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00:03:13

마커스 하너먼

마커스 하너먼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PFA_UK_logo.png
}}} ||
미국의 前 축구선수
파일:0_Marcus-Hahnemann.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마커스 하너먼
Marcus Hahnemann
본명 마커스 스티븐 하너먼
Marcus Stephen Hahnemann
출생 1972년 6월 15일 ([age(1972-06-15)]세)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91cm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소속 선수 시애틀 사운더스 FC (1994~1996)
콜로라도 래피즈 (1997~1999)
풀럼 FC (1999~2002)
로치데일 AFC (2001 / 임대)
레딩 FC (2001~2002 / 임대)
레딩 FC (2002~2009)
울버햄턴 원더러스 FC (2009~2011)
에버턴 FC (2011~2012)
시애틀 사운더스 FC (2012~2014)
국가대표 9경기 (미국 / 1994~2011)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

[clearfix]

1. 개요

미국의 前 축구 선수.

레딩 FC의 골키퍼로 익히 알려져 있다.

2. 클럽 경력

2.1. 레딩 FC

시애틀 퍼시픽 대학교를 졸업한 하너먼은 1994년 시애틀 사운더스에 입단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97년에 콜로라도 래피즈로 이적해서 활약했다.

그러다 1999년에 잉글랜드 풀럼에 입단하면서 잉글랜드로 진출했다. 하지만 그는 주전이 되지 못했고, 출전 기회를 위해 로치데일로 이적했다.

2002년엔 레딩으로 완전 이적하면서 반전을 모색했는데, 레딩 이적은 그에게 큰 길을 열어주게 된다. 레딩으로 이적하자마자 주전 골키퍼 자리를 꿰찬 그는 레딩에서만 2번의 승격을 경험했고, 2005-2006 시즌엔 챔피언십을 우승하며 대망의 프리미어리그로 향하기도 하였다.

2006-2007 시즌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그는 여전히 팀의 주전 골키퍼로 맹활약했고, 팀이 첫 해 돌풍을 일으키는데 있어서 골키퍼로 좋은 활약을 수 차례 보여주었다. 특히, 13번의 클린 시트는 그가 해당 시즌에 얼마나 좋은 활약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라 볼 수 있다. 그 다음 시즌에도 변함없이 팀의 골문을 지킨 그는 레딩이 프리미어리그에서 2시즌을 치루는 동안 전 경기에 나서며 레딩의 대표 수문장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팀은 2007-2008 시즌을 끝으로 챔피언십으로 강등당했고, 그는 팀이 재승격을 위해 주축 선수들을 잔류시키려 하자 마커스 하너먼도 팀에 잔류해 다시 승격을 위해 한 시즌 더 뛰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은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아깝게 패배하면서 승격에 실패했고, 하너먼은 레딩과 계약 기간 만료로 인한 자유계약 선수가 되었다. 그는 레딩이 승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잔류보단 프리미어리그 팀으로 이적을 모색했다.

그리고 2009-2010 시즌을 앞두고 프리미어리그에 속해있는 울버햄튼으로 이적하며,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웨인 헤네시의 백업 골키퍼였으나 부진한 폼을 보이며 12월을 기점으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해 울브스의 잔류에 기여했다. 2010-2011 시즌엔 초반에는 주전이었으나 중반기 헤네시에게 주전 장갑을 내줬다. 여담으로 박지성이 울브스에게 홀로 2골을 넣어 맨유의 극적인 2-1 승리를 이끌어낸 경기에서 허용 골키퍼였다. 이렇게 그는 울브스에선 2시즌간 활약하며 41경기에 출전했다.

그리고 2011-2012 시즌엔 에버턴의 백업 골키퍼로 이적했지만 단 1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한 채 시즌을 끝냈다.

그리고 2012년에 그는 서서히 은퇴를 준비했고, 고국인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2013년이 되자 선수생활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미국 국가대표로 오랜 기간 활약했지만, 출전 경기수는 상당히 적은편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골키퍼인 케이시 켈러팀 하워드가 대표팀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던 전성기 시절에도 대표팀 넘버 3 키퍼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A매치 데뷔 자체는 매우 빠르게 했는데, 1994년 트리니다드 토바고와의 경기에서 첫 미국 대표팀 골키퍼로 선발 출장했다. 하지만 1994년 A매치 3경기를 소화한 후 쭉 대표팀과 멀어졌다가 2003년 6월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 출전하면서 9년만에 다시 대표팀에 복귀했고, 여기서 합격점을 받아 200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 대회의 미국대표팀 엔트리에 선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술한 대로 당시 미국이 월드 클래스 키퍼가 쏟아지던 시기라 주전으로 활약하진 못했다. 그래도 케이시 켈러 은퇴 이후에는 세컨 골키퍼 자리를 늘 지켰고, 미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두 번의 월드컵과 두 번의 골드컵에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