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맥그레인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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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클럽 | ||||
아브로스 15대 |
셀틱 FC 역대 주장 | ||||
케니 달글리시 (1975~1977) | → | 대니 맥그레인 (1977~1987) | → | 로이 에이킨 (1987~1990) |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 ||||
돈 마슨 (1977) | → | 대니 맥그레인 (1980~1982) | → | 아사 하트포드 (1981) |
대니 맥그레인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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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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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대니 맥그레인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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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틱 FC | ||
Celtic FC Greatest Ever Team | ||
Celtic FC Official Legend | ||
<colbgcolor=#018749> 이름 | 대니 맥그레인 MBE[1] Danny McGrain MBE | |
본명 | 다니엘 퍼거스 맥그레인 Daniel Fergus McGrain | |
출생 | 1950년 5월 1일 | |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스코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8cm | |
직업 | 축구선수 (라이트백 / 은퇴) 축구감독 | |
소속 | <colbgcolor=#018749> 선수 | 셀틱 FC (1970~1987) 해밀턴 아카데미컬 FC (1987~1988) |
감독 | 클라이드뱅크 (1989~1992 / 코치) 아브로스 FC (1992~1994) 셀틱 FC U-20 (1994~2012 / 수석 코치) 셀틱 FC (1998 / 수석 코치) 셀틱 FC (2012 / 코치) 셀틱 FC B (2012~2014) | |
국가대표 | 62경기 (스코틀랜드 / 1973~19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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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의 전 축구선수, 감독이다.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그는 글래스고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퀸즈 파크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스코틀랜드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뛰기도 했다. 그리고 17세가 되던 1967년에 셀틱에 스카우트되어 셀틱 리저브팀에 들어가게 된다. 맥그레인이 유스팀에 입단했을 때 그곳에는 훗날 셀틱의 전설들이 되는 케니 달글리시, 루 마카리, 데이비드 헤이 등도 속해 있었다. 맥그레인은 이전부터 라이트백으로 뛰어왔는데, 셀틱 유스팀에 들어오고 나서 미드필더에서 플레이를 해보는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경기를 뛰어보기 시작했다.
그는 성인 무대에 데뷔하기 전까지 마리힐 주니어 클럽에 다녀오는 등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1970년 페예노르트 로테르담과의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 케니 달글리시와 함께 명단에 포함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다음 시즌인 1970년 8월 26일에 열린 던디 유나이티드와의 스코티시 리그컵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며, 성인 무대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3일 뒤에는 셀틱 파크에서 열린 그리녹 모턴과의 리그 경기에도 출전하며 리그 데뷔전도 치르게 되었다. 데뷔 첫 두 시즌 가량은 조크 스타인 감독 밑에서 많은 출장기회를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경기마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맥그레인은 1971-72 시즌에 리그 10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다. 그 이유는 이전에 폴커크와의 경기에서 더그 솜너와 머리를 부딪히면서 두개골 골절을 입었기 때문이다. 1972년 3월 25일, 그는 복귀전을 가지게 되었다. 부상에서 완전히 외복한 그는 1972-73 시즌부터 확고한 주전 라이트백이 되었다. 이 시즌에 리그에서만 30경기를 소화했고, 스코틀랜드 23세 이하 팀에서도 활약하게 되었다.
1970년대의 맥그레인은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평가 받았다. 그는 요즘 현대 축구에서 쓰이는 용어로 정의하면 공격형 풀백이었으며, 공수먕면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였다. 그는 폭발적인 스피드를 가지고 있었고, 좋은 기술과 좋은 온 더 볼 능력, 넓은 시야와 예측력 그리고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공만 깔끔하게 빼오는 태클에 능했다. 그는 1973-74 시즌에 리그와 스코티시컵을 들어올렸고, 1974년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맥그레인은 월드컵을 치른 직후 당뇨병 진단을 받았으나, 약물 치료를 받으며 경기를 계속 뛰었다.
1977년, 맥그레인은 리그와 스코티시 컵 우승을 거두며 두번째 더블을 기록했다. 또한 해당 시즌에 스코틀랜드 축구 기자 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주장이었던 케니 달글리시가 리버풀로 떠나면서 1977-78 시즌부터 그가 주장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한 발 쪽 부상으로 인해 거의 한 시즌을 통으로 날리게 되었다. 그 부상 때문에 1978년 월드컵도 출전하지 못했다. 맥그레인이 없는 상태로 시즌을 치른 셀틱은 단 한 개의 우승 트로피도 들지 못했고, 1960년대 초반 이후로 처음으로 유럽대항전 진출에도 실패하게 되었다. 1979년 봄, 이미 리그가 18경기나 치러졌을 때 알 수 없는 발 부상에서 맥그레인은 복귀했고, 감독도 빌리 맥닐도 바뀌어 있었다. 부상에서 돌아온 그는 이전과 다른 스타일의 플레이를 구사할 수 밖에 없었다. 속도는 눈에 띄게 감소했지만, 상대 플레이를 예측하는 능력과 볼 배급 능력이 향샹되어 이전보다 느려진 속도를 충분히 보완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레인저스를 상대로 4:2 승리를 거두며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맥그레인은 1981년에 다리 부상을 한 차례 당해 일정 기간 경기를 뛰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1980년대 초중반을 주축 선수로서 활약했고, 3번의 리그 우승, 2번의 스코티시 컵 우승, 1번의 스코티시 리그 컵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985년 10월, 세인트 미렌과의 경기에서 셀틱 소속으로 600번째 경기를 치렀다. 당시 감독이었던 데이비드 헤이는 그를 가리켜 "최고의 선수이며 진정한 프로다"라고 말했다. 당시 에어드리에서 맥그레인에게 선수 겸 감독직을 제안해 성사 단계 직전까지 갔지만, 맥그레인은 셀틱에 1년 더 남아 36세의 나이로 후반기에 2경기 결장한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경기를 소화했다. 1987년 5월 9일, 하츠와의 리그 원정 경기를 가졌는데, 이 경기가 그의 셀틱에서의 마지막 경기였다.
1987년 5월, 맥그레인은 자유 계약 선수로 풀렸고, 해밀턴과 계약을 맺게 되었다. 이곳에서도 주전으로 뛰며, 팀을 스코티시 프리미어 디비전으로 승격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맥그레인이 스코틀랜드 성인 국가대표에 데뷔한 때는 1973년 5월 12일이었고, 웨일스와의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경기에서 데뷔했다. 그는 1974년 월드컵 22인 명단에 포함되며 월드컵을 가게 되었다. 자이르, 브라질, 유고슬라비아와의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팀은 무패를 기록했지만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에도 스코틀랜드의 주전 라이트백으로 활약했지만, 발 부상으로 인해 1978년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었다. 1982년 월드컵에는 최종 22인 명단에 포함되었고, 주장으로 뽑혀 조크 스타인과 함께 스페인으로 가게 되었다. 첫 경기인 뉴질랜드와의 경기에 선발 출장하였지만 브라질과의 다음 경기에서 결장했고, 소련과의 경기에서 교체출장했다. 이 대회에서도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맥그레인은 스코틀랜드 국가대표로 62경기를 출전했고,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롤 오브 아너[2]에 뽑혔다.
3.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를 한 뒤 1989년에 클라이드뱅크의 코치로 선임되며 코칭커리어를 시작했다.
1992년 11월, 스코티시 세컨드 디비전의 아브로스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 시즌에 맥그레인은 아브로스를 스코티시 컵 8강까지 이끌었다. 1994년 1월까지 아브로스의 감독직 수행하면서 팬들에게 꽤 신임을 받았다. 팬들은 맥그레인이 이끄는 아브로스를 "대니 맥그레인의 수염 군단"[3]이라고 불렀다.
1997년 8월, 빔 얀선의 코칭 스태프로 합류하며 셀틱으로 복귀했다. 이후 셀틱 21세 이하 팀에서 코칭 스태프 역할을 수행했고, 2012년 닐 레넌이 1군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1군 코칭 스태프로 활동하기도 했다.
4. 수상
4.1. 선수
4.1.1. 대회 기록
- 셀틱 FC (1970~1987)
- 스코티시 디비전 원/프리미어 디비전: 1972-73, 1973-74, 1976-77, 1978-79, 1980-81, 1981-82, 1985-86
- 스코티시컵: 1973-74, 1974-75, 1976-77, 1979-80, 1984-85
- 스코티시 리그컵: 1974-75, 1982-83
- 해밀턴 아카데미컬 FC (1987~1988)
- 스코티시 퍼스트 디비전: 1987-88
4.2. 감독
4.2.1. 대회 기록
- 아브로스 FC (1992~1994)
- 포파셔 컵: 1993-94
4.3. 개인 수상
- SFWA 올해의 선수: 1976-77
-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공로자 명단: 1981
- 5등급 대영제국 훈장: 1983
-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