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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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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머서
Ray Mercer
<colbgcolor=#000000><colcolor=#aa9872,#8c7a55> 본명 레이먼드 앤서니 머서
Raymond Anthony Mercer
출생 1961년 4월 4일 ([age(1961-04-04)]세)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
국적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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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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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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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권투
전적
44전 36승 7패 1무 (26KO)
입식 전적 2전 2패
종합격투기
전적
1전 1승 무패
1KO
없음
체격 185cm / 116kg / 196cm
링네임 Merciless
주요 타이틀 1988 서울 올림픽 (권투) -91kg 금메달
WBO 2대 헤비급 챔피언 (박탈)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전적3. 커리어4. 파이팅 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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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권투, 입식 종합격투기 선수.

2. 전적

※ 권투
※ 입식격투기
  • 주요 승:
※ 종합격투기
  • 주요 패: 없음

3. 커리어

주독미군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머서는 조지아주 포트베닝으로 이주했다가 이후 서독 하나우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를 했었고[1] 졸업후 아버지를 따라 조지아주 어거스타에 있는 리치먼드 카운티 밀리터리 아카데미에 입소해 미 육군에 입대했다.

훈련소 수료 후 미 유럽-아프리카 사령부 예하 5군단 소총수로 배치되었고 39보병연대 1대대 D중대 소속으로 하사까지 복무했다.

군에 있던시절 복싱을 시작했고 1983년 군 내에서 경기를 치렀다. 아마추어 경기와 길거리스파링[2]을 병행하다가 군 내에서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 후 전미아마추어 복싱협회에 소속되어 제대로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고 국제대회에서 맹활약하며 1988 서울 올림픽 복싱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픽 출전 1년 후 프로로 전향했다.

1990년 3월 2일, 12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으로 키무엘 오덤을 물리치고 공석이었던 IBF 인터콘티넨탈 헤비급 타이틀을 차지했다.

1990년 8월 5일, 버트 쿠퍼를 12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으로 물리치고 NABF 헤비급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1991년 1월 11일, 프란체스코 다미아니와의 경기에서 점수가 뒤쳐진 가운데 9라운드 KO로 역전승을 거두고 WBO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1991년 10월 18일, 토미 모리슨을 5라운드 KO시키고 WBO 헤비급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그러나 의무 도전자인 마이클 무어러 대신 래리 홈즈와 경기를 치른 탓에 WBO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1992년 2월 7일, 12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으로 래리 홈즈에게 패했다. 당시 42세였던 홈즈는 4대1의 언더독이었으나 이 경기에서 업셋을 터뜨렸다.

1993년 2월 6일, 제시 퍼거슨에게 10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으로 패했다. 머서가 이 경기에서 퍼거슨을 이겼다면 리딕 보우와 타이틀전을 치렀을 것이다.

1993년 6월 29일, 머서는 퍼거슨에게 고의로 지도록 10만 달러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기소장에 따르면, 뇌물 제안은 시합 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머서가 퍼거슨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시합 중에 이루어졌다. 머서는 무죄를 주장했고 1994년 3월 29일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93년 11월 19일, 퍼거슨과의 재경기에서 10라운드 2대0 판정승을 거두었다.

1995년 5월 20일, 10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으로 에반더 홀리필드에게 패배했다.

1996년 5월 10일, 10라운드 0대2 판정으로 레녹스 루이스에게 패배했다. AP통신은 이 경기를 97-93으로 머서의 승리로 채점했다.

1996년 12월 14일, 팀 위더스푼을 10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으로 물리쳤다.

목부상으로 3년간 쉬었고 2001년 복귀했다.

2002년 1월 19일에 마이크 타이슨과 맞붙을 예정이었으나, 타이슨은 2002년 4월 6일에 레녹스 루이스와 맞붙기 위해 시합을 취소했다(루이스 vs 타이슨전은 라이선스 문제로 2002년 6월 8일로 연기되었다).

2002년 6월 29일, WBO 헤비급 챔피언 블라디미르 클리츠코에게 6라운드 TKO로 패했다. 이 경기에서 첫 KO패를 허용하며 강철턱의 이미지가 무너졌고 이후 종합격투기와 입식격투기로 외도를 시도했다.

입식에선 레미 본야스키의 킥을 허용하며 전의를 상실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TKO패했고 무사시에게도 넉다운을 여러번 허용하고 만장일치 판정패했다.

종합격투기에선 킴보 슬라이스에게 길로틴 초크로 서브미션 패했지만 시범경기라 전적에 들어가지 않았다. 2009년 공식전에선 전 UFC 헤비급 챔피언인 팀 실비아와 맞붙어 1라운드 KO승을 거두며 이변을 거뒀다. 이 경기가 현역 마지막 경기였다.[3]

4. 파이팅 스타일

긴 리치에서 나오는 잽 위주로 풀어나가는 아웃파이터다. 잽으로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정도다. 풋워크와 헤드무브먼트가 좋다. 클린치에서의 움직임과 더티복싱도 수준급이다. 맷집도 단단하다.

단점은 헤드무브먼트는 좋지만 가드를 활용한 디펜스가 약한 편이고 은근 큰 카운터 허용도 잦았다.

5. 여담

슬하에 딸 2명이 있다.


[1] 포지션은 라인배커[2] 스파링파트너가 없어서 약식스파링을 했다.[3] 복싱은 2008년에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