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3 13:07:22

로버트 보일

<colbgcolor=#000><colcolor=#fff> FRS
The Honourable
로버트 보일
Robert Boyle
파일:The_Shannon_Portrait_of_the_Hon_Robert_Boyle.jpg
출생 1627년 1월 25일
아일랜드 왕국 리스모어 리스모어성
사망 1691년 12월 30일 (향년 64세)
잉글랜드 왕국 런던
국적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잉글랜드 왕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잉글랜드 왕국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잉글랜드 왕국
]]
직업 자연철학자, 화학자, 물리학자
학력 이튼 칼리지
주 업적 보일의 법칙
리트머스 시험지

1. 개요2. 업적

[clearfix]

1. 개요

아일랜드 워터포드에서 태어난 잉글랜드의 자연철학자, 화학자, 물리학자. 초대 코크 大백작 리처드 보일의 6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형들도 귀족 작위를 받은 사람이 여럿 나온 명문가 출신이다.

보일의 법칙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일의 연구와 철학은 연금술적 전통에서 출발하였으나 근대 화학의 기초를 세웠다고 평가된다. 유럽을 여행하다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저서를 읽고 근대 과학에 눈을 떴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 《회의적인 화학자.(The Sceptical Chymist)》는 화학의 기반을 마련한 책이다.

유체역학, 열역학의 시초가 되었기 때문에 물리학자이기도 한다.[1]

왕립학회의 창립자중 한명이다.

2. 업적

중고등학생들에겐 보일의 법칙만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연금술에서 화학을 따로 분리하여 화학에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중세 연금술사들도 실험 과정에서 다양한 기체를 관찰할 수 있었으나, 그들은 이것이 원소 중 하나인 공기라고 생각하고 탐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공기와 기체를 구분한 최초의 사람은 벨기에의 귀족이었던 장 밥티스타 반 헬몬트(Jan Baptista van Helmont)였다. 그는 그리스어 카오스(chaos)에서 이름을 따서 기체를 가스(gas)라고 불렀다. 이러한 기체에 대한 정량적인 실험을 한 것이 보일이며, 그는 진공의 존재를 받아들임으로써 고대 그리스 시대의 원자설을 바탕으로 한 입자 가설을 통해 물질의 성질을 설명하려고 했다.

또한 보일은 그리스 원자론의 지식을 바탕으로 르네 데카르트의 입자론과 가상디의 원자론을 절충하여 입자철학을 형성했다. 1661년에는 전통적인 화학사상인 4원소설과 의화학파의 3원소설, 반 헬몬트의 원소설을 반박하였으며 어떤 물질이 몇 개의 물질로 다시 분해된다면 이것은 참된 원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훗날 존 돌턴원자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보일은 공기 펌프를 이용하여 진공을 만들고 공기의 물리적 성질을 연구하였으며 이 연구로부터 공기의 압력과 부피와의 관계를 제시한 보일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또한, 유리로 만든 종 속에 열을 가한 철판을 넣고 공기를 뽑아낸 뒤에 가열된 철판 위에 가연성 물질을 올려놓으면 타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연소에는 공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이 실험을 통해 밀폐된 곳에서 공기 중의 산소가 다 사라져 연소현상이 일어날 수 없게 되어도 소리는 계속 전달된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이것으로 공기가 혼합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렸다.

유니콘 뿔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식물의 즙이 pH에 따라 색이 변하는 지시약임을 발견하고 리트머스 시험지를 발명하기도 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Boyle%27sSelfFlowingFlask.png

영구기관을 만든 적도 있다. 물을 부으면 자동으로 흐르게 되는 장치지만 당연히 써먹으려 만든 것은 아니고 사이펀 현상의 모순을 증명하기 위한 모델에 불과하다.


[1] 그때는 철학자가 수학도 하고, 수학자가 물리학도 하고, 물리학자가 화학도 하던 시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