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 이름 | 다니엘 오스발도 Daniel Osvaldo | |
본명 | 파블로 다니엘 오스발도 Pablo Daniel Osvaldo | |
출생 | 1986년 1월 12일 ([age(1986-01-12)]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
국적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아르헨티나|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3cm, 체중 73kg | |
직업 |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eee> 유스 | CA 라누스 (1995~1999) CA 반필드 (1999~2000) CA 우라칸 (2000~2005) |
프로 | CA 우라칸 (2005) 아탈란타 BC (2006) US 레체 (2006~2007) ACF 피오렌티나 (2007~2009) 볼로냐 FC 1909 (2009~2010) RCD 에스파뇰 (2010~2011) AS 로마 (2011~2013) 사우스햄튼 FC (2013~2015) → 유벤투스 FC (2014 / 임대)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4~2015 / 임대) → CA 보카 주니어스 (2015 / 임대) FC 포르투 (2015~2016) CA 보카 주니어스 (2016) CA 반필드 (2020) | |
국가대표 | 14경기 4골 (이탈리아 / 2011~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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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2. 클럽 경력
9세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CA 라누스에 입단하였다. CA 반필드를 거쳐 2000년에 CA 우라칸으로 이적하였다. 2005년까지 동 클럽의 유스팀에서 플레이하였다.2006년 1월 18일, 당시 세리에 B의 아탈란타 BC에 입단하였다. 이탈리아의 첫 해는 출전 3경기에서 1골이었다. 7월 25일, 같은 세리에 B의 US 레체에 임대 이적하여 31경기 8득점의 성적을 남겼다.
2007년 8월 13일, 이적료 460만 유로에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하였다. 9월 29일의 AS 리보르노를 상대로 세리에 A에 첫 출전하였다. 2008년 3월 2일 원정 유벤투스전에서 후반 추가 시간에 역전골을 넣었다. 골세레머니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를 흉내 낸 기관총 포즈를 선보이며 20년 만에 유벤투스전 원정 승리에 기뻐하는 서포터들을 열광시켰다. 또한 마지막 경기가 된 5월 18일의 토리노전에서 오버헤드 킥으로 결승골을 넣으며 팀에게 다음 시즌의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가져왔다.
이듬해 2008-09 시즌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영입에 따라 출전 기회가 감소하였고 겨울에 이적하기를 희망하였다.[1]
2009년 1월 16일, 볼로냐 FC로 이적하였다. 8월 23일의 피오렌티나전에서 친정 팀 상대로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볼로냐에서 마르코 디바이오에게 밀려 생각보다 활약은 적었다.
2010년 1월 11일, 스페인의 RCD 에스파뇰에 임대 이적하였다. 시즌 후반에만 20경기에 출전해 팀 최다인 7골을 넣었고, 6월 3일에 5년 계약으로 완전 이적하였다.
2년차 2010-11 시즌 종반전을 부상으로 탈락했으나 24경기에서 경력 최초의 두 자릿수 골이 되는 13득점을 올리는 활약을 보여 유로파 리그 출전권 싸움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클럽 재정 상황의 악화로 오스발도의 판매를 검토하게 되었다.
2011년 8월 25일, AS 로마에 5년 계약, 이적료 총액 1750만 유로에 이적하였다. 볼로냐 시대 이후 1년 반만에 이탈리아로 복귀하였다. 11월 25일의 우디네세전 이후 동료 에릭 라멜라를 가격하여 클럽에서 10일 근신 처분 및 벌금이 부과되었다. 또한 2012년 2월 26일의 친정팀 아탈란타전에서는 MF 루카 치가리니를 걷어차 퇴장되었고, 2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문제이나 거듭되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시즌 전체로는 26경기에서 팀 최다인 11골을 올리며 세리에 A 자신의 첫 두 자리 골을 기록하였다.
2012-13 시즌은 16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2013년 2월 10일의 삼프도리아전에서 페널티킥을 획득했는데 원래 차는 키커는 프란체스코 토티였지만 그것을 빼앗아 찼으나 골을 넣지 못하였다. 경기 후 공항에서 서포터와 몸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숙적 라치오에 0-1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쳐 유로파 리그 출전을 놓쳤다. AS 로마의 감독 대행을 맡고 있던 아우렐리오 안드레아촐리는 오스발도를 선발 투입시키지 않고 후반 교체 투입해 15분의 출장 시간을 줬다. 이에 격분한 오스발도는 경기 후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SNS에 “니가 바보인 걸 인정하는 게 더 나을거야. 가서 라치오랑 파티를 즐겨”라는 글을 안드레아촐리 감독 대행에게 남겼다. 이에 격분한 로마 안드레아촐리 감독 대행, 팬들과 오스발도는 설전을 벌였다.
로마에서 문제를 일으킨 오스발도는 결국 컨페더레이션스컵 최종 명단에 들지 못했다. 프란델리 감독은 부임 후 구단에서 퇴장이나 비 매너적인 행동,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보이는 선수들을 '윤리 규정'에 따라 대표팀에서 제외시켰는데 오스발도에게도 그 룰을 적용 했기 때문이다.
구단, 서포터와의 대립은 날로 깊어 갔고, 2013년 8월 18일 에스파뇰 시대의 은사 마우시리오 포체티노가 이끄는 사우스햄튼 FC 이적이 합의되었다. 이적료는 클럽 레코드가 되는 1500만 파운드였다.
2014년 1월 31일 유벤투스 FC로 임대되며 6개월 만에 이탈리아 무대로 복귀하였다. 팬들이 그의 멘탈을 우려하여 테베스랑 같이 유폭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훌륭하게 적응하며 유럽 무대와 리그에서도 활약해주고 있다. 똑같이 멘탈로 걱정받던 테베스도 잘 적응하는 것을 보면 콘테의 멘탈 관리 스킬이 대단하단 것을 알 수 있다.
2014년 8월 5일,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1시즌 임대되었다. 12경기 5골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으나 그러나 인테르에서도 후술할 멘탈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고, 결국 2015년 2월 CA 보카 주니어스로 재임대되었다. 시즌 종료 후 사우스햄튼으로 복귀했다.
2015년 8월 4일 FC 포르투 이적이 확정되었다. 2015-16 시즌 전반기 겨우 1골에 그치며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고 2016년 1월 6일 포르투와의 계약이 해지되었다. 1월 9일 CA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하였다.
그후 오스발도는 보카 주니어스에서 다시 나왔고 여러 팀들이 오스발도에 관심을 가졌지만 오스발도는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자신의 말로는 밴드활동을 하며 음악인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런데 2020년 1월 은퇴한 지 4년 만에 현역에 복귀했다. 오스발도가 1999년에 유스 생활을 했던 CA 반필드와 1년 계약을 맺었다.
3. 국가대표 경력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이중 국적을 소지하고 있었지만 이탈리아 대표팀을 선택하였다. 2007년 11월 16일 U-21 아제르바이잔 대회에 U-21 이탈리아 국가 대표로 첫 출전하였다.2011년 10월 11일 UEFA EURO 2012 예선에서 북아일랜드 전에 이탈리아 대표팀에 데뷔하였다. 2012년 9월 7일 월드컵 예선 불가리아 전에서 A매치 첫 골을 포함한 2골을 기록하였다.
4. 멘탈 문제
마리오 발로텔리 같은 상또라이도 축구하는 게 축구판이라지만 이 선수도 사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멘탈이라면 알아주는 선수이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사건을 소개하자면, 프란체스코 토티의 PK 도둑 사건. 팀의 PK 전담 키커를 무시하고 자기가 차고 싶다는 이유로 PK를 찼고, 또 실패까지 했다.또 소속팀 감독이 자신을 선발로 기용하지 않자 감독을 비꼬는 발언을 해서 국대에서 짤리기도 하고, 동료인 에릭 라멜라 폭행설에도 연루되어 영국에 팔렸다.
그 이후 사우스햄튼 FC에서도 동료 주제 폰트를 또 때렸다. 그리고 인테르에서도 2015년 새해 첫 경기인 유벤투스 FC전에서 마우로 이카르디가 좋은 위치에 있던 자신에게 패스를 주지 않고 탐욕을 부렸단 이유로 격렬하게 분노하여 달려들었다.
또한 경기 후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에게도 대들었다고 한다. 덕분에 다음 경기 명단에 소집되지 않았고 따로 훈련을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다시 불만을 떠트리며 2일간 무단으로 훈련을 이탈했다가 인테르에 고소를 당한 이후 방출 명단에 올랐다. 인테르 부회장인 하비에르 사네티의 말에 의하면 오스발도가 단순히 만치니에게 대든 수준이 아닌 감독에게 폭행을 가했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실력은 좋아도 가는 팀마다 끊임없이 사고를 쳐서 어느 한 팀에 머무르지 못하고 여러 팀들을 떠돌아야 했던 선수였다.
[1] 이 때 같은 팀동료였던 잠파올로 파치니도 질라르디노에 밀려 이적을 원했고 파치니와 오스발도는 둘 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적하고 말았는데 피오렌티나 팬들 사이에서는 둘 중 한 명이라도 설득하여 잔류시켰어야 했다는 안타까움을 표하는 사람들도 많았었다. 이유는 저 둘을 이적시킨 뒤 영입한 백업 공격수들이 전부 다 폭망하여 로테이션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시피 한 바람에 질라르디노에게 부담이 가중되어 결국엔 2011-12 시즌이 되어서는 혹사의 여파가 터졌는지 질라르디노마저 폼이 떨어져버리고 말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