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8 03:35:35

무사시(1972)

Musashi

武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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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전적 85전 49승 30패 5무 1무효
19KO, 30판정
10KO, 20판정
출생 1972년 10월 17일 ([age(1972-10-17)]세)
오사카부 사카이시 미나미구
신장 / 체중 185cm / 103kg
본명 모리 아키오(森昭生)
링네임 무사시
주요 타이틀 K-1 2003 월드 그랑프리 준우승
K-1 2004 월드 그랑프리 준우승
기타 K-1 2003 일본 그랑프리 우승
K-1 2002 일본 그랑프리 우승
K-1 2000 일본 그랑프리 우승
K-1 1999 일본 그랑프리 우승
K-1 1995 월드 그랑프리 4위

1. 개요2. 경력3. 파이팅 스타일4. 기타

1. 개요

K-1에서 주로 활동했던 정도회관 가라테 베이스의 입식격투기 선수.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배우 및 탤런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링네임인 무사시를 그대로 예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본명은 모리 아키오. 딱히 비공개는 아니지만 모리 아키오 명의로 활동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 모리 아키오라고 하면 대부분 누군지 모른다.

2015년에 출연한 실패선생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파이팅 스타일은 상대가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K-1 레전드 무사시 첫고백 “안 도망치면 위험”[1]

2. 경력

무사시는 K-1 데뷔전에서 패트릭 스미스[2]를 KO로 꺽은 뒤 일본의 에이스라 할수 있는 사타케 마사아키[3]의 뒤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은 차세대 주자로서 꽤 기대주였다.

이후 무사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파이터로 확고히 남았고, 03, 04년도 K-1 WGP 결승에 2년 연속으로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으나, 당시 강자인 레미 본야스키에게 밀려 2연속 준우승에 머무르고 만다. 더불어 무사시 판정으로 불리던 K-1의 편파 판정혜택을 적지 않게 받았던 시기라 일본에서조차 많은 안티팬이 생겨났다. 어느 정도였냐면 2004년 WGP 개막전에서 일본 관중들이 상대인 시릴 아비디를 응원했을 정도.그 당시 무사시 편파 판정을 풍자한 북두의권 패러디 영상까지 나왔는데 # 넷상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06년경부터 룰개정으로 인해 클린치에 대한 제한이 가해졌고 무사시 본인도 나이가 들면서 슬슬 성적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밥 샙에게 뒷통수를 얻어맞고 대자로 뻗거나[4] 글라우베 페이토자의 플라잉 니 킥에 제대로 처맞고 역시 대자로 뻗는 등[5] 2006년쯤을 전후로 온갖 굴욕을 다 당했다.

다만 이 시기를 전후해서 다시 예전처럼 KO를 노리는 스타일로 들어서면서 안티도 어느 정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2007년 K-1 월드 그랑프리에서는 8강에서 박용수를 만나 초강력 로블로 세 방을 얻어맞았지만 근성으로 버텨내고 펀치 KO로 승리했다. 무사시는 경기 종료 후 쓰러져 기절한 박용수를 향해 욕설을 하며 극도로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소 침착하고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무사시 였기에 이 사람 정말 화가 단단히 났구나 싶을 정도. 로블로 세 방 뿐만 아니라 박용수는 2회전 시작할 때 무사시의 글러브 터치를 하는 과정에서 곧바로 로우킥을 날리는 등 비매너를 보여줬기에 한국팬들 마저 박용수 실드를 치지 못하고 무사시에 대한 동정 여론이 생길 정도.[6] 로블로를 제외하고는 경기 내용은 시시할정도로 간단히 끝났는데 무사시의 펀치에 의해 박용수가 맥없이 쓰러져 버렸다. 평소 판정머신이라고 비웃음 당하던 무사시였으나 나름 화끈하게 경기를 끝낸셈. 그러나 준결승에 진출하여 왕캉에게 또 다시 로블로를 얻어맞고 만다. 이번엔 니킥으로 얻어 맞았다(경기 자체는 경기 재개를 거부한 왕캉의 링 이탈로 DQ승). 결국 어찌어찌해서 결승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로블로 세 방이 누적된 탓에 결승 진출을 포기. 병원에서 진단해보니 고환내출혈이 있었다고 한다. 하마터면 고자가 될 뻔했다. 이때 얻은 별명이 무자지.

2008년 4월에는 무사시의 뒤를 이을 차세대 일본 에이스로 꼽히고 있던 사와야시키 준이치에게 3번의 다운을 뺏으면서 2라운드 KO승을 거둔 동시에 5연승을 찍으면서 부활의 기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다음 경기에서 쿄타로에게 매우 지루한 경기 끝에 판정패를 당하면서 잘 쇄신한 이미지를 다시 까먹었다. 그 후 신예 파이터들과 붙으면서 연패를 당하며 다시 하락세를 겪었다.

2008년 12월 31일 다이너마이트에서 링네임이 똑같은 게가드 무사시와 K-1룰로 붙어서 무자비한 펀치 러시에 KO패 당했으며 이후로는 부상 핑계로 출전을 거절하는 등의 행보를 계속한 끝에 거의 잠수를 탔다. 2000년대 중반즘 부터는 펀치 드렁크에 시달리는건 아닌가 싶은 모습도 꽤나 보여주었다.

이후 뜬금없이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K-1 소속으로 남아 있었지만 경기는 가지지 않고 그냥 정도회관 관장일을 하면서 온천, 디너쇼, 콘서트, TV쇼, 야구 시구식 등을 두루 거치며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7]

끝내 2009년 9월 26일 K-1 월드 그랑프리 16강전 제롬 르 밴너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8] 마지막 경기에서는 기존의 치고 빠지면서 클린치질해대는 무사시류가 아닌 공격적인 스타일로 경기에 임했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3:0 판정패당했다. 참고로 당시 은퇴전이 한국 서울에서 벌어졌는대, 일본인인데다 재미없는 시합으로 유명한 무사시임에도 경기 후 관객들이 상당한 환호를 보여주었다. 경기가 끝난 뒤 밴너와 마주 절하는 모습이 나름대로 감동.[9][10]

3. 파이팅 스타일

무사시는 클린치나 킥 등 기술적인 부분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파워다. 단, 이전에 비하면 정신적인 면은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피터 아츠가 2003년 K-1 WGP에서 무사시에게 패배한 후

무사시는 풀컨택트 가라테 스타일의 정공법식 인파이터로 전성기 기준 아시아권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지역 GP처럼 같은 아시아권 선수들과 싸우는 경우에는 KO로 이기거나, 거의 갖고 노는 일종의 양민학살 수준의 기량 차이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데뷔 후 2~3년 동안은 굉장히 공격적인 헤드헌터 스타일이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의 모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스피디하면서 화끈한 시합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문제는 체급 자체가 낮았기 때문에 기술과 체력 그리고 정신력은 있지만 신장과 파워에서 중량급의 서양 선수들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 그로 인해 K-1 WGP에서 외국인 선수들만 만나면 하늘과 땅 차이 수준의 힘 차이를 보여주었고, 특히 2000년 WGP에서의 제롬 르 밴너와의 시합에서 거의 인간 샌드백 수준으로 박살이 났으며, 이후 체중을 증량하면서 스타일을 확 바꾸게 된다. 스타일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체급차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1995년 패트릭 스미스와 맞붙을때 감량을 하지 않았던 무사시의 체중이 83kg였다.[11] 즉, K-1에 뛰기전 90년대 초중반 무사시의 적정 체급은 엄밀히 말해 80kg가 아니라 70kg대의 체급이었다. 문제는 무사시가 K-1입문했던 90년대 중후반에는 무사시가 뛸만했던 K-2는 인기저조로 단숨에 폐지됐고, K-2에서 뛰던 후스트마저 K-1에서 뛰기 위해 증량을 했던 시기라는 것. 물론 무사시도 후스트 정도의 골격과 맷집은 되지만 당시의 K-1은 경량급 대회가 별도로 없이, 80kg 이상에 상한이 없는 무제한 체급 대회였다. 애초에 평소 체중이 80kg가 조금 넘는 무사시와 110kg이 넘는 제롬 르 밴너는 체급부터 달랐지만 정도회관의 권유를 거부할 수 없었던 무사시는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억지증량을 해서 103kg로 벌크업하고 K-1 WGP에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본래 체구가 가녀린데다 체지방을 불려서 억지로 증량한 것이기에, 본래부터 중량급이던 선수들과 힘대결을 할 수는 없었고 실제로 호되게 이후 그는 모험을 하지 않고 그나마 있는 맷집으로 들어가 클린치를 한 다음 판정승으로 안전하게 이기는 스타일로 안착한다. 게다가 이게 실제로 잘 통했다. [12] 분명 하드웨어가 압도적으로 큰 탑급 서양인 선수들조차 무사시를 쉽게 제압하지 못하고 판정까지 끌려가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고 보는 사람들은 답답할 지언정 플레이하는 선수들 사이에서는 기량면에서 무사시를 높게 쳐주는 모습을 쉽게 볼수 있었다.

4. 기타

  • 은퇴 후 동생 토모와 힘을 합쳐 Pound for Pound라는 회사를 차렸다. 홈페이지는 여기. 밝히고 있는 사업 내용은 상당히 광범위한데 평범한 연예 기획부터 격투기 선수 홍보, 체육관 및 도장 운영, 의류·스포츠 용품·자전거·낚시용구 개발 및 판매, 이벤트 기획, 도서·비디오·DVD·CD 제작 등.
  • 무장전선 재킷을 입고 다니거나 크로우즈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걸 보면 아마도 크로우즈의 팬인 듯.
  • 가면라이더 카부토의 극장판 God Speed Love에서 코카서스의 장착자인 쿠로사키 잇세이역으로 출연했다.
  • 한창때는 인터넷 네티즌들 사이에서 LG 트윈스의 레전드 야구 선수였던 이병규와 닮았다는 소리가 많이 나온 바도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병규는 입술이 작고 가는 편인데 비해 무사시는 입술이 꽤 크다는게 차이점.
  • 사무라이 집안이다. 긴키 지방 니가와 가문의 직계 후손.


[1] 기사에 "안 도망치면 위험"이라고 번역된 문장의 원문은 이카리 신지의 "도망치면 안 돼(逃げちゃダメだ)"를 패러디한 "도망안치면 안돼(逃げなきゃダメだ)"였으며, 방송에서도 중얼중얼 거리는 등 대놓고 패러디했다.[2] 앤디 훅을 19초 만에 박살낸 선수이다.[3] 정도회관 출신으로 K-1 출범 초기 일본을 대표하던 인물. 애초에 K-1 자체가 사타케 마사아키가 세계에 먹힌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그랑프리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단 한번도 월드 그랑프리에서 우승하지 못했고, 다른 가라테 선수였던 앤디 훅과 무사시 등이 선전하게 된다. 일본 선수 중에서는 사타케만큼 좋은 피지컬에 필살기에 가까운 차별화된 묵직한 로우 킥을 차는 선수가 없었기에 중간에 U계 레슬링으로 외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한번쯤 우승을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선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아주던 킥의 파워에 비해서 핸드 스피드가 너무 느린데다 큰 체구에 비해 펀치력이 시원찮아서 K-1 무대에서 고전했던 이유가 되었다. 그래도 K-1 월드 그랑프리 결승까진 간 적이 있긴 하다.[4] 경기 자체는 승리했지만 판정 논란이 좀 있었다. 다만 K-1에서도 후두부 가격은 파울이었고, 밥 샙이 대놓고 후두부를 두방 갈겼기 때문에...[5] 참고로 스타일 개선 후 처음으로 나온 KO패였고, 이전 경기인 루슬란 카라에프와의 경기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승리해서 무사시에 대한 안티들의 분노가 하늘 끝까지 치솟았던 상황에서 나온 KO 장면이라 안티들의 열광이 배가 되었고 이 경기를 통해 수많은 짤들이 탄생했다.[6] 팬들의 반응은 난생처음 한일전에서 일본을 응원하게 되었다, 이건 남자로서 무사시에게 미안하다 등 박용수의 비매너에 대한 극딜과 무사시에 대한 동정 여론이 대부분이게 되었다. 박용수의 송곳같이 파고드는 위협무시무시한 로블로킥은 거세킥으로 불리우게 된다.[7] 일본 내부에서의 인기는 아이돌 수준이었다.[8] WGP 개막전을 앞두고 앞으로 한경기라도 지면 은퇴하겠다!!고 공언했는데 하필이면 그 다음 경기가 밴너였다.[9]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이 무렵에 세미 슐트가 K-1 무대를 일방적으로 접수해 버리면서 하드웨어의 영향력이 매우 심하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무사시에 대한 여론도 비겁하게 판정빨로 경기한다.판정이야 심판 잘못이고, 무사시가 그렇게 경기한 것은 하드웨어의 영향이 강한 K-1 무차별급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로 바뀌고 있었다. 하드웨어가 좋은 최홍만, 랜디 김이 일시적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어 동양의 자존심은 지켰지만, K-1 WGP에서 판정빨을 제외하고 봐도 무사시만큼 체지방빨 맷집으로 버틸 수 있는 일본인은 적어도 없었다.[10] K-1 뿐만 아니라 어느 격투기 단체에서도 중량급은 일본의 활약이 거의 없었다. 마크 커와 켄 샴락을 꺾은 후지타 카즈유키 정도만이 헤비급에서 경쟁력이 있었고, 체급은 미들급 수준이었지만 프라이드에서 활약하며 비토 벨포트 등을 꺾은 사쿠라바 카즈시 정도.[11] UFC에서 -77kg급을 뛰던 Gsp의 평소체중이 이 정도였는데, GSP는 감량 폭이 적은 편이다. 평체가 83이면 70kg 초반대까지도 충분히 감량할 수 있다.[12] 실제로 90년대에 무사시가 깨강정이 되는 장면들을 보면, 실력이 있어도 도저히 힘 차이가 극복이 안 될 수준이었다. 무사시가 강한건 맞아도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갑자기 100kg로 증량해서 마이크 타이슨이랑 붙는다고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