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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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000><colcolor=#fff> 브랜드명 | 말표 |
| 국가 | |
| 설립일 | 1970년 |
| 업종 | 신발류 |
| 대표자 | 손종근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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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대중교통에 부착된 말표 광고판 |
2. 역사
말표의 역사는 대한민국 신발 산업의 흥망성쇠 그 자체라 할 수 있다.2.1. 태동기: 마철리(馬鐵里)의 전설
* 1947년: 서울 청파동에서 '유한회사 태화고무공업사'로 창립.[* [1] 창립 초기에는 서울에 위치했으나 한국전쟁을 계기로 부산으로 이전했다.* 1951년: 6.25 전쟁 발발 후 부산으로 피난, 부산진구 당감동 109번지의 적산(敵産) 공장을 인수하여 자리를 잡았다.
- 지명의 유래: 공장이 위치한 당감동 일대의 옛 지명은 마철리(馬鐵里)였다. 조선시대부터 말발굽(편자)을 만들거나 갈아 끼우던 마을이라는 뜻인데, 이곳에 '말표' 신발 공장이 들어선 것은 기막힌 우연이자 필연이었다.[1]
2.2. 전성기: 수출 역군과 4대 천왕
| 1960년대 | 국내 최초로 신발 수출에 성공하며 수출 주도 산업화의 선봉에 섰다.[2] | 수출 역군 시절 신문 광고 1970년대 진해군항제 당시 태화고무 공장 전경 |
| 1973년 | '(주)태화고무'로 상호 변경[3] | |
| 1974년 | 기업공개(IPO)를 단행하여 증권거래소에 상장[4] | |
| 1980년대 | 교복 자율화 조치 이후 운동화 수요 폭발, 전성기 도래. <부산 신발 업계 라이벌 구도> * 태화고무(말표/까발로) vs 동양고무(기차표/르까프) * 국제상사(왕자표/프로스펙스) vs 삼화고무(범표/타이거) |
2.3. 쇠퇴와 해체
1980년대 후반부터 인건비 상승과 3D 업종 기피 현상, 해외 유명 브랜드의 공습으로 경쟁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무리하게 건설업(공영건업 인수 등)으로 사업 확장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1994년 신발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5] 이후 IMF 외환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1999년 최종 부도 및 상장 폐지되었다.3. 브랜드 이름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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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고속도로변 말표 야립 광고판 |
4. 주요 제품 및 특징
4.1. 말표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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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color=#ffffff> 말표 고무신 | 말표 털운동화 |
"간첩도 말표와 기차표는 안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었다. 타 브랜드에 비해 내구성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났다. 4.2. 말표 운동화
1970년대 학생용 운동화 시장의 강자였다. 남학생용 검정색 운동화와 여학생용 곤색 운동화가 대표적인 스테디셀러였다.4.3. 까발로 (Cava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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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color=#ffffff> 텍스트 로고 | 심볼 로고 |
4.3.1. 까발로 (Cavallo) TV 광고
| <rowcolor=#ffffff> 추억의 신발 브랜드 - 까발로(1) | 추억의 신발 브랜드 - 까발로(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