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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慕容納4세기 ~ 384년
오호십육국시대 전연의 초대 황제였던 태조 문명제 모용황의 황자이자 남연의 제2대 황제였던 모용초의 부황이었다. 모후는 공손씨(公孫氏)였으며 본인은 단태후(段太后)와 혼인해 모용초를 낳았다.
사후 아들 모용초가 즉위하자 목황제(穆皇帝)로 추존되었다.
2. 생애
전연 시기 북해왕(北海王)에 봉해졌으며 370년 전연이 전진에게 멸망하여 합병되자 광무태수(廣武太守)에 임명되었다가 수년 후 거관(去官)함과 동시에 장액(張掖)[1]으로 거처를 옮겼다.383년 11월, 전진의 세조 선소제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참패하자 모용씨 황족이자 모용납의 조카인 모용홍이 전진으로부터 독립하여 서연을 건국하고(384. 4), 모용홍의 동생인 모용충이 전진의 수도인 장안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이에 부견은 격노하여 장안에 있었던 전연의 마지막 황제 모용위를 포함한 모용씨를 학살했고(384. 12), 그 과정에서 전진의 장액태수 부창(苻昌)이 늙은 공손씨와 임신 중인 모용납의 처 단씨만 남겨두고 모용납을 포함한 모용덕의 자제들을 전부 참수했다. 당시 모용초를 임신 중이었던 단씨는 사형이 결정되지 않아 옥에 남았는데, 과거 모용덕 밑에서 은혜를 입은 바 있는 옥졸 호연평(呼延平)이 몰래 단씨를 빼내서 공손씨와 함께 강(羌)족 거주구에 숨게 해주었다.
407년, 아들 모용초가 남연의 세종 헌무제 모용덕의 뒤를 이어 즉위하자 모용납은 목황제(穆皇帝)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