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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비야/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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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비드 비야의 국가대표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2. 데뷔

2005년 2월 9일 독일 월드컵 예선 산마리노전에서 A매치 데뷔전, 11월 16일 슬로바키아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다.

2.1.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페르난도 토레스와 함께 3골을 넣어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독일 월드컵 이후 라울 곤살레스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의 플랜에서 제외되면서 비야는 스페인의 주전 공격수로 자리매김하여 꾸준한 득점을 올렸고, 유로 2008에서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골을 기록하며 팀의 공격을 책임졌는데,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대회 유일의 해트트릭을 달성했고 스웨덴와의 2차전에서도 1골을 추가하며 득점 단독 선두로 올라선다. 비록 러시아와의 4강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대회를 마감해야 했지만, 결승에서 스페인이 독일을 꺾고 우승하면서 비야는 앙리들로네를 들어 올리게 된다. 그리고 4골로 유로 2008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이 대회 이후로 비야는 명실상부 유럽 최정상급의 스트라이커로 발돋움했다.

2.2.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남아프리카공화국

2009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3골을 넣어 브론즈슈를 수상하였다.

2.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스페인을 지옥에서 구해내며 우승에 기여했다. 스위스와의 첫 경기에서는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하면서 팀의 패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나, 온두라스와의 2차전에서는 두 골 다 본인이 만들며 그 명성을 재확인시켰다.[1][2] 칠레와의 경기에서도 한 골을 추가했고 곤살로 이과인과 함께 득점 공동 선두를 달리며 유력한 득점왕 후보로 올랐다. 포르투갈과의 16강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3] 역시 16강에서 한 골씩을 추가한 이과인과 비텍[4]과 함께 공동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8강 파라과이전에서 또 결승골을 넣으며 탈락한 이과인과 추격하는 미로슬라프 클로제 등을 따돌리고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웨슬리 스네이더도 5골로 올라서고 4강에서 득점을 하지 못함에 따라 결승전에서 골 넣는 쪽이 아디다스 골든볼, 골든부트, 우승이라는 3관왕을 가져가는지라 혈투가 예상되었다. 결승전에서 비야의 스페인이 승리하여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스네이더와 비야 둘 다 한 골도 못 넣으면서 골든부트는 토마스 뮐러, 골든볼은 디에고 포를란이 차지했다. 결국 브론즈볼과 실버부트 수상에 만족해야 했지만 비야는 이번 대회에서 5골 1도움으로 팀이 기록한 8골 중 6골에 관여했으며 조별리그 2차전-3차전-16강-8강까지 무려 4경기 연속 결승골을 터트리는 등 그야말로 스페인의 월드컵 우승의 일등공신이었다. 만약 비야의 하드캐리가 아니었다면 스페인은 무적함대는 커녕 90분 내내 볼만 돌리다 골은 못넣는 애무축구라는 비웃음과 함께 조별리그 탈락이나 당했을 수도 있었다.[5]

월드컵 통산 8호골

유로 2012에서는 스페인 국가대표 명단에서 탈락하면서 스페인의 2대회 연속 유로 우승을 함께하지 못했는데, 2011년 12월 클럽 월드컵에서 심각한 다리 골절 부상을 당하면서 대회 직전까지 100%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한 게 이유였다.

2.4.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라질

유로 이후 국가대표팀에 복귀하였고, 2013 컨페더레이션스컵 명단에 들어갔는데 타히티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골을 넣지는 못했다. 스페인은 결승에서 브라질에게 0-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2.5.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스페인 국가대표에 승선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폼도 많이 떨어졌고, 당시 클럽팀인 아틀레티코의 동료였던 디에고 코스타의 스페인 귀화로 인해 팀내 입지는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다. 대회 직전 비야는 브라질 월드컵을 끝으로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할 것을 발표했다. 스페인이 초반 2경기에서 최악의 부진으로 충격의 2연패를 당하면서 조별리그 탈락을 확정지은 이후, 조별리그 3차전 호주전에서 선발 출장하였다. 초반부터 경쾌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호주의 수비진을 괴롭히다 전반전 37분경에 후안프란의 크로스를 백힐로 재치있게 밀어넣으며 월드컵 통산 아홉번째 골을 득점했다. 후반 이후 비센테 델보스케 감독이 이른 시간에 후안 마타와 교체시켰는데, 델보스케는 이후의 인터뷰에서 호주전이 비야의 국가대표 은퇴 경기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경기 후에 MOM으로 선정되며 국가대표팀에서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떠났다. 첫경기 네덜란드전부터 부상여파로 고생하던 코스타보단 토레스나 비야를 썻으면 어땠을까 하는 사람들의 아쉬움이 컸다.

1골을 더 넣으며 월드컵 통산 9호골로 마무리 했다.

3. 그 후

MLS 진출 이후, 꾸준한 득점을 올리며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유로 2016 이후 훌렌 로페테기 감독이 부임하면서 국가대표 복귀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본인도 이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결국 2017년 8월 러시아 월드컵 유럽 예선을 앞두고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깜짝 발탁되었다.[6] 이로써 2014년 6월 국가대표 은퇴 선언 이후 1159일만에 대표팀에 복귀하게 됐다.

그리고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전, 이탈리아를 상대로 98번째 A매치를 치렀고, 자신이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리히텐슈타인전 이전의 훈련에서 근육 부상을 당하면서 하차하게 되었고 2018 러시아 월드컵은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2017년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였다.

4. 총평

비야는 국가대표팀에서 98경기 59골을 기록했고, 이 기록은 고스란히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다. 또한 월드컵 통산 12경기 9골, 유로 통산 4경기 4골, 컨페드컵 통산 8경기 6골을 기록, 참가한 모든 국제대회에서 득점을 올리는 대활약을 하며[7] 명실상부 라 로하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는다.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더불어, 스페인 역시 그의 은퇴 이후 대체자를 전혀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점에서 그의 가치를 더욱 크게 체감할 수 있다. 스페인의 메이저 대회 3연패를 이끈 황금세대들의 상당수가 기량이 하락하거나 노쇠한 2014년 월드컵에서는 아예 조별 탈락을 하더니, 이들이 은퇴하고 새로운 얼굴들이 들어온 UEFA 유로 2016에서는 그의 후계자 중 하나로 꼽혔던 알바로 모라타가 부진하며 16강 탈락,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디에고 코스타가 그나마 밥값은 했으나 비야만큼의 폭발력은 보여주지 못하며 팀은 16강 탈락했다.

이후 스페인은 기존의 황금세대들이 모두 물러난 뒤 루이스 엔리케 감독 체제하에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새로운 젊은 피들의 등장[8]과 중원 장악력 및 기회창출, 특유의 점유율 축구로 회귀하는데 성공하며 유로 2020에서 4강에 진출하고 20-21 네이션스 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반등의 조짐을 보였으나, 유독 원톱 자리만큼은 페란 토레스, 제라르 모레노, 알바로 모라타 등 그 누구도 만족할 만한 활약은 없었다. 그 결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코스타리카전 7:0 양민학살을 제외하면 대놓고 애무축구라는 조롱을 들을만큼 중원에서의 볼배급과 전환, 연계에 비해 최전방에서의 마무리는 형편없었으며, 이는 모로코에게 발목을 잡혀 또 16강에서 광탈당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카타르 월드컵 이후 스페인 국대는 2022-23 네이션스 리그 우승, 유로 2024 전승 우승, U-23 대표팀도 2020 도쿄 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새로운 황금세대와 함께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유독 골을 잘 넣는 스트라이커는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데, 독일과 마찬가지로 최전방과 윙포워드 자리에서 월드 클래스의 모습을 보여줬던 다비드 비야의 후계자를 찾아야한다는게 가장 중요한 목표일 정도로 그의 공백이 크게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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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번째 골은 개인기로 3명을 제치고 득점했으며, 두 번째 골은 논스톱 슛팅으로 득점했다. 그러나 PK를 실축하면서 해트트릭은 실패하였다.[2] 다만 경기 중에 온두라스 레프트백인 에밀리오 이사기레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격하는 비신사적인 행위를 하면서 비판을 받았다.[3] 하지만 이 골은 오프사이드였다. 사비 에르난데스가 비야에게 백힐 패스를 내줄때 비야의 왼발이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4] 하지만 이쪽은 16강 탈락.[5] 사실 원래대로라면 토레스랑 같이 투톱이 되었어야 했지만 하필 토레스가 월드컵 직전 부상으로 인해 폼이 많이 내려간 상태에서 무리하게 뛴거였으며 그러다보니 토레스가 1인분도 못하는 사이 비야 혼자 하드캐리하게 된 것이다.[6] 본인의 건재함도 이유겠지만 아무래도 디에고 코스타가 소속팀 첼시와 마찰을 일으키며 경기를 뛰지 못했던 것이 큰 이유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7] 06 월드컵 4경기 3골, 유로 08 4경기 4골, 09 컨페드컵 5경기 3골, 10 월드컵 7경기 5골, 13 컨페드컵 3경기 3골, 14 월드컵 1경기 1골. 국제대회 통산 24경기 19골.[8] 사비&이니에스타의 후계자로 꼽히는 가비페드리의 엄청난 활약, 로드리파우 토레스와 같은 후방 수비자원, 데 헤아의 뒤를 이을 골키퍼 우나이 시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