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0 15:30:34

모수

1.
1.1. 모집단(population)의 수1.2. 매개변수의 다른 말
2. 중국 조나라 사람 3. 씨앗용 나무 母樹

1.

1.1. 모집단(population)의 수

통계학에서 모 평균, 모 표준 편차, 모 분산모집단의 데이터를 말한다.

표본조사 문서 참조.

1.2. 매개변수의 다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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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국 조나라 사람

생몰연도 미상.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평원군, 조승()의 식객.

장평대전에서 패한 조나라는 패망 일보직전까지 몰렸으나, 다행히 백기의 공적을 질투한 범수가 농간을 부려 진나라는 일시 철군한다. 이후 진나라는 실책을 깨닫고, 왕흘을 대장으로 삼아 재차 조나라를 침공한다.

조나라는 수도 한단()이 포위당하자 이웃 나라에 원군을 요청한다. 이웃한 위나라는 형제국인데다 똑같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처지이니 원군을 보낼 것이나,[1][2] 문제는 멀리 남쪽에 위치한 강국 초나라였다. 진나라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초나라의 힘이 필요했으나, 초나라 입장에서는 거리가 있는 조나라 일을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조나라의 명사 평원군은 직접 초나라를 찾아가 왕을 설득해 원군을 끌어내기로 결심한다.

평원군은 3천 명을 헤아리는 식객 가운데 문무를 겸비한 빼어난 자만을 스무 명 추려 초나라로 함께 떠나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무수한 식객들 중 그만큼 뛰어난 자가 딱 열아홉이었고 나머지 한 사람을 찾을 길이 없었다. 평원군이 '이토록 많은 인재를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뭐냐'라고 실망하고 있을 때 말석에서 누군가 나섰다. 그는 대량(大梁)[3] 사람 모수였다.

평원군은 어이상실 웃으며 "훌륭한 사람은 송곳과 같아서, 주머니에 들어가면 반드시 뚫고 나온다. 그런데 3년 동안 무명이면 당신은 너무 뻔한 거 아닙니까?"라고 했다. 바로 여기서 고사성어 낭중지추(囊中之錐)가 유래했다. 그러자 모수는 천연덕스럽게 "그러니까 일단 한번 주머니에 넣어보시면 됩니다."라고 했다. 평원군은 이 재치있는 답변을 기특하게 여겨 모수를 다른 식객들과 합류시켜 초나라로 향했고, 모수가 스스로를 추천한 일 역시 고사성어화 됐는데, 바로 모수자천(毛遂自薦) 되겠다.[4]

평원군은 온갖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초나라의 왕 고열왕(考烈王)을 설득했으나, 내심 진나라를 두려워하던 고열왕은 요지부동이었고,[5] 자연스럽게 회담은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다른 식객들도 초조해하는 와중에 모수가 평원군과 고열왕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모수 : "뭐 이리 질질 끕니까 동맹이란 건 두 마디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고열왕 : "뭐냐 저 미천한 것이 어디서 무례를 저지르냐? 과인이 지금 너의 주인하고 얘기하는데 어디 끼어들어서 방해하려고 하는 거냐? 네가 죽고싶어 환장을 했구나?"
모수 : (칼집에서 칼을 반 쯤 꺼내며) "대왕은 지금 초나라 위세가 강대한 것을 믿고서 저한테 이렇게 대하면 안되지요? 그런데 지금 열 발짝 안에서는 너네 나라 할것 없이 위세가 다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대왕의 목숨은 제 손앞에 달려있습니다."
일단 이렇게 기선을 잡고 시작했다 그 이후에 모수가 잇기를 "과거 초나라는 왕호를 사용하면서 천하를 노릴 만큼 잘 나갔는데, 지금은 진나라한테 매일 전쟁에서 패배하고, 진나라 장수 백기라는 자는 지금 초나라 수도를 함락할 것을 다짐하며 눈물을 머금고 다가오는 판국에 지금 잠이 옵니까?"

고열왕은 비로소 진나라의 공격을 막을 결심을 굳히고서는 춘신군이 지휘하는 원군을 파병한다. 여기서 맹세의 뜻으로 삽혈(歃血)[6]을 했는데 고열왕이 먼저 마시고 그 다음 평원군이 마신 뒤 자신이 마셨는데 왼손으로 그릇을 잡고 오른손으로 같이 온 19인을 불러 "볼품없는 놈들. 너희들은 남들에게 빌붙어서 출세하는 놈들에 불과하다." 라 하면서 오히려 역관광을 시켰다. 이후에 귀국한 평원군은 자신이 인재를 보는 눈이 없었음을 반성하며 모수를 극진히 대접했다.

그러나 이 뒤의 행적은 그다지 좋지 못한데, 낭중지추 사건 다음 해에 왕의 명령을 받고 나간 전투에서 패한 모수는 자결을 선택했다고 한다. 조나라 왕은 위의 사건을 두고 모수가 군사지휘도 잘 할 것이라 여겨 억지로 총사령관직을 맡겼다. 그러나 모수는 자신의 군사적 재능이 떨어짐을 알고 사양하다가 어쩔 수 없이 맡았고, 결국 크게 패해서 산에 들어가 자결했다고 한다.

3. 씨앗용 나무 母樹

종자(種子)나 꺾꽂이 등을 얻기 위해 기르는 나무.


[1] 그런데 정작 위나라는 보낸다고는 해놓고 아래에 나올 초나라처럼 겁먹었다. 이는 진나라가 사전에 조나라 도와주는 나라는 그 나라부터 밟아버리겠다고 협박했기 때문, 결국 이 문제는 신릉군이 구원군을 이끌던 진비를 죽여 군권을 탈취한 후(...) 해결한다.[2] 그런데 신릉군이 원해서 진비를 죽인게 아니라 식객 후영이 신릉군 몰래 주해에게 진비가 신릉군 말을 듣지 않을것 같으면 죽이라고 밀명을 넣은것 후영은 모든 허물을 자신에게 있다며 자살하였고 이 모든 책임은 신릉군 혼자 짊어지게 되었다...이런 사정은 안리왕이나 진비의 식객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이후 신릉군이 귀국했을땐 진비의 식객들이 신릉군이 반란을 꾸민다고 모함하였다.(왕 입장에선 10만 대군을 맡길정도면 신임하는 장수인데 죽여버렸으니...)[3] 당시 위나라 수도[4] 참고로 다른 19명의 식객은 모수를 깔봐서 초나라로 가는 동안 모욕을 주려 했으나 모두 언쟁을 벌여서 모수에게 역관광당했다고 한다.[5] 초나라가 진나라를 두려워할만도 한게 당시 진나라는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지만 진나라를 제외한 육국은 그렇지 못했다. 그나마 전성기를 달리던 편이었던 조나라마저 장평대전으로 카운터 펀치를 얻은 마당이니 초나라 입장에서는 '조나라도 왕창 깨졌는데 우리가 간다고 이기리란 보장이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들만 하다. 게다가 이미 전전대엔 왕이 인질로 잡히고 전대에는 진짜로 수도가 점령당해 천도해야 하는 참사까지 벌어졌다(...) 덤으로 고열왕 본인도 계속된 패배가 누적되어 천도한다.[6] 춘추전국시대 때에 회맹을 하는 자리에서는 피를 마시는 의식을 통해 맹세를 표했다. 맹자(孟子) 고자(告子) 하편에 삽혈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