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7969e0><colcolor=#ffffff> 레젠다리움의 국가 린돈 Lindon | ||
| <nopad> | ||
| 드라마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에서 묘사된 린돈[1] | ||
| <nopad> | ||
| 린돈의 지도 | ||
| S.A. 1 ~ Fo.A. ? | ||
| 성립 이전 | ||
| 옷시리안드 | ||
| 이명 | Ossiriand 옷시리안드 | |
| 위치 | 가운데땅 서부 (청색산맥 서부) | |
| 중심지 | 미슬론드 | |
| 초대 군주 | 길갈라드 | |
| 정치 체제 | 군주제 (제2시대) | |
| 언어 | 신다린 퀘냐 난도린 | |
| 민족 | 놀도르 신다르 라이퀜디 | |
1. 개요
가운데땅 서부에 위치했던 요정들의 왕국이자 지역이다.[2]린돈은 제1시대의 벨레리안드에서 살아남은 일부 지역이면서, 동시에 제2시대에 길갈라드가 다스린 왕국의 명칭이기도 했다. 제2시대 초·중기에는 서부 가운데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정 왕국이었으며, 제3시대에는 키르단이 다스리는 회색항구를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2. 이름
린돈(Lindon)/린도네(Lindóne 또는 Lindónë)[Q] - '노래의 땅(Land of Music)'이라는 뜻이다. 노래를 뜻하는 lind가 포함된 원시 요정어 단어인 lindānā에서 비롯되었다.실마릴리온에서는 라이퀜디의 노랫소리가 겔리온 강 건너까지 들렸기 때문에 놀도르가 이 땅을 린돈, 즉 '음악의 땅'이라고 불렀다고 설명한다. 한편 후기 언어학 설정에서는 린돈이 원시 요정어 *Lindānā에서 파생된 난도린 계통의 이름으로, 신다르는 이를 린돈(Lindon) 또는 도르 린돈(Dor Lindon)으로 받아들이고 망명 놀도르는 린돈(Lindon) 또는 린도네(Lindóne)로 받아들였다고 한다.[4]
3. 역사
3.1. 형성과 건국
제1시대에는 벨레리안드의 동쪽 끝에 있던 옷시리안드 일대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벨레가에르 해와는 거리가 한참 먼 내륙이었으나 분노의 전쟁 이후 벨레리안드가 가라앉는 상전벽해급의 변화로 인해 바닷가가 되었다. 바다가 청색산맥의 일부를 뚫고 들어오면서 룬 만이 형성되었고, 살아남은 땅은 북쪽의 포를린돈과 남쪽의 하를린돈으로 나뉘었다.제2시대 1년에는 새롭게 형성된 룬 만에 회색항구가 세워지고 린돈이 성립했다.[5] 분노의 전쟁 이후 많은 엘다르가 서방으로 떠났지만, 오랫동안 싸우고 살아왔던 벨레리안드를 아직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요정들은 린돈에 머물렀다. 그중에는 놀도르뿐만 아니라 도리아스와 팔라스, 옷시리안드 등지에서 살아남은 신다르와 라이퀜디도 있었다.
이 땅은 놀도르 대왕인 길갈라드가 다스렸으며, 길갈라드는 룬 만 북쪽의 린돈에 거주하면서 서방 요정들의 대왕으로 인정받았다. 키르단은 미슬론드를 중심으로 회색항구를 다스리며 서방으로 떠나는 요정들을 위한 배를 건조했다. 길갈라드가 최후의 동맹 전쟁에서 전사한 후에는 키르단이 린돈에 남은 요정들을 이끌었지만, 길갈라드의 왕위를 계승하거나 놀도르의 대왕을 자처한 것은 아니었다.
3.2. 제2시대
제2시대 600년에는 누메노르의 선장이었던 비인투르가 엔툴렛세(Entulessë)를 타고 미슬론드에 도착했다. 이는 누메노르인이 가운데땅으로 돌아온 최초의 항해였으며, 길갈라드는 이들을 환대했다. 이후 린돈과 누메노르 사이에는 오랜 우호관계가 형성되었다.누메노르의 제6대 왕이었던 타르알다리온은 왕자 시절부터 여러 차례 린돈을 방문했다. 틈만 나면 배를 타고 원양 항해를 나설 만큼 바다를 사랑했던 그는 키르단에게 선박의 건조와 운용, 항만 건설에 관한 지식을 배웠으며, 길갈라드와도 친분을 쌓았다. 린돈과의 교류는 누메노르가 훗날 강대한 해양국가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린돈 역시 누메노르라는 강력한 동맹을 얻게 되었다.
망명 놀도르의 대왕이었던 길갈라드가 린돈의 국왕이었기 때문에 놀도르 계통의 국가로 인식되지만, 린돈에는 놀도르뿐만 아니라 신다르와 라이퀜디도 함께 살고 있었다. 왕국의 주요 군주였던 키르단은 신다르였으며, 반요정 엘론드는 길갈라드의 사자로 활동했다. 초기에는 가운데땅에 남은 놀도르 대부분이 린돈에 거주했고, 한 판본에서는 신다르가 주로 하를린돈에, 놀도르가 주로 포를린돈에 거주했다고 한다.[6] 서로 다른 요정 집단 사이에서 주로 사용된 언어는 신다린이었으며, 퀘냐는 망명 놀도르 사이에서 전승되었다.
제2시대 750년경에는 린돈을 떠난 많은 놀도르가 켈레브림보르를 중심으로 에레기온을 세웠다. 또 다른 판본에서는 갈라드리엘과 켈레보른이 많은 놀도르와 신다르, 초록요정들을 이끌고 린돈을 떠나 에리아도르로 이동했다고 한다. 한편 길갈라드 휘하의 놀도르와 함께 지내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 일부 신다르들은 동쪽으로 이동해 실반 요정들과 어울려 살았다. 이들 가운데 오로페르는 초록숲의 요정 왕국을, 암디르는 린도리난드의 요정 왕국을 다스리게 되었다.
제2시대 1200년경, 자신을 발라의 사자 안나타르라고 소개한 사우론이 린돈에 찾아왔다. 그러나 길갈라드와 엘론드는 그를 의심하여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른 요정들에게도 그를 경계하라는 전갈을 보냈다. 안나타르는 결국 에레기온에서 환영받았고, 그곳의 요정들에게 힘의 반지를 만드는 지식을 전했다.
사우론의 정체와 목적이 드러나면서 제2시대 1693년부터 요정과 사우론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길갈라드는 엘론드가 지휘하는 군대를 보내 에레기온을 지원했지만, 에레기온은 1697년에 멸망했다. 엘론드는 살아남은 요정들을 이끌고 임라드리스를 세웠으며, 사우론은 에리아도르 대부분을 차지하고 린돈까지 압박했다. 하지만 길갈라드는 청색산맥 서쪽에서 세력을 유지했고, 사우론은 누메노르의 지원을 받는 린돈의 항구들을 곧바로 공격하지 못했다.
제2시대 1700년에는 누메노르의 왕 타르미나스티르가 키랴투르(Ciryatur)가 지휘하는 대함대를 린돈으로 보냈다. 누메노르의 군대가 회색항구에 도착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고, 린돈과 누메노르의 연합군은 사우론의 군대를 에리아도르에서 몰아냈다.
훗날 누메노르의 왕 아르파라존이 사우론을 사로잡아 누메노르로 데려가자 길갈라드는 다시 세력을 회복했다. 이 시기 린돈의 영향력은 동쪽으로 크게 확대되어 안두인 대하와 초록숲의 변경에까지 이르렀으나, 이를 린돈이 그 전역을 직접 영토로 지배했다는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 누메노르가 몰락할 때에는 바다가 육지를 덮치면서 린돈도 큰 피해를 입고 영역이 축소되었다고 한다.[7]
제2시대 말, 길갈라드는 누메노르에서 살아남은 엘렌딜과 함께 요정과 인간의 마지막 동맹을 결성했다. 길갈라드는 린돈의 요정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섰으며, 키르단과 엘론드도 그와 동행했다. 오랜 전쟁 끝에 사우론은 패배했지만 길갈라드와 엘렌딜도 사우론과 직접 싸우다가 전사했다. 린돈은 전쟁에서 많은 요정을 잃었으며, 길갈라드에게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가운데땅의 놀도르 대왕위도 단절되었다.
3.3. 제3시대 이후
길갈라드가 전사한 뒤에도 놀도르와 신다르 일부는 린돈에 남았다. 키르단은 회색항구의 군주로서 미슬론드에서 이들을 이끌었고, 서방으로 떠나려는 요정들을 위해 계속 배를 만들었다. 제3시대 1000년경 이스타리가 회색항구에 도착했을 때에는 간달프의 본질과 사명을 알아보고 자신이 지니고 있던 불의 반지 나랴를 그에게 넘겨주었다.제3시대의 린돈은 제2시대에 비해 크게 쇠퇴했지만 군사력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다. 린돈의 요정들은 아르노르의 후계 왕국들이 앙마르와 싸울 때 여러 차례 원군을 보냈다. 제3시대 1409년 앙마르의 군대가 아르노르 북부를 휩쓸었을 때에도 키르단과 깊은골의 지원을 받은 두네다인들이 포르노스트와 북부 구릉을 지킬 수 있었다.
제3시대 1974년 아르세다인이 멸망한 뒤에는 키르단이 배를 보내 마지막 왕 아르베두이를 구하려 했으나, 배는 포로헬 만에서 침몰했다. 이듬해 곤도르의 에아르누르가 이끄는 대함대가 회색항구에 도착하자 키르단은 린돈과 아르노르에서 모을 수 있는 병력을 소집했다. 이들은 곤도르군, 깊은골의 요정들과 함께 포르노스트 전투에서 앙마르를 멸망시켰다.
반지전쟁 당시에는 키르단의 사자인 갈도르가 린돈을 대표하여 엘론드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린돈이 전쟁에 직접 군대를 파견했다는 기록은 없으며, 이 무렵에는 대부분의 주민이 해안에 머물면서 서방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운데땅을 떠나고자 하는 엘다르는 대개 린돈으로 향한 후, 회색항구에서 배를 타고 아만으로 항해했다. 제3시대 3021년에는 엘론드, 갈라드리엘, 간달프, 빌보 배긴스와 골목쟁이네 프로도가 회색항구에서 서방으로 떠났다. 키르단은 이들을 배웅했지만 함께 떠나지는 않았다.
모든 요정이 반드시 린돈을 거쳐 떠난 것은 아니었다. 어둠숲의 제2대 왕 스란두일의 아들 레골라스는 제4시대 120년 이실리엔에서 회색 배를 만들어 안두인 대하를 따라 바다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가운데땅 북서부의 엘다르는 대부분 회색항구를 이용했다.
제4시대에도 키르단은 회색항구에 남아 마지막으로 떠날 요정들을 기다렸다. 그가 언제 마지막 배를 타고 서방으로 떠났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며, 따라서 린돈이 언제 완전히 소멸했는지도 알 수 없다.
4. 주요 지역
린돈의 중심부는 청색산맥과 벨레가에르 해 사이에 있었으며, 룬 만을 기준으로 북쪽의 포를린돈과 남쪽의 하를린돈으로 나뉘었다. 룬 만 안쪽에는 중심지인 미슬론드가 있었고, 북쪽과 남쪽 해안에는 각각 포를론드와 하를론드가 자리했다.린돈의 정치적 영역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제2시대 초기에는 청색산맥 동쪽의 에리아도르 일부까지 길갈라드의 지배 또는 영향력이 미쳤으며, 훗날 탑산 구릉은 린돈의 전초기지로 관리되었다. 다만 사우론과의 전쟁 이후 린돈의 영역이 청색산맥 서쪽으로 축소되었다는 기록과, 제3시대 말에도 룬 강 서쪽이 린돈에 속했다는 기록이 함께 존재하므로 정확한 국경을 확정하기는 어렵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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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레젠다리움/지명#|]]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 드라마에서 묘사된 장소는 린돈의 한 중심지로 보이지만, 원작에서 린돈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청색산맥과 바다 사이에 펼쳐진 영역 또는 왕국의 명칭이었다. 또한 원작에서는 미슬론드를 비롯한 여러 항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2] 제3시대에는 인구와 세력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제2시대에는 요정과 인간의 마지막 동맹에서 대군을 동원할 만큼 강대한 왕국이었다. 그러나 망명 놀도르의 마지막 대왕이었던 길갈라드가 최후의 동맹 전쟁에서 사우론과 싸우다가 전사했고, 전쟁에서 많은 요정이 희생된 데다가 서방으로 떠나는 요정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점차 쇠퇴했다.[Q] 퀘냐[4] 《The War of the Jewels》의 〈Quendi and Eldar〉에 따른 설정이다. 따라서 린돈을 단순히 신다린 고유어로만 보기는 어렵다.[5] 《반지의 제왕》 부록 B의 제2시대 연대기에는 제2시대 1년의 사건으로 회색항구와 린돈의 성립이 기록되어 있다.[6] 갈라드리엘과 켈레보른의 행적에는 여러 판본이 있다. 그중 한 판본에서는 켈레보른이 하를린돈에 모여 살던 신다르를 다스렸다고 한다.[7] 《The Peoples of Middle-earth》의 제2시대 연대기에 따른다.[8] 전자는 《The Peoples of Middle-earth》, 후자는 《반지의 제왕》 부록 A의 기록에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