?" 한 마디 한 마디가 추상처럼 매서웠다.

숨 막힐 듯한 정적 위로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녀석을 찾아야 하니까."

"속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니 기분이 어떤가?"

미스 포츈은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물에 빠졌다가 겨우 살아나 진이 다 빠졌지만, 거듭 질문을 받으니 왠지 활력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고맙군."

빛이 쏟아져 들어오며 눈앞의 복도가 이리 오라고 부르는 듯했다. 등 뒤의 대리석 문으로 물러날 수도 있었지만, 세라는 이 생각을 가볍게 떨쳐버렸다. 미스 포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목표한 상대는 잡고 마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