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요하(遼河)의 동쪽에 따로 한 천지(=해동천하)가 있으니, 우뚝 솟아 중국과 뚜렷이 나뉘어 있네.
- 《제왕운기 하권》
- 《제왕운기 하권》
요하(遼河)와 패수(浿水: 고조선 당시 요동의 경계)의 놀란 파도를 진정시키고, 진한(秦韓: 신라)의 옛 땅을 얻어 열아홉 해만에 천하(寰瀛)를 통일하셨으니, 태조신성대왕(太祖神聖大王: 왕건)께서 이루신 공적은 더없이 높고 덕망은 한없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해가 거란의 군사에게 격파되자 그 나라 세자인 대광현(大光顯) 등이 우리나라가 의(義)로써 흥기하였으므로 그 나머지 수만 호 땅을 거느리고···
- 《고려사 열전, 최승로》
- 《고려사 열전, 최승로》
해동고려국(海東高麗國) 검교태자대보 중대부 지문하성사 형부상서(檢校太子大保 中大夫 知門下省事 刑部尙書)로 치사(致仕)한 문공(文公) 묘지. "공의 이름이 공유(公裕)이나 뒤에 고수(顧壽)로 고쳤고, 자는 항적(亢迪)이며, 남평군(南平郡) 사람이다. 나이 15세에 남성시(南省試)에 응시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 정문(鄭文)의 아래에서 2등으로 합격하고···"
- 〈문공유 묘지명 中〉
- 〈문공유 묘지명 中〉
해동천자(海東天子)이신 지금의 황제는 부처가 돕고 하늘이 도와 교화를 펴러 오셨습니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은혜가 깊으시니, 고금을 보아도 희귀합니다. 외국이 친히 달려와 모조리 귀순(歸依)하여 사방의 변경이 편안하고 깨끗해져서 창과 깃발을 내던지게 되었으니, 성덕(聖德)은 요(堯: 중국인들이 가장 이상적인 태평성세로 칭송하는 요순시대의 임금) 임금이나 탕(湯) 임금이라도 비길 수 없습니다.
- 〈풍입송 中〉
- 〈풍입송 中〉
왕건의 고려국(高麗國: 일명 해동고려국(海東高麗國))은 요하를 기준으로 삼아 중화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해동세계의 유일한 천자국을 자처했다. 해동천자로서 요하의 동쪽을 지배했던 고려대왕은 자신의 아래에 수많은 번병(屛翰)·제후(諸侯)들을 거느렸으며, 이로써 고려조의 국위가 성하고 쇠하는 시기에 따라 실질적 혹은 관념적으로 천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상 이들의 존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 해동천자의 제후
무릇 우리 황(皇: 고려 문종)의 아들들은 모두 공의 생질이 되니 가세(家勢)의 대단함이 이미 이와 같으며, 관직의 화려함이 또한 저와 같다. 황태자(儲皇)와 후비, 친왕(親王) 등에 이르러서는 재물을 내어 하사한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고, 친히 방문하여 안부를 물으니 도로가 번잡하였다.|겨울 10월 임오 평양후(平壤侯: → 상안공) 왕수(王琇)를 책봉(冊封)하였는데, 채붕(綵棚)‧악부(樂部)‧공장(供張)이 매우 성대하였다. 왕(王: 고려 문종)이 곧 비빈과 태자, 제왕(諸王)을 거느리고 몰래 행차하여 의식을 관람하였다.
〈이정 묘지명 中〉|《고려사 문종 27년》
⊙ 친왕(親王): 공식적으로는 "제왕(諸王)"이다. 고려조에서는 제위를 이을 황태자를 제외한, 나머지 공·후 황자 및 황실의 부마(駙馬·백) 등을 이른바 제왕이라 총칭했던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로)〈이정 묘지명 中〉|《고려사 문종 27년》
☞ 부여왕/조선왕/진한왕/변한왕/락랑왕/대방왕/계림왕/금관왕/평양왕/상안왕/개성왕/낙랑왕/광릉왕/회안왕/한남왕/청화왕/한양왕/경원왕/국원왕/상당왕/영인왕/제안왕/대령왕/시령왕/강릉왕/평량왕/수춘왕/승화왕/통의왕/익양왕/공화왕/창원왕···
고려의 왕건(王建)이 신라와 백제를 격파하니, 왜(倭)ㆍ탐부(耽浮)ㆍ환어라(驩於羅)ㆍ철륵(鐵勒) 등 동이(東夷)의 여러 나라(諸國)가 모두 두려워하여 고려의 속국이 되었다.
《자치통감 / 남당서 고려전》
⊙ 번왕(藩王): 고려는 남방의 신라를 합병할 당시 그 국주(國主: 김부)를 고려의 번왕인 군왕(郡王)에 임명했고, 북방의 유목 민족인 여진에게는 동번(東藩), 서번(西藩), 북번(北藩)이란 칭호를 붙여 자국의 제후국으로 상정했다. 또한 귀주대첩 이후 해동천하 세계관이 더욱 견고해짐에 따라 발해 후신국과 발해 지역의 독립국, 일본국과 일본 서해도 및 대마도, 그리고 탐라국과 우산국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요동(遼東: 요하 동쪽)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을 통할하고 있었다.[1] 《자치통감 / 남당서 고려전》
☞ 신라국왕/흥료국왕/철리국왕/실직군왕/불내국주/흑수국주/동번국주/서번국주/북번국주/여진국주/일본국주/탐라국주/우산국주/유구국주···
짐(朕: 고려 고종)이 보건대 옛날부터 이성으로 제후가 된 자는 종실의 예로 봉해진 것이 아니니, 반드시 운명이 세상에 드러나야 했다. 공로와 덕망이 풍성하고 많아야 책봉했으니 세상에 이성제후(異姓諸侯)가 희귀한 것이다.
《동국이상국전집, 진양군후 책봉문》
⊙ 번후(藩侯): 해동천자의 공신으로서 개국공(開國公), 개국후(開國侯) 등에 봉작된 이성제후(異姓諸侯)이다. 주나라의 예법에 의거한다면 이들은 천자를 수호했던 제후국의 통치자라는 위상을 갖는다. 즉, 개국(開國)이란 제후로서 자신의 나라를 열었음을 의미한다.[2] 《동국이상국전집, 진양군후 책봉문》
☞ 개국공/개국공/개국공/정안공/진강공/조선국공/경원군공/낙랑군공/진양군공/진평군공/상락군공/개국후/낙랑군후/한남군후/대령군후/강릉군후/안산군후/동래군후/천수군후/청하현후/개성현백/장연현백/영평현백/청하현자/천승현남/천수현남/농서현남···
[1] 다만 전술한 바와 같이 전 지역을 전 기간에 걸쳐 실질 지배한 것은 아니다. 여진의 경우 스스로 국위가 떨치게 되자 고려로부터 끝내 독립하여 금 제국을 건립했고, 일본(倭: 왜국) 또한 왕건이 삼한 통일을 이뤘을 당시 철륵·환어라 등과 함께 고려의 속국이 되었다는 중국 측의 기록이 있으나 관념적 지배에 불과했다.[2] 단 군현제가 확립된 이래로는 실제 영토를 분할 받는 게 아니라 제후라는 명예와 함께 식읍의 수조권을 하사받을 뿐이었으며, 이는 중국의 여러 왕조들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