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11. ~ 1938.10.
1. 설명
20세기 초 멕시코의 에스피나조(Espinazo) 지역에서 활동했던 대체의학 치료사이자 주술사(Curandero).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본명은 호세 데 헤수스 피덴시오이며, "소년" 을 뜻하는 니뇨 피덴시오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그가 비교적 젊은 청년기에 활동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어린 시절에는 유독 조용하고 금욕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소년이었다고 한다. 주술사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은 1921년부터 시작했으며, 추종자들에게 진흙목욕과 같이 자신이 일러 준 일정한 의식을 통해서 병을 고치는 법을 알려주었다. 원래 이 동네 문화 자체가 다양한 대체의학과 약초학에 열려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에스피나조 일대에는 지금까지도 땅바닥에 굴러다닌다거나 진흙탕에 몸을 담근다거나 하는 다양한 의식들이 활발하게 전수되고 있는 중이다. 그가 고쳤다고 알려진 병으로는 나병(leprosy)과 결핵, 시력결손 등이 있으며,
곧 니뇨 피덴시오는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수많은 추종자들을 확보했다.[1] 물론 그만큼 니뇨 피덴시오를 흉내내는 얼치기들도 엄청나게 나타났다고 하며, 이들의 기세가 어찌나 심했던지 이들 중 하나가 죽었을 때에는 언론에서 "니뇨 피덴시오 씨가 사망했다!" 고 오보를 내는 바람에 여론이 한 차례 발칵 뒤집어진 적도 있었다고.[2] 1928년에는 심지어 당시 멕시코대통령이던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카예스(Plutarco Elías Calles)가 니뇨 피덴시오의 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하니 그의 위상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
일단은 가톨릭 측에서는 그를 시성하려는 움직임이 없지만, 민간에서는 그런 것 없이 이미 성자 취급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에스피나조 마을에 수많은 관광객들과 순례객들이 몰리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고, 니뇨 피덴시오의 생일인 11월 18일마다 축제를 하며 그를 기념하고 있다. 그의 명성은 멕시코 북부와 미국 남부의 접경지대에까지 퍼져 있는 상태라고. 심지어 그를 신이 내려주신 인물 취급하면서 그의 의지를 받들겠다는 "Fidencista Christian Church" 라는 신생 교파마저 생겨났을 정도다. 니뇨 피덴시오의 친척들과 가까운 혈통이 주축이 되어 교단을 운영중. 이들은 피덴시오가 "신이 내린 선물" 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를 성스러운 소년(Niño santo)이라고 부른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007년 작 《데쓰 프루프》(Death Proof)에 니뇨 피덴시오의 이름이 언급된 적이 있다고 한다.
2. 의학적 관점
니뇨 피덴시오의 사례는 종교학적으로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의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다지 반길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잘못된 치료를 감행했다가 나아지기는커녕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어찌 손도 못 써보고 소중한 생명을 잃는 일들은 제3세계 의학계에 수두룩하게 널렸다. 당장 제임스 랜디가 방한하여 화제를 모았던 SBS 프로그램 《도전! 100만 달러 초능력자를 찾아라》 에서도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식으로 유사 의료행위를 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이 나왔던 적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만만하게 초능력 테스트에 도전했지만 대부분 현지에 찾아간 PD들조차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트릭을 쓰고 있었으며, 랜디는 이들의 무책임한 행태에 분노했다.그래도 니뇨 피덴시오와 그 추종자들에게 최대한 호의적으로 설명해 본다면, 일종의 신체화 장애에 한해서는 실제로 효과가 있었을 수 있다. 현대의학 및 임상심리학의 발견에 따르면 정신의 문제가 신체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례들이 상당히 누적되어 있어서, 예컨대 전환장애(conversion disorder)의 경우 실제로 저소득층 여성들에게는 시력결손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경우 심리적인 근본 원인을 찾지 않고 의학적 접근을 하게 되면 오히려 대증요법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인구 300명밖에 안 되는 저소득층 마을의 전반적인 신비주의적 분위기와 공동체주의, 그리고 저학력을 고려한다면 니뇨 피덴시오가 의도적이든 의도치 않았든 그들의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고 안심시켜 주어서 신체적 상태를 정상적으로 되돌렸다는 설명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3]
3. 외부 링크
4. 같이보기
[1] 옛날 예수의 경우도 그랬지만, 일반 대중의 지지와 추앙을 받을 수 있는 빠르고 쉬운 길 중 하나는 (어렵고 복잡한 열 마디 설교 대신에) 병든 추종자를 한 번 고쳐주는 것이다.[2] 실제 니뇨 피덴시오의 죽음은 이로부터 1년 뒤였다. 죽은 후에는 별도의 트랜스 상태를 거치지 않고도 가까운 타인에게 합일하듯이 빙의할 수 있다고 알려진다. 빙의된 사람은 생전의 니뇨 피덴시오처럼 일시적으로 치유의 기적을 베풀 수 있다고. 그런데 이런 신통한 양반이 죽기는 또 어쩌다 죽었는지...[3] 그래서 간혹 일각에서는 예수의 행적도 현대과학적으로 동일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로마의 식민지로서 당시 유대 사회는 정치적 불안과 종교적 원리주의가 득세하는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보이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유대 저소득층들이 예수에게 호소했던 증상들 중 상당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얽힌 전환장애와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