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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3년 출시된 롤렉스의 크로노그래프 장착 모델로, TAG Heuer 까레라, 모나코와 함께 유명한 레이싱 워치 중 하나이다. 그리고 명품시계의 대명사인 롤렉스의 제품들 중에서도 가격으로나 인기로나 최고급 라인업으로 손꼽힌다. 그리고 많은 시계 애호가들로부터 레이싱 워치들 중 구성과 비율 측면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계로 평가받는다.
2. 타키미터
가장 큰 특징은 베젤에 구간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타키미터(tachymeter)라는 눈금이 있으며, 메인다이얼 내에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소위 스톱워치 가능을 하는 3개의 서브다이얼(카운터)이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이렇게 스톱워치 기능이 포함된 시계를 크로노그래프라고 한다.롤렉스 공식 데이토나 매뉴얼의 크로노그래프 사용법
타키미터란 어떤 물체가 일정 거리(주로 1km)를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을 측정하여 구간평균속도를 계산하기 위한 눈금을 의미한다. 자동차가 출발하는 순간 푸셔를 눌러 크로노그래프 초침을 작동시키고 정확히 1km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다시 푸셔를 눌러 초침을 멈춘다. 이 때 초침이 가리키는 다이얼의 초는 당연히 1km를 달리는 데 소요된 시간이고, 베젤의 타키미터는 그 물체의 시속(km/h)을 표시한다.
예컨대, 만약 1km를 달리는 데 정확히 1분(=60초)이 걸렸다면 시속으로 환산하면 60km/h가 된다. 그 절반인 30초가 걸렸다면 속도는 그 두 배인 120km/h, 또 그 절반인 15초라면 240km/h가 될 것이다. 그래서 데이토나 베젤에는 다이얼 초(second)눈금 기준 60초에 60, 30초에 120, 15초에 240이 표시돼있다. 요약하자면 거리를 1로 고정시킨 상태에서 1시간은 3,600초이므로, 3,600 나누기 다이얼상 초는 베젤의 속도이다. 15초라면 시속 240(=3600/15), 30초라면 시속 120(=3600/30)이다. 물론 이 거리의 단위는 반드시 킬로미터(km)일 필요는 없으며, 미국에서는 마일(mile) 기준으로 사용해도 상관없다. 이 경우 베젤의 속도 단위는 1마일을 달린 결과값이므로 시속마일(mph)이 될 것이다.
참고로 현행 데이토나 베젤에 표시된 가장 빠른 속도는 9초 방향의 400km/h(혹은 mph)이다. 프랑스의 고속철도 TGV의 최고속도가 500km/h 이상이고, 대한민국의 KTX 또한 250-300km/h로 달리니 영 쓸모없는 스케일은 아니다.
3. 역사
데이토나의 역사는 크게 네 시기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아래에서는 데이토나의 직계조상으로 보기엔 애매하지만, 그 탄생의 배경이 된 여러 시계들이 등장한 소위 “프리-데이토나”(pre-Daytona)시기까지 포함하여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3.1. 프리-데이토나(pre-Daytona)
최초의 데이토나가 언제 등장했는지는 그 정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우선 롤렉스에서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처음 만든 기록은 1930년대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는 크로노그라프에만 한정된 기준이고, 실질적으로 1950년에 생산된 Ref. 6034와 1954년의 Ref. 6234에서야 비로소 타키미터와 3개의 서브다이얼이 등장한다.Ref. 6034와 Ref. 6234
다만, 이 시기에는 아직 '데이토나' 혹은 '코스모그래프라'는 이름이 붙여지지는 않았고 “Oyster Chronograph”라고만 돼있다. 만약 데이토나의 역사를 이 모델까지로 본다면 서브마리너나 GMT마스터보다 더 긴 역사를 갖는 셈이다.
오늘날의 데이토나와 비교해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타키미터 뿐만 아니라 텔레미터[1]까지 표기되어 무려 세 겹의 눈금이 겹쳐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타키미터와 텔레미터가 베젤이 아닌 다이얼 가장자리를 한 겹 더 둘러싼 형태로 배치되었다. 케이스 사이즈도 36mm로 작아서 모델에 따라 3개의 서브다이얼 가장자리가 외곽의 타키미터까지 걸쳐있기도 하다. 그리고 크로노미터 작동을 위한 상/하단 푸셔는 방수 스크류가 없었다.
Ref.6238
1962년에 출시된 Ref. 6238은 텔레미터가 사라지고 타키미터만 남아 다이얼 가장자리가 한층 깔끔하고 단순해졌다. 또한 흰색 외에도 검은색, 은색 다이얼 옵션을 제공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흰색 다이얼의 경우 여전히 이전 모델인 Ref.6234와 동일하게 텔레미터가 포함된 다이얼도 일부 발견되는데, 이는 롤렉스가 Ref.6234의 남은 다이얼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서라는 추측이있다.
3.2. 1963-1988: 데이토나의 탄생과 폴 뉴먼
Ref. 6239
1963년 등장한 Ref. 6239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명칭인 코스모그래프(Cosmograph)가 등장하였고, 3개의 서브다이얼이 바탕색과 대비를 이루어 시인성을 높였으며, 다이얼 가장자리에 있던 타키미터가 처음으로 베젤로 옮겨졌다. 그리고 다이얼 크기 또한 37mm로 소폭 커졌다. 코스모그래프라는 명칭, 뚜렷한 서브다이얼, 베젤에 새겨진 타키미터는 오늘날 데이토나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래서 데이토나의 시작이 언제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러 의견이 있지만, Ref. 6239부터는 거의 이견이 없으며 롤렉스 공식홈페이지에서도 데이토나의 탄생연도를 1963년으로 보고있다.
한편 1959년 미국 플로리다에는 데이토나 인터내셔널 스피드웨이가 지어져 전세계 레이싱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었다. 1962년 롤렉스는 이 데이토나 스피드웨이의 타임키퍼를 맡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1963년 이미 생산중이던 Ref. 6239의 코스모그래프 뒤에 데이토나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 이전까지는 코스모그래프만이 이 시계의 정식 명칭이었고 르망(Le Mans)이라는 펫네임이 붙기도 했다.) 다만, 그 이후로도 모델마다 시기마다 그 글자가 빠지기도 했는데, 아직 지금과 같이 확고하게 라인업과 그 명칭이 정리가 안 돼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Ref. 6240
불과 2년 뒤인 1965년 출시된 Ref.6240은 처음으로 용두뿐만 아니라 상단과 하단의 푸셔에도 스크류다운 형태를 도입하여 방수성을 높였다. 베젤의 소재 또한 기존의 알루미늄이 아닌 검은 아크릴에 흰색 타키미터를 배치시켜 더욱 뚜렷한 인상을 준다.
이후 데이토나의 계보는 외형상 두 가지 흐름이 이어진다. 전전 모델인 Ref. 6239를 계승하여 스틸 소재의 베젤을 사용하는 Ref.6262(1970년 딱 1년만 생산되어 매우 귀한 시계이다) 및 Ref.6265와, 직전의 Ref.6240을 따라 검은색 아크릴 베젤을 두른 Ref.6241 - Ref.6264 - Ref.6263이다. 심지어 당시는 지금처럼 철저하게 족보가 정리되지도 않아서 직전 모델의 단종 후 새롭게 출시되는 것 아니고, 동시에 네 개 이상의 모델이 함께 팔리기도 했다. 그리고 다이얼에 표시되는 텍스트도 시기별로 모델별로 제각각이었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데이토나의 실질적 앰버서더가 돼버린 폴 뉴먼이 착용한 데이토나는 이 가운데 Ref. 6239와 Ref. 6263이다. 특히 2017년 필립스 옥션에서 1,700만 달러에 낙찰된 유명한 그 시계는 Ref. 6239이다. 다만, 세세하게 레퍼런스까지 따지기 보다는 1960-1980년대에 생산된 이 시기의 데이토나들을 뭉뚱그려 사람들은 폴뉴먼 데이토나(Paul Newman Daytona 혹은 PND)라고 부르고 있다.
Ref.6263과 Ref.6265의 다양한 배리에이션들. 물론 검은색 베젤이 6263이고 스틸 베젤이 6265이다
이렇게 1971년 탄생한 Ref.6263 및 Ref.6265는 데이토나 역사에서 다소 난잡했던 1970-1980년대를 거치며 후술할 이른바 “제니스 데이토나”가 등장하기까지 무려 17년 동안 장수하였다. 다만, 이것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묘사된 결과론적 평가이고, 실제 이 모델들은 그다지 잘 팔리지는 않았다. 심지어 어느 시계는 1982년에 생산되어 1988년에야 팔렸다는 기록도 있다. 세이코를 시작으로 쿼츠를 이용한 가볍고 편리하고 저렴한 하이테크 시계들이 넘쳐나던 이 시기에, 오토매틱도 아닌 이 수동시계는 (특히나 다른 분야도 아닌 초를 쪼개서 측정하는 레이싱 워치로서) 값비싼 구형 시계일 뿐이었다.
여담으로 데이토나는 NASA의 1964년 우주 비행용 시계 테스트에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론진 비트나우어와 함께 참가했지만, 습도 테스트[2] 및 고온 테스트[3]에 불합격함으로써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에 패배한 굴욕의 역사가 있다. 이름부터 레이싱을 상징하는 스피드마스터가 우주로 간 반면, 정작 우주를 의미하는 코스모그래프가 우주비행 테스트에 불합격한 대신 대표적인 레이싱워치로 자리매김한 것은 시계사에서 라이벌 간 이름과 운명이 서로 뒤바뀐 아이러니한 사건이다.
3.3. 1988-2000: 제니스 데이토나
1970년대 세이코의 아스트론이 일으킨 쿼츠파동으로 전세계의 기계식 시계들이 힘든 시기를 겪는 가운데 유독 이 데이토나는 오토매틱은커녕 여전히 수동 무브먼트를 고집해왔다. (퍼페츄얼이라는 자체적인 명칭까지 붙일만큼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중시하는 롤렉스의 성향을 고려하면 꽤나 의아한 부분이다) 데이토나가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도입한 것은 1988년 Ref.16520부터이다. 아직 롤렉스는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갖춘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니스의 엘프리메로(El Primero) 무브먼트를 수정하여 사용했고, 그래서 수집가들은 흔히들 이 모델을 "제니스 데이토나” 혹은 국내 한정 “제니토나”라고 부른다.(같은 세대의 두 시계지만 타키미터상 좌측 흑판은 60-400km/h, 우측 백판은 50-200km/h로 측정범위가 달리 표시된 것이 흥미롭다.)
데이토나 역사에서 이 모델은 빈티지를 지나 모던워치로의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외관에 있어서는 약간의 디테일을 제외하면 오늘날 데이토나 모습은 이 시기에 거의 갖춰졌다. 크기는 기존의 37mm에서 40mm로 대폭 커져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고, 글라스도 운모에서 사파이어 크리스탈로 바뀌었다. 서브다이얼 모양은 기존의 단순한 둥근 면에서 벗어나 링 트랙 형태가 되었다. 오리지널 제니스 무브먼트의 진동수는 원래 5Hz였으나, 롤렉스는 더 긴 파워리저브와 안정성을 위해 이를 일부 수정하며 4hz로 진동수를 낮추었고 그에 따라 현대의 데이토나보다 다소 초침의 흐름이 투박한 면이 있다.
이전까지 롤렉스는 서브다이얼의 숫자들을 착용자의 시선을 기준으로 표기하였으나, 이 제니스 데이토나부터는 회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각 카운터의 중심을 기준으로 빙 둘러 표기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다만, 유독 12시간 카운터 하단의 6은 그 위치상 완벽하게 뒤집혀야하는데 하필 숫자 9와 모양이 같아져버렸다. 결국 롤렉스는 이 모델의 생산 도중에 원칙(?)을 깨고 저 6만은 착용자의 시선을 기준으로 표기하기로 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수집가들은 초기에 6이 뒤집힌 채로 생산된 일부 시계들을 소위 인버티드 식스(inverted 6)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데이토나 역사에서 처음으로 롤레조(콤비 또는 투톤) 모델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금통 모델은 이미 폴 뉴먼 데이토나 시절에도 소량 생산된 바 있다.)
3.4. 2000-2016: 최초의 인하우스 무브먼트
Ref. 116520
제니스는 LVMH 그룹에 인수된 후 같은 그룹 내의 불가리, 태그호이어, 위블로 외에는 타사로의 무브먼트 공급을 중단하기로 한다. 이에 롤렉스는 2000년 자체개발한 인하우스 무브먼트 Cal. 4130을 탑재한 Ref. 116520을 내놓는다. 제니스 무브먼트 대비 80% 수준의 부품 수만으로도 동일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었으며, 2000년에 이미 72시간의 꽤나 넉넉한 파워리저브를 갖게 되었다. 롤렉스가 각잡고 만든 이 무브먼트가 그야말로 명품인지라 무려 2022년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게 된다.
직전 모델인 제니토나 Ref. 16520과 외관상 차이는 거의 없다. 그나마 흰판의 경우 서브다이얼 링의 색의 차이라도 있지만, 검은판은 언뜻 눈으로 봐서는 구분하기가 어렵다. 서브다이얼의 경우 제니토나의 초침이 9시 방향에, 12시간 카운터가 6시 방향에 있던 반면 Ref.116520에서는 이 둘의 위치가 서로 바뀌었다. 그리고 미세하게 3시와 9시의 서브다이얼 위치가 기존보다 살짝 위로 올라가며 중앙 축과 일직선에 위치하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저런 무브먼트의 효율화를 위한 설계의 결과로 추측된다.
한편, 앞서 잠깐 언급한대로 제니토나 Ref.16520의 흰판 모델은 서브다이얼 링이 뚜렷한 검은색인데 반해, Ref.116520에서는 은색으로 바뀌어 바탕색과의 대비가 다소 약해졌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검은판을 더 선호했고, 심지어 약간의 돈을 추가하면 흰 판을 구매한 뒤 사후 검정 다이얼로 교체하는 것도 가능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중고시장에서 Ref.116520은 검은판이 확실히 더 많이 유통되는데, 이 중 상당수는 원래 흰 판을 뜯어내고 검정판으로 갈아끼운 것이라는 설도 있다. 아무튼 롤렉스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였는지 그 다음 모델인 Ref.116500(소위 “세라토나”)부터는 다시 제니토나와 비슷하게 흰판 서브다이얼의 가장자리를 검은색으로 복귀시켰다. 그리고 다시 2차시장에서 흰판이 검정판보다 인기가 많아졌다.
3.5. 2016-현재: 세라크롬 베젤
2011년 처음으로 데이토나 라인업에 세라믹 베젤(롤렉스 자체 명칭으로는 세라크롬)을 착용한 모델이 출시되었다. 다만, 금통 모델에만 한정되었으며, 2016년에 드디어 주류 스틸모델인 Ref. 116500에도 적용되어 실질적인 세라크롬(Cerachrome) 데이토나 시대를 열게 된다. (국내 한정 흔히들 "세라토나"라고 부른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흰판의 서브다이얼의 가장자리가 제니스 데이토나 시절과 같이 뚜렷한 검은색으로 복귀한다. 또한 타키미터의 인덱스 형태가 기존의 점 형태에서 삼각 화살표 모양으로 바뀌었고, 숫자도 크기를 살짝 키우는 동시에 베젤을 따라 회전하며 아래쪽은 뒤집힌 모양이 되었다.
또한 2023년에는 23년간 장수했던 Cal.4130 무브먼트를 개선하여 Cal.4131을 탑재한 Ref.126500을 내놓는다. 이 모델에서는 세라믹 베젤 외곽에 얇은 테두리가 추가되었고, 인덱스와 서브다이얼 굵기가 약간 더 슬림하게 변경되는 등 소소한 변화가 있었다.
다만, 이같은 디자인과 소재의 차이는 외관상 큰 차이를 보이는 듯 하지만 시계의 본질이나 철학 측면에서 2000년의 Ref.116520 이후 뚜렷한 개선점은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미 2000년에 시대를 앞선 완성도의 시계를 내놓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보는 시각에 따라 데이토나 역사에서 2000년의 Ref. 116520 이후 현행모델까지를 같은 시대로 묶어서 보는 사람들도 있다.
4. 뒤늦게 주목받은 라인업
2017년 10월 세계 4대 경매 중 하나인 필립스 옥션에서 폴 뉴먼의 데이토나 시계가 1,780만 달러(USD 17.8 million), 우리돈 약 240억원에 낙찰되며 화제가 되었다.# 이는 당시 이 시계 자체의 개선이 이루어진 것도 아닌[4], 뜬금없이 수 십년전 시계가 소위 "셀럽"의 소장품으로서 재조명된 것에 불과했지만, 롤렉스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데이토나를 최고 인기모델로 끌어올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당시 경매실황을 보면 처음 제품소개 후 100만 달러를 시초가로 하여 경매가 시작되자마자, 누군가가 첫 호가부터 그 10배인 "1,000만 달러"를 크게 외쳐 장내가 술렁이는 것을 볼 수 있다.[5] 아무튼 이 경매는 이 시계와 관련된 가장 극적이고 유명한 일화이다.하지만 한편으로는 거의 유일한 서사라는 말이기도 하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 데이토나는 출시된지 반 세기가 넘는 오랜 기간동안 그다지 주목받는 라인업이 아니었다. 폴 뉴먼 외에 특별히 떠올릴 만한 유명인 애호가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그나마 폴 뉴먼도 그 시계를 처음 갖게 된 계기는 아내가 선물해주었기 때문이었다.[6] 심지어 1975년 영국의 James Dowling라는 유명한 롤렉스 전문가가 GMT 마스터를 사기 위해 매장을 방문했는데, 딜러에게 현금으로 지불할 테니 할인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딜러의 답변이 걸작인데 “롤렉스는 결코 할인을 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데이토나만 예외적으로 20% 할인해드립니다.” 였다고 한다. # 이처럼 데이토나는 1980년대에도 워낙 인기가 없어서 할인을 적용하면 데이트저스트보다 저렴하게 팔렸다고 한다.
그나마 이 폴 뉴먼 에피소드 조차도 이 시계 자체의 우수성이나 혁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다. 데이트저스트, 서브마리너, GMT마스터는 당대에 많은 유명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일반인과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을 만들어낸 반면, 이 데이토나는 딱히 떠올릴 만한 에피소드도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 롤렉스는 흔히 오이스터(방수성)와 함께 퍼페츄얼(오토매틱 무브먼트)을 자랑스러워하며 다이얼에 빼곡하게 기재하곤 한다. 그런데 데이토나는 1987년까지 수동으로만 출시되었다. 오늘에야 소위 감성의 영역으로서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지만, 당시는 세이코가 최첨단 기술인 쿼츠무브먼트까지 발명한 마당에, 자동도 아닌 수동무브먼트는 구닥다리라는 인식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나 자동무브먼트를 강조하는 롤렉스 내에서는 더더욱. 심지어 1988년에 드디어 도입된 자동무브먼트조차 100% 인하우스 개발이 아닌 제니스의 것을 가져왔다.
- NASA의 달 탐사용 시계 선정에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에게 깔끔하게 패배했다. 소련과 우주경쟁을 펼치던 당시 미국인을 비롯한 서방권 시계 애호가들에게 달에 가는 시계란 단순한 기술력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엘리트 파일럿을 위한 GMT 마스터, 잠수부를 위한 서브마리너가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름조차 호기롭게 우주와 관련된 “코스모그래프”라 붙여진 시계가 정작 경쟁사에 패배하고 돌아왔으니 체면이 구긴 것은 사실이다.
- 금통시계 혹은 콤비(투톤)과 같은 소위 고급화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은 면도 있다. 비슷한 툴워치인 서브마리너나 GMT마스터가 여러 금소재의 시계를 다수 출시했던 반면, 데이토나는 1988년 제니스 데이토나 이전까지 정말 극소수의 시계에만 금을 활용하였다. (없지는 않다) 자동 무브먼트 도입도, 고급화도 상대적으로 늦었던 셈이다.
- 무엇보다 물량 자체가 너무 적다. 롤렉스는 비상장기업으로서 생산량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다만 업계 전문가들은 롤렉스가 대략 매년 100만점 정도의 시계를 생산한다고 추정한다. 그리고 데이트저스트가 이 가운데 절반 혹은 그 이상인 50-60만을, 나머지 40-50만 중에서 서브마리너가 약 15-20만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반면에 데이토나는 서브마리너의 불과 10분의 1 수준인 1.4만 - 2만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 #[7] 물론 희소성이 시계의 가치를 높여주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련된 서사가 만들어질 여지가 적음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은 일단 자신이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면 그것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고, 같은 물건을 소유한 사람끼리는 동질감을 느끼며 스토리를 나눈다. 데이토나는 서브마리너에 비해 이런 동지를 찾을 가능성이 10분의 1밖에 없다.
이처럼 데이토나는 출시 후 거의 50년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7년 폴 뉴먼 시계 경매와 뒤이어 찾아온 인플레이션 기조를 타고 2020년대에는 롤렉스 내에서 최고급이자 최고 인기 시계로 손꼽히는 것을 보면 정말 격세지감이다.
5. 실측 사이즈 관련
시계 크기와 관련된 논란이 있다. 1988년 제니스 데이토나 이래 현행모델까지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케이스 직경을 40mm로 표기하고 있다. 사진상으로도 서브다이얼과 베젤의 타키미터같은 복잡한 디자인 때문에 최소한 그 정도는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다이얼 크기가 40mm로 동일한 다른 시계들(서브마리너, GMT마스터 등)을 착용하다가 이 시계를 착용해보면 확실히 작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대부분은 얇은 케이스 두께의 때문이라 여기고 넘어갔다. (케이스가 얇다는 것도 의외이다.)그런데 일부 해외 포럼이나 유튜브에서 캘리퍼를 이용해 직접 측정해본 결과 실측사이즈는 38.0mm-38.5mm 정도로 공식 사이즈보다 많이 작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해외 포럼 글 #1 #2 #3 #4 심지어 소재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는 주장도 있음
시계 유튜버 Britt Pearce의 영상 일부. 오차를 고려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하였으나 모두 비슷하게 38mm 초반대의 값을 얻었다. 비교를 위해 같은 기준으로 측정한 GMT-마스터 2는 공식제원과 거의 같은 측정값이 나왔다.
실상은 아시아인들의 손목 사이즈와도 잘 맞아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39mm의 튜더 블랙베이 58보다도 더 작은 셈이다. 롤렉스가 왜 굳이 공식 제원을 오버사이즈로 표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서브마리너와 같은 크고 두꺼운 시계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겐 좋은 선택지이다.
6. 여담
* 잠수를 하며 시간을 확인해야 할 필요 때문에 서브마리너를 구매하는 사람은 거의 없듯이, 이 시계의 크로노그래프와 타키미터 기능을 실생활에서 사용할 일은 거의 없다. 사실 몇 천 만원의 돈을 주고 이 시계를 구매하여 착용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크로노그래프 조작법이나 타키미터 눈금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죽하면 이 시계를 실생활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는 사례가 컵라면 물 붓고 기다리는 시간 잴 때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 시침 분침을 제외한 가장 긴 침은 초침이 아니라 크로노그래프 초침이기 때문에 이 시계를 착용한 시간의 99.99%는 멈춰있다. 시계의 항상 움직이는 부분은 초침인데, 이것은 (2000년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사용한 이후) 6시 방향의 카운터에서 조그맣게 움직이다. 그래서 기계식 시계의 우아한 역동성을 긴 초침으로 감상하지 못해 아쉬운 면도 있다.
- 한동안 LG 트윈스의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독려하기 위해 1998년 당시 구본무 회장이 해외출장지에서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LG 트윈스 측에서 실제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롤렉스 데이-데이트 모델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사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Vol.2에서 주인공인 베아트릭스 키도가 자신의 임신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임신테스트기를 두고 초를 재는 상황에서 이 시계가 등장한다. 사실 그 시계는 가품이다. 이것은 감독이 철저히 의도한 연출이라는 게 중론이다. 애초에 킬 빌 시리즈는 온갖 홍콩 및 일본 액션극에 대한 오마주로 범벅된 의도적 B급 영화로서, 고급시계 마저도 오리지널이 아닌 모사품임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영화 속 시계는 진품처럼 보이려는 노력조차도 없이, 가품임을 숨기지 않으려는 듯 (심지어 관객을 조롱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듯) 만들어져있다. 진품의 경우 3시, 6시, 9시 방향에 위치한 3개의 서브다이얼은 30분 카운터 / 12시간 카운터 / 초침으로 구성된 반면에(그 배치는 연식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품은 진품에 있지도 않은 날짜 / 요일 / GMT 시침이 그려져있다. 이 사진과 상단의 진품 사진의 다이얼을 비교해보자.
마틴 스코세이지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조나 힐이 연기한 도니 에이조프(Donnie Azoff)가 착용한 시계도 마찬가지로 가짜다. 정품 대비 지나치게 케이스가 두껍다. 이 시계는 제니토나의 금통모델인 Ref. 16508을 카피한 것이며, 진품이라면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세계관과도 잘 맞았을 것이다.
2006년에 개봉한 론 하워드 감독, 톰 행크스(로버트 랭던 역)와 오드레 토투(소피 느뵈 역) 주연의 다빈치 코드에서 잠시 등장한다. 취리히 은행 금고 야간 매니저인 앙드레 버네가 현금수송차 운전수로 변장하여 경찰로부터 쫓기고 있던 랭던과 느뵈를 짐칸에 태우고 나가다 경찰의 검문에 걸린다. 이 때 버네는 자신이 트럭운전수일 뿐이라 둘러대지만, 경찰은 박봉의 트럭운전수 손목 위에서 반짝이는 데이토나 시계를 보고 강한 의심을 하게 된다.스위스 은행 직원이 스위스 시계를 차도 롤렉스는 특별하다.
- 전설의 아이돌 기수인 타케 유타카가 애용하는 롤렉스 모델이다. 본인 曰 첫 우승했을 때 받은 상금으로 이 모델을 구입해 항상 차고 다닌다고. 그외에 다양한 바리에이션의 데이토나 모델들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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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텔레미터는 속도를 측정하는 타키미터와 달리 음속 (音速)을 이용하여 거리를 측정하는 눈금이다. 예를 들면 번개가 치는 순간 크로노그래프 초침을 작동시키고 천둥소리가 들리는 순간 멈춘다면 번개가 친 지점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음속은 초속 약 340m로 고정돼있고, 시간은 초침으로 측정이 가능하니 그 둘을 곱하여 거리를 산출할 수 있다. 이 기능은 전장에서 폭발음의 도달 시간을 측정하여 적의 포가 얼마나 멀리 설치되었는지를 확인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 영화 테이큰 3에서 주인공 리암 니슨이 소리의 도달시간을 이용해 시계로 거리를 계산하는 장면이 나온다.[2] 두 번 정지했다.[3] 초침이 휘어지고 시침에 달라 붙었다.[4] 2017년은 이미 폴 뉴먼 데이토나가 단종되고 그 뒤로도 두 세대를 지나 세라크롬 데이토나가 판매되고 있던 시기다.[5] 진행자도 스스로 귀를 의심한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이 압권이다. 심지어 백만(one million) 아니냐고 재확인까지 한다. 이후 호가가 10.5, 11.0, 11.5로 약 10여분간 차곡차곡 오르다가 15.5(1,550만 달러)에 낙찰되며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이 최종가격에 구매자 수수료 12.5% 등이 붙어 최종 지불가격은 1,780만 달러가 된다.[6] 물론 이후부터 꾸준히 데이토나를 착용한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이것이 아내의 선물이기 때문이든 혹은 본인의 취미인 레이싱과 마침 잘 맞는 시계라서든, 아니면 정말로 이 시계를 사랑해서든 말이다.[7] 롤렉스가 우리에게 너무 친숙한 브랜드라 흔하게 느껴지지만, 애초에 연간 100만점이라는 숫자는 결코 많다고 할수 없다. 롤렉스는 전 세계에 약 1,800개의 딜러샵을 통해 판매되는데(미국 약 300, 독일 약 130, 프랑스 100개. 대한민국은 19개) 공식 홈페이지상의 라인업만 14개이다. 그리고 각 라인업마다 색, 소재, 크기, 디자인 따른 바리에이션이 있는데, 데이트저스트의 경우 혼자서 700개 이상 종류가 판매된다. 보수적으로 잡아 각 라인업당 30가지 종류만 있고 전 세계의 각 딜러샵이 하나씩만 판다고 쳐도 75만점이 되어 100만에 근접하게 된다. 데이트저스트를 제외하면 물량이 매우 적다고 알려진 데이토나나, GMT마스터의 펩시 같은 시계는 직원들조차 일년 내내 구경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하물며 그 데이토나 안에서도 스틸 시계를 특정한다면 더더욱 희소한 물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