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21:46:08

로이 설리번

<colbgcolor=#000><colcolor=#fff> 로이 설리번
Roy Sulliv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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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로이 클리블랜드 설리번
Roy Cleveland Sullivan
출생 1912년 2월 7일
미국 버지니아 주 그린 카운티
사망 1983년 9월 28일 (향년 71세)
미국 버지니아 주 둠스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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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 아서 클리블린드 설리번 (1884~1967)
어머니 - 아이다 설리번 (1885~1971)
형제자매 누나 - 해리엇 와이즈 (1906~1974), 에델 쉬플렛 (1908~1997), 조세핀 리치 (1910~1983)
남동생 - 에드거 설리번 (1914~1983), 앨리스 설리번 (1916~2010), 조셉 설리번 (1923~2003), 메러디스 설리번 (1927~2015)
여동생 - 에바 설리번 (1917~1977), 루스 설리번 (1920~2013), 에블린 웹스터 (1925~2009)
배우자 마들린 라우다부시 (1943년 결혼)
패트리샤 설리번 (1962년 결혼)
자녀 모벨린 휴즈 1928~1979)
로이 설리번 주니어 (1933~1996)
직업 공원 관리인

1. 개요2. 생애
2.1. 기네스북에 오른 사나이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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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buzzlamp.com/Roy_C_Sullivan_converted.jpg

미국의 공원 관리인.

2. 생애

1912년에 미국 버지니아 주 그린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관찰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36년부터 버지니아주의 셰넌도어[1] 국립공원의 산림 관리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던 그는 1983년 9월 28일 이른 아침, 부인의 침대에 누워 자신의 권총으로 자신의 오른쪽 귀를 향해 격발,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아내가 자살한 그의 시신을 보고 신고했다.

2.1. 기네스북에 오른 사나이

7번이나 번개를 맞고도 생환한 남자기네스북에 벼락을 가장 많이 맞은 사람으로 등재된 사람이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그는 1936년 셰넌도어 국립공원에서 산림감시원 일을 시작한 이후 1942년부터 1977년까지 번개를 총 7차례에 맞았으며 번개에 맞을 때마다 모두 살아남았다. 그 사고 때문에 ‘인간 피뢰침’이란 별명을 얻었으며 주변에선 그와 같이 붙어있으면 벼락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를 피하기도 하였다.

아래는 그가 7번동안 번개를 맞고 살아난 사고 목록으로 당시 세넌도어 국립공원 관리인 동료였던 테일러 호스킨스(R. Taylor Hoskins)가 직접 목격한 것들이다. 설리번은 어린시절에도 번개를 맞은 적이 있다고 회상했지만 입증할 방법이 없기에 8번으로 정정요청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 1942년 4월 - 그는 처음으로 번개에 맞았다. 망루에는 피뢰침이 없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다가 번개에 바로 맞았는데 바지의 오른쪽 부분 옷조각이 떨어져 나갔고 구두에 구멍이 났다.
  • 1969년 7월 - 두 번째로 번개에 맞았다. 산길에서 트럭을 몰고 가는 중에 맞았는데 벼락이 처음엔 근처의 나무에 떨어졌다가 트럭의 열린 창문을 향했다. 그는 번개에 맞아 기절하고 눈썹, 속눈썹과 머리카락 대부분이 탔다. 트럭은 계속 움직이다 절벽 끝에 다다라서야 멈춰섰다.
  • 1970년 - 그의 집 앞뜰에서 번개에 맞았다. 변압기에 맞은 다음 왼쪽 어깨에 맞았다.
  • 1972년 - 셰넌도어 국립공원의 관리소로 걸어가는 중 네 번째로 번개에 맞았는데 머리에 벼락이 떨어졌고 불이 났다. 입고 있던 재킷에 붙은 불을 끄려 화장실로 갔는데 수도의 높낮이가 맞지 못하여 젖은 타월로 대신했다. 그는 네 번째 맞은 이후 어떤 힘이 자기를 죽이려는 거라고 믿고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 1973년 8월 7일 - 다섯째로 번개에 맞았다. 순찰을 도는 중에 설리번은 비구름을 보고 그 자리를 급히 떠나기 시작했으나 비구름이 그를 쫓아오듯 보였다고 한다. 그 비구름보다 빨리 갔다고 생각할 때 트럭에 타고 가면 안전하다고 판단했으나 잠시 후에 번개에 맞았다. 머리에 불이 붙었으며 왼쪽 팔다리와 오른쪽 다리의 무릎 아래까지 옮겨붙었다. 그는 트럭으로 기어가서 캔에 담긴 물을 부었다.
  • 1976년 6월 5일 - 여섯째로 번개에 맞아 발목을 다쳤다.
  • 1977년 6월 25일 - 그날 아침에 설리번은 민물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 머리에 맞았고 머리, 가슴, 배에 화상을 입었다. 차를 타고 도망가는 중에 이 나타나서 낚시줄에 있는 송어를 가져가려 하자 그는 나무가지로 곰을 때렸고 도망칠 수 있었다.[2] 이게 일곱 번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리번이 번개에 맞은 기록이다.

야외 활동이 많은 산림 관리인이라 번개에 맞을 확률이 올라간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평생 산림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한번도 안 맞은 사람이 더 많다. 게다가 이렇게 번개를 많이 맞았으면서 죽지 않고 마비와 같은 신경계 이상도 발생하지 않았다. 번개에 맞을 확률도 낮지만, 이 남자가 사는 환경 특성상 번개를 맞고 살아날 확률도 낮았다. 겪기도 힘든 일을 7번을 겪고, 살아나기도 힘든 상황에서 7번이나 살아난 것이다.

설리번의 출생지이기도 한 버지니아 주는 은근히 뇌우가 잦은 지역이라고 한다. 실제로 버지니아에선 매년 35~45번의 뇌우가 발생해왔으며 또한 1959년부터 2000년까지 버지니아에서 번개로 인해 58명이 죽고 238명이 다쳤다.

3. 여담

  • 자살한 이유에 대해서 사이트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기네스북에는 실연 때문에 자살했다고 기록 되어 있으나, 슈피겔의 기사에 따르면 30년전 결혼한 부인과의 결혼생활에 지쳐서 자살했다고 나와 있다. 링크
  • 그가 번개를 맞을 당시 쓰고 있던 모자(맨위 사진에서 들고 있는 모자)는 현재 지역 박물관에서 보관, 전시중이다.
  • 그의 부인도 한 차례 번개에 맞았다. 자택 뒤뜰에서 빨래를 널던 중 벼락을 맞았고 로이 설리번이 도와줘서 살아날수 있었다고.


[1] 존 덴버Take Me Home, Country Roads에 나오는 그 '셰넌도어 리버'다.[2] 곰은 그 둥글둥글하고 푸근한 생김새에 비해 대형 고양잇과를 제외하면 제일로 위험한 맹수다. 근데 이 아저씨는 번개 맞아서 몸도 안 멀쩡한데(화상) 곰까지 때리고도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