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스타파 하지의 수상 이력 | ||||
{{{#!wiki style="" {{{#009874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둘러보기 틀 모음 | |||
개인 수상 | ||||
| ||||
베스트팀 | ||||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 ||
منتخب المغرب لكرة القدم | ||
이름 | <colbgcolor=#ffffff,#191919> 무스타파 하지 مصطفى حاجي Mustapha Hadji | |
출생 | 1971년 11월 16일 ([age(1971-11-16)]세) | |
모로코 이프란 | ||
국적 | [[모로코| ]][[틀:국기| ]][[틀:국기| ]]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0cm | |
직업 | 축구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코치 | |
소속 | 선수 | AS 낭시 (1991~1996) 스포르팅 CP (1996~1997)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97~1999) 코번트리 시티 (1999~2001) 아스톤 빌라 FC (2001~2004) RCD 에스파뇰 (2004) 에미리트 클럽 (2004~2005) 1. FC 자르브뤼켄 (2005~2007) CS 폴라 에슈 (2007~2010) |
지도자 | 움 살랄 SC (2012~2013 / 수석 코치) 모로코 대표팀 (2014~ / 수석 코치) | |
국가대표 | 63경기 12골 (모로코 / 1993-2002) |
[clearfix]
1. 개요
모로코의 前 축구선수.
90년대 모로코를 주름잡았던 미드필더이자 1999년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에 빛나는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2. 클럽 경력
하지는 모로코의 이프란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나이에 10살때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로 이민갔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그는 처음 1년을 AS 낭시의 유소년 팀에서 뛰면서 계약을 했고, 다음해부터는 1군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낭시에서 5년간 뛴 후, 하지는 포르투갈의 스포르팅 CP와 스페인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뛰었지만 만족스러운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팀에서의 입지도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지에게 인생의 변환점이 오기 시작하는데 바로 1998년 FIFA 월드컵 무대였다. 월드컵에서 하지는 노르웨이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기억에 남을만한 골을 넣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고 월드컵 이후 같은 해에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를 수상하면서 그를 원하는 팀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는 고든 스트라칸이 감독으로 재임했던 코번트리 시티로 이적하였다.
경이적인 속도와 숙련된 주법을 겸비한 골넣는 공격형 미드필더인 하지는 오자마자 코벤트리의 에이스로 자리잡으며 당시 유망주였던 로비 킨과 함께 공격을 이끌었다. 하지의 맹활약은 코번트리에서 대표팀 동료였던 유세프 시부와 함께 뛰면서 경기 중에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팬들이 뻬즈[1]를 쓰는 유행의 발단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느 하위권팀들이 그렇듯 전력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팀이 강등되면서 그는 이전 시즌에 세 번 붙으면서 골을 넣었던 지역 라이벌 아스톤 빌라 FC로 이적하였다.[2]
그러나 코벤트리에서 만큼 인상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채 산발적으로 경기를 뛰면서 리그에서 사우스햄튼과 에버튼 FC를 상대로 각각 한 골, 그리고 UEFA 컵에서 NK 발라즈딘을 상대로 한 골을 기록하였다. 결과론적으로는 3시즌간 리그 35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실패한 영입이 됐다.
2004년 그는 자유계약으로 스페인의 RCD 에스파뇰로 이적하였고 그 해 6월까지 있었다. 그리고 아라비안 걸프 리그의 에미리트 클럽와 계약하면서 1년간 뛴 후,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2005년 독일의 2부리그인 1. FC 자르브뤼켄에서 2년간 뛰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룩셈부르크의 CS 폴라 에슈로 이적하여 3년간 뛴 후 2010년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1993년 A대표팀에 데뷔한 하지는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모로코를 대표하여 조별 리그 경기을 뛰었다. 2경기는 교체로 나왔고 마지막 경기였던 네덜란드전에서 교체로 나와 그의 첫 볼 터치로 하산 나데르의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모로코는 3경기 모두를 지면서 탈락하고 말았다.4년 뒤 1998 FIFA 월드컵에서는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중요한 대회였다. 3경기 동안 맹활약하며 자신의 진가를 드러냈으며 노르웨이와의 1차전에서는 멋진 컷인 플레이를 통해 오른발 슛으로 골 넣기도 했다. 그러나 팀은 하지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4. 지도자 경력
그는 2012-13 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움 살랄 SC 감독인 베르트랑 마르챙에 의해 클럽의 수석코치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팀이 리그 5위를 기록하고 2014년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하면서 코치진이 모두 해고되고 말았다.이후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이전에 바도우 에자키 감독이 지휘하는 모로코 대표팀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대회를 앞두고 모로코는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발병 이후 개최국에서 물러났고 대회 출전이 좌절되었다.
2017년, 대표팀 감독인 에르베 르나르을 보좌하여 20년만에 조국의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선수가 아닌 코치로서 오래간만에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팀은 조별리그에서 인상적인 활약에도 불구하고 운이 따르지 않으며 조 최하위로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5. 여담
- 그의 동생인 유수프 하지 역시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출신이며, AS 낭시에서 뛰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사미르 하지는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B의 로얄 엑셀시오르 비르통에서 활약하고 있고 차남인 자카리 하지는 독일의 SV 뢰흘링 푈클링겐에서 뛰고 있다.
- 2010 FIFA 월드컵에서 그는 FIFA가 아프리카를 대표하기 위한 대사에 포함되며 활동했다. 또한 하지는 지역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어 빈곤을 퇴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로코에 대한 투자 교류도 수반하고 있다.
- 자선 단체 Show Racism the Red Card의 지지자이기도 하다.
- 2026 FIFA 월드컵 유치를 위한 자국의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그러나 개최국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북아메리카로 결정되었다.
- 2023년 모로코 지진 때, 실종자를 찾는 일을 도왔다.#
6. 수상
6.1. 우승
- 스포르팅 CP (1996~1997)
- 수페르타사: 1995
- 아스톤 빌라 FC (2001~2004)
- UEFA 인터토토컵 : 2001
6.2. 개인
-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1999
[1] 모로코의 전통 모자[2] 웃긴건 지난 시즌 최종라운드에서의 상대가 아스톤 빌라였는데 전반 0:2로 앞서다가 거짓말같은 3:2 역전패를 당하며 너무나 안타깝게 강등을 당했다. 그런데 팀의 에이스가 강등을 당하자마자 자신들의 비수를 꽂은 라이벌팀으로 이적했으니 팬들의 심정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분류
- 1971년 출생
- 1991년 데뷔
- 2010년 은퇴
- 메크네스타필랄레트 지방 출신 인물
- 모로코의 축구선수
- 복수국적자
- AS 낭시/은퇴, 이적
- 스포르팅 CP/은퇴, 이적
-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은퇴, 이적
- 코번트리 시티 FC/은퇴, 이적
- 아스톤 빌라 FC/은퇴, 이적
- RCD 에스파뇰/은퇴, 이적
- 에미리트 클럽/은퇴, 이적
- 1. FC 자르브뤼켄/은퇴, 이적
- CS 폴라 에슈/은퇴, 이적
- 모로코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모로코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참가 선수
- 1994 FIFA 월드컵 미국 참가 선수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
- 1998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부르키나파소 참가 선수
- 200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가나/나이지리아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