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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관현급시[1]
신지시 · 딩저우시
辛集市 · 定州市
[1] 성직관현급시는 지급행정구 수준의 자주권을 갖지만, 명목상 기존의 지급시 소속이다. 신지시스자좡시 소속, 딩저우시바오딩시 소속.
[2] 룽청현, 안신현, 슝현 및 주변 지역은 실질적으로 국가급 신구인 슝안신구의 관리를 받고 있다.
[3] 런추시 내부의 화베이유전지구는 허베이성의 지급행정구 대우를 받으며, 허베이성 인민정부와 중국 석유 천연가스 공사 양자의 관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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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 지역 최대의 습지인 베이양뎬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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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천하제일대묘라 불렸던, 편작을 모시는 마오저우묘

1. 개요2. 역사
2.1. 중세2.2. 근현대
3. 문화
3.1. 향토 음악3.2. 마오저우묘 (鄚州庙)

1. 개요

任丘
영어 Renqiu

허베이성 창저우시의 현급시. 바오딩시에서 동쪽으로 80km, 창저우에서 북서쪽으로 100km 떨어진 하이허의 지류인 샤오바이허 (小白河)[1] 남안의 평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80만명으로, 최근 북쪽에 형성된 슝안신구 및 서쪽의 화베이유전지구와 연계되어 발전하고 있다. 2022년 중국 당국의 통계에 의하면 런추현은 허베이-허난성 222개의 현급행정구 중 3위의 경제력을 보였다.

북서쪽 10km 지점에는 화베이 지역의 마지막 남은 자연 습지인 베이양뎬이 있어 수자원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된다. 그외에도 시가지 곳곳에 운하가 지나 토지가 비옥하고, 농사가 잘되어 곡물 생산량이 크다. 시가지 동북쪽에는 유전지대를 활용한 석유화학 공단 및 정유공장 지대가 있다. 베이징 ~ 헝수이시를 이어주는 징주철도가 런추역을 지난다. 런추시역에는 현재 건설 중인 징슝샹 고속철도와 징강 고속철도가 지날 예정이다.

역사적으로 북쪽 15km 지점의 마오저우진 (鄚州镇)이 중심지였고, 시가지 자체는 6세기에야 현이 설치되었다. 다만 전한 시기에 각각 서쪽, 동북쪽에 제후국인 고곽국과 아릉국이 설치된 연혁이 있고 북송 대에 막주 (莫州)의 치소가 되었다. 주요 출신 인물로 전설적인 명의 편작, 삼국지의 명장 장합 등이 있다. 마오저우진의 막주묘 (鄚州庙)에서는 1년에 3차례[2] 축제가 열린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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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막읍성 유적

양사오, 룽산 문화 유적이 발견될 정도로 신석기 시절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연나라의 속국인 막 (鄚)나라가 있었고, 현존하는 판축 토성이 축조되었다.[3] 전국시대에는 조나라와의 접경지로써 막읍 (鄚邑) 혹은 괵읍 (虢邑)이라 불렸다. 진나라 시기 북쪽 15km 지점의 현 마오저우진에 막현 (鄚縣)이 설치되어 하간군 (河間郡)에 속했다. 전한 시기 막현은 탁군 (涿郡)으로 이전되었다.

한편 현 시가지 북동쪽 10km 지점의 난링청천에는 아릉현 (阿陵縣)이 설치되어 탁군에 속했다. 전한 건국 직후인 기원전 201년, 개국공신 곽정 (郭亭)이 아릉후 (阿陵侯)로 봉해졌다. 또한 현 시가지 서쪽 5km 지점의 현 칭타향 일대에는 한경제의 손자이자 하간왕 유덕의 막내 아들 유애가 봉해진 하간국 산하의 고곽국 (高郭國)의 도성이 세워졌다.[4]

연로했던 유애의 사후 부자상속으로 유구장, 유비, 유칭, 유패로 이어지던 고곽후 (高郭侯)는 유패가 후사 없이 요절하자 잠시 단절되었다가 그의 동생 유이중이 계승하였다. (기원전 12년) 이후 아들 유발이 계승했다가, 서기 9년 신나라 건국과 함께 고곽국은 폐지되었다.

신나라 시기 탁군이 원환군(垣翰郡)으로 바뀌며 막현이 언부현(言符縣), 고곽국이 광제현(廣堤縣), 아릉현이 아륙현(阿陸縣)으로 개칭되었다가 후한 건국 후 기존 지명으로 환원되었다.

한편 서기 2년, 전한의 순검해사 중랑장 임구 (任丘)가 해적을 막기 위해 현 시가지 일대에 성을 쌓고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한다. 또다른 설에 의하면 임씨 성의 장군이 매장된 봉분이 높은 언덕같이 보여 임구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정황상 후한의 개국공신으로, 아릉후에 봉해진 임광 (任光)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임구 지명이 처음[5] 언급된 것은 5세기 들어서이다.

후한 들어 고곽국 및 아릉현은 폐지되었고, 일대에 유일히 남은 막현은 탁군에서 하간군 (河間郡) 혹은 하간국 (河間國)으로 이전되었다. 220년, 조위 건국과 함께 막현 출신의 장군 장합이 고향 땅에 막후 (鄚侯)로 봉해졌다.

2.1. 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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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에 전돌로 보강된 막주성 남문

북위 시기인 487년, 하간군은 영주 (瀛州)로 개편되었다. 북제 시기인 550년대에 현 시가지에 임구현 (任丘縣)이 설치되었다. 그 무렵 막현은 역경이 있던 현 슝현 일대인 역성현 (易城縣)을 병합하였다. 711년에는 막현을 중심으로 막주 (鄚州)가 신설되어 그에 속했고, 725년 막주는 현재와 같은 막주 (莫州)로 개칭되었다.

936년, 후진의 석경당이 연운 16주요나라에 넘겼을 당시 막주는 영주(허젠시)와 함께 그 최남단을 구성하여 중원에 대한 거란의 교두보가 되었다.[6] 중원으로 툭 튀어나온 두 주는 연운 16주 중에서도 최우선적으로 수복해야할 목표가 되었고 959년 후주세종이 두 주를 수복하여 이후 북송 시기에는 대요전선의 최전방 거점이 되었다.

북송 시기에 막주의 치소가 임구현으로 이전되었다. 1073년 막현이 임구현에 병합되었다가 1087년 복구되었다. 금나라 들어 막현은 막진 (莫鎭)으로 격하되었다가 1214년에 막정현 (莫亭縣)으로 승격되었다. 원나라 시기인 1265년, 막정현은 하간현에 병합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어 막주의 치소가 되었다. 1374년 막주가 폐지되고, 막정현은 막주역 (鄚州驛)으로 격하되었다.

2.2.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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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마오저우진 (막주성)에 입성하는 팔로군

이후 임구현만 남아 하간부 (河間府)[7]에 속했다가, 중화민국 들어 하간현과 함께 창저우에 소속되었다. 1944년 린추에는 팔로군이 진주했고, 이듬해 중화민국은 일대를 마오저우시 (鄚州市)로 개편하였다. 다만 1948년 6월, 마오저우시는 마오저우진으로 격하되어 린추현에 속하였다. 1986년 린추현은 창저우시 산하 현급시로 승격되었다. 2017년, 마오저우진 일대는 슝안신구에 병합되었다.

3.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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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저우 제사 기간의 축제

3.1. 향토 음악

  • 신안주민간음악회 (辛安庄民间音乐会)
9종의 전통 악기들을 활용해 15세기부터 전승된 민간 악단
  • 임구대고 (任丘大鼓)
12세기 항금전쟁 시기 량부인이 북을 울리던 것에서 착안해 16세기에 시작된 음악.

둘 모두 허베이성 무형문화재에 등록되었다.

3.2. 마오저우묘 (鄚州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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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작을 중심으로 화타와 장중경 등 중국의 10대 명의들을 모신 사당으로, 원대에 처음 세워져 17세기에 대확장되었다. 현지 전승에 따르면 명나라 시기의 환관 위충현이 자신의 고향 (쑤닝현)에서 가까운 막주에 거대한 궁전을 세우려 했는데, 완공 직전에 조정에서 감사가 들어오자 황급히 사당으로 전환시켰다 한다. 그 영향인지 담장은 황실의 예에 따라 붉은색이다. 현지인들은 매년 정월대보름과 중추절 등에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한때 천하제일대묘 (天下第一大庙)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1678년, 1717년, 1790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복구되었다. 1928년 임구현장이 경내에 학교를 세우고 신상을 파괴하는 등 훼철에 나섰다. 그리고 1938년 일본군의 방화로 대화재가 벌어지며 주요 건물이 파괴되었다. 이후 1963년 홍수 및 1966년 문화대혁명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산문 및 담장마저 훼손되었다. 그러다 1992년부터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1] 다칭허에 합류하여 하이허로 흘러든다[2] 음력 1월, 5월, 9월의 보름날[3] 높이 5m, 각 면이 1.2km인 정사각꼴의 판축토성이다. 춘추시대 ~ 청대까지 활용되었다. 동벽, 북벽 및 청대에 세워진 남문이 잔존한다.[4] 가로 및 세로 각각 500m 규모의 판축토성[5] 북위 수경주에 첫 기록[6] 특히 가장 남쪽의 하간의 경우 옛 기주의 치소인 남피와 가깝고 당시의 황하와 접할 정도였다[7] 1108년 영주에서 승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