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7-10-13 09:34:31

농가니컬 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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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개설 이전2.2. 농가니컬 월드2.3. Team NG2.4. 농가니컬 맵스
2.4.1. 황금기2.4.2. 막장주의2.4.3. 앙과 미마2.4.4. 암흑기, 그리고 멸망2.4.5. 부활
3. 몰락의 원인
3.1. 적은 유입과 회원들의 고령화3.2. 스타크래프트의 쇠락3.3. 테빈의 방임과 구마게의 독재3.4. 스마트폰의 보급
4. 구조 및 콘텐츠
4.1. 공지사항4.2. 의사당4.3. 자유 게시판4.4. 리뷰 게시판4.5. 프로젝트4.6. 자작 맵 자료실4.7. 명작 맵 자료실4.8. 맵 배틀4.9. 유즈 맵 대회4.10. 명예의 전당4.11. 사운드 자료실4.12. 막장 맵퍼 연합 게시판4.13. 앙 게시판
5. 관련 항목

1. 개요

대한민국에 있었던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사이트.
가장 최근의 아카이브

그런데 누군가 버려진 도메인을 확보하고 리마스터 출시일에 맞춰 부활할 것임을 암시하는 카운트다운이 올라와 있다. 링크.

2. 역사

농가니컬 맵스 1주년까지의 역사는 테빈이 제작한 1주년 기념맵에 관련 사료가 남아있으나 그 이후부터는 상당히 불확실한 자료에 기반하여 작성되었다.

2.1. 개설 이전

21세기의 막을 연 2000년대 초, 인터넷의 분위기는 존댓말이 오고 가고 초성체를 지양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공간이었다. 이단이라 할 수 있는 디시인사이드가 있었으나 그마저도 일간베스트 저장소와 메갈리아 등 욕설과 혐오로 점철된 작금의 기준으로는 그저 귀엽기 그지없는 햏자들이 놀던 공간이었다. 당시 맵사이드도 이런 훈훈한 문화의 영향으로 회원들은 하오체와 초성체를 거부하며, 스스로의 의지로 경어를 사용하며 타인을 존중하는 맵사이드를 가꾸어갔다.

하지만 맵사이드는 물론 겉으로 보기에 커뮤니티의 이상향처럼 보였지만, 결국 방대한 제국을 지탱하기 위해서 어떠한 형태의 관료 조직이 필요했고, 관리자들을 임명하는 것은 수장 덩빅이었다. 그리고 회원들은 덩빅의 총애를 얻고 감투의 획득을 위하여 웃는 얼굴로 서로에게 비수를 겨누었고, 잠잠한 수면 밑에 흐르는 격류를 다룰 줄 아는 영리한 자들은 친애하는 지도자의 곁에 우뚝 설 자격을 얻었고, 그들은 회원들의 고혈로 만들어진 철옹성을 지어 그 안에서 온갖 더러운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며 운영진들과 '미물' 들의 사이를 구조적으로 가로막았다. 당시 이 가식과 기만에 역겨움을 느낀 자들은 얼마 없었다 [1]

이에 테빈은 맵사이드, 덩빅, 그리고 그를 감싼 수 겹의 인간 장막이 공포한 길이 유일한 길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농가니즘이라는 일종의 유사 사상을 정립하고 이를 전파하였다. 비록 일개 중학생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식견과 도량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는데, 지금에서야 "너 몇 살이야"라던지 현실에서의 지위, 특히 나이를 가지고 언쟁을 벌이면 틀딱이니 꼰대니 온갖 조롱을 받지만 당시는 비록 온라인이라 해도 연상자에[2] 초성체와 욕설 등의 급진 반사회적 철학을 내포하는 사상을 전파하는 행위는 바로 문전박대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판국이었다. 하지만 맵사이드의 심화되는 부패를 경멸하던 일부는 당시 그들을 지배하던 문화를 초월한 결단을 내리고 테빈의 반덩빅 전선에 합류하였다. 이러한 지지를 바탕으로 테빈은 2005년 4월 17일에 농가니컬 월드를 개설하고 농간 황제를 칭하였다.

2.2. 농가니컬 월드

농가니컬 월드는 맵사이드에서 독립하여 세운 폐쇄적 친목 커뮤니티였는데, 테빈이 창립 당시 데리고 나간 동지들이 시작과 끝을 장식하였으며 가끔 맵사이드의 소극적 동조자들이 와서 글을 남기고 가는 격이었다. 이 시기가 딱히 사학자들에게 이목을 끄는 것도 아니기에 사료가 전무하다. 주목할 작품으로 테빈찬양디펜스 2(작자 미상; 테빈 추정)과 Joker Story 3(10pckin작)이 있는데, 전자는 동시대 테빈의 다른 작품들의 수준으로 유추하자면 똥맵일 것으로 추정되며, 후자는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시대상을 응축하여 담아낸 명작으로, 가히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 비견해도 모자르지 않다. 일단은 반덩빅 정신이 이념인 사이트였으나 맵사이드가 주도하는 질서를 거역할 수는 없었기에 맵사이드에도 업로드되었다.

2.3. Team NG

명목 상 으로는 열린 커뮤니티였던 농가니컬 월드의 핵심 인물들이 모여 당해 같은 해 8월 23일 Team NG가 탄생하였다. 팀원과 비팀원이 명확히 나뉘는 구조로 인해 공식적으로 폐쇄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사실상 인정하였다. 신묘한 점은 바로 Team NG와 농가니컬 월드가 공존했다는 것인데, 안그래도 폐쇄적이었던 사이트를 둘로 나누어 활성 회원들을 한 쪽에 수용함으로서 농가니컬 월드는 망조가 들어 9월 30일 폐쇄되었다. 대체 왜 이런 비효율적인 계획을 추진한건지는 의견이 분분하나 아마 테빈 본인만이 알 것이다. 이 시기에 딱히 의미 있는 작품이 나온 것은 아니고, 유즈맵 제작 및 세력 확장에서 손을 떼고 농가니컬 맵스 출범까지 MSN 메신저로 친목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 의견이다. 2006년 7월 당시 맵 좀 만진다는 사람들이 선망하던 엘리트 팀들의 연합체인 에센스에서 맵배틀을 개최하고 Team NG도 이 기회에 영향력을 넓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자 테빈과 쉐이크가 각각 장난감 찬양맵과 땅 위의 기쁨이라는 준똥맵을 제출하며 화답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테빈을 제외한 주요 회원들이 노쇠하여 대학 입시를 준비할 시기가 되며 활동이 뜸해지자 Team NG는 폐쇄되었고 같은 날 드디어 농가니컬 맵스가 탄생하였다. 이는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큰데, 타 회원들에 비해 어렸던 테빈은 이전까지는 여유가 있었던 형들이 놀아주었지만 그들이 다 죽어버리자 홀로 남는 것을 우려하여 폐쇄적 구조를 바꾸어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사이트로 개편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Team NG의 사이트는 2017년 5월 기준으로 여전히 보존되어있다. #

2.4. 농가니컬 맵스

농가니컬 맵스로 개편되며 친이민 정책을 장려하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숫자의 방문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더군다나 비슷한 시기 맵사이드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인투더맵이 출범하는 등 맵계에 대격변이 일어나자 많은 난민들이 이주하였다.

2.4.1. 황금기

이에 황제는 2007년 1월 테빈찬양맵 7을 제작해 건재함을 널리 알렸고, 불과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테빈찬양맵 8을 출시하여 회원들의 애국심을 고양했다. 2월에는 쉐이크가 역작 농가니컬 메디컬 센터를 발표하며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테빈은 2월 28일 리뉴얼을 단행하였다. 3월 말에는 테빈찬양맵 9편과 10편이 연달아 출시되었다. 4월 12일 조커 스토리로 맹위를 떨친 10pckin이 God Killer 2를 자랑스레 내놓았고 이어서 5월 Joker Story 4를 배포하였다. 같은 달 테빈이 농가니컬 맵스하면 아직도 떠오르는 불후의 명작 Our Lost Heaven 4를 출시하였고, 이는 오덕 문화가 약하지 않은 인투더맵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매미가 산발적으로 울던 같은 해 7월에는 쉐이크의 오퍼스 매그넘 Hooked On Nonganmaps가 출시되었는데, 그때까지 나온 모든 농간맵들의 편린들을 하나의 서사로 엮은 이 맵은 일종의 입문서가 되었다. 이후 10pckin의 최측근 Gw-MagE가 The Adagio와 우상님 찬양맵을 제작하였다. 그해 여름에만 대단히 많은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액마의 역습 9(Neo_ZEON작), The Excrement Battle(Gw-MagE작), Godworld Adventure(사킬작) South Korea Park(쉐이크작)이 모두 이때 출시되었다.

2.4.2. 막장주의

Team NG 시절의 농가니즘을 향유하던 자들은 학업이 버거워지자 2008년 즈음하여 서서히 맵 제작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3], 이 자리를 유입된 회원들이 채웠다. 이들은 스갤 등을 시작으로 맛이 가던 디시인사이드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자들로, 나름대로 고상한 블랙 코미디와 은유적 비꼼이 특징인 기존의 농간맵들과는 달리 기존 질서를 파괴하듯 본능에 충실한 직설적이고 파격적인 맵들을 생산하며, 막장이라는 특유의 스타일을 정립하였다. 이 운동의 기원은 2007년 가을에 유입된 캐논이며, 처음에는 유명작들을 답습한 복제품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수준 미달의 맵들을 제작하였고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여기서 그는 발상의 전환을 하는데, 고퀄리티 맵 제작에 소질이 없다면 아예 쓰레기같음을 컨셉으로 한 맵들을 양산하여 다른 방향으로 그 이름을 알린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그의 막장 사상을 농가니컬 맵스에 전파했다. 이에 감명받은 파라솔과 원킬맨이라는 자가 합류하여 막장 맵퍼 연합이라는 집단을 설립하였는데, 이들은 대다수 맵계 유저들의 심리를 정확히 이용하여 급격히 세를 불리는데 성공하였다. 당시 중고등학생들이 대부분이었던 회원들은 소속감이라는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4] 따라서 세레스, ZIF를 위시한 유즈맵 제작팀에 입단하는 것을 크나큰 영광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들은 매우 폐쇄적이었고 가입하는 과정은 잔도를 건너는 것에 비견될만큼 험난했다. 따라서 맵 제작 팀에 가입하는 건 그림의 떡이나 다름 없었는데, 캐논은 이들에게 막장 맵퍼 연합은 모두에게 열려있다며 "당신들도 당당히 맵 제작 팀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가입을 권유했고, 실제로도 가입 조건은 그저 아무 맵이나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맵이라도 이를 모더니즘적 예술이라 칭찬하고 가입을 승인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머리에 피도 안마른 학생들의 유악한 마음을 가지고 논 캐논은 한 달만에 막장 맵퍼 연합을 회원수 15명의 거대한 팀으로 발전시켰다. 이와 함께 사이트를 농간 제국 외부에 개설하고 공지에 야짤을 올리는 등 기존의 농가니즘을 부정하는 파격적 행보를 이어갔다. 테빈은 처음에는 재롱 떠는 것과 다름 없게 여겼지만 팀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자 이를 흡수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후 2008년 5월 캐논이 일신 상의 이유로 잠시 자리를 비우자 비트리올은 부팀장 원킬맨과 접촉하여 막장 맵퍼 연합을 농가니컬 맵스에 합병하는 조약을 맺는다. 캐논이 복귀하여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었고, 그도 결국 농가니컬 맵스 휘하로 들어갔으나 그나마 천재적 언변을 발휘하여 일국양제와 흡사하게 자치권을 얻어낼 수 있었다.[5] 그리거 합병으로 오히려 접근성이 향상되자 막장 맵퍼 연합은 회원 수가 30명에 달할 정도로 끝을 모르고 비대해졌다. 마침 여름에 제1회 농가니컬 맵스 맵 대회가 열렸는데, 막장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파라솔과 사신이 GTA와 테빈과 토키코의 미트스핀이라는 핵폐기물을 제출해 심사위원들을 격노케하였고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훌륭한 맵을 만들고 상금을 타는 것이 아닌 심사위원을 엿먹이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 자들이 늘어나 맵배틀 등지에서 정상적인 맵을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또한 이때 즈음하여 성교, 성기 등을 일컫는 말이 부끄러운 것이 아닌 일상 대화의 한 부분이 되었다. 가을에는 캐논이 정책을 바꾸어 정신병자들만 받는게 아닌 나름 실력있는 유망주들을 포섭하는 데도 공을 들여 막장 맵퍼 연합 딱지가 붙은 맵이 인투더맵 이 달의 우수 유즈맵에 올라가는 등 저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때부터 자만한 나머지 몽니를 부려 재독립을 주장하는 등 회원들의 반발을 부르는 행위를 자행하였고 발렌타인 데이 미마상품권 사건으로 소요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주의: 위 내용은 사견이며, 막장주의는 구마게의 막장맵을 따라한 사이비종교같은 존재지만 파급력도 없고 아무도 관심 없었음.

2.4.3. 앙과 미마

2009년 2월 28일, 테빈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합의 부팀장 파라솔은 반군들을 MSN으로 집결시켰다. 전 부팀장이지만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알타니스는 수려하게 작성한 문서를 그에게 건냈고 눈빛을 교환하였다. 이어서 지시 사항을 하달한 후 미국 서부 시각으로 3월 1일이 되기를 기다렸다. 시침 분침 초침이 12를 가리키는 그 순간 농가니컬 맵스에 토캐논격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이는 기존 막장 맵퍼 연합 회원들의 80%가 집단 탈퇴하여 Ancient Noganical Guardians, 줄여서 앙이라는 새로운 팀을 만들겠다는 캐논에 대한 선전포고와 같았다. 테빈 또한 칼같이 앙을 인정하며 연합과 단교, 캐논의 작위를 몰수하였다. 이에 캐논은 격노했지만 남은 팀원 서넛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농가니컬 맵스를 탈퇴 후 은퇴 선언을 하였으나 어떻게든 복수하기 위해 며칠 후 번복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크나큰 상처를 받고 맵 제작에 대한 열의가 식은건지 비열하게 앙을 조롱하는 맵을 간헐적으로 배설할 뿐 실질적으로 팀 관리에서 손을 뗐고, 새로운 부팀장이 된 리무브가 폐허가 된 팀을 이끌었으나 실질적으로 그가 할 수 있는건 없어서 그도 마찬가지로 앙을 도발하며 사태를 관망하였다.

반면 기세 좋게 시작한 앙은 처음에 연합이 그랬듯이 외부에 사이트를 개설하였으나 무료 호스팅을 쓰던 사이트가 계속해서 캘리포니아발 공격에 터지자 "연합이 계속해서 무력으로 우리 공화국을 도발한다면 최후결전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궁극의 무기가 증오와 복수를 담아 독재자의 정수리를 조각낼 것"이라며 캐논을 비난하며 경고했으나 이내 포기하고 농가니컬 맵스에 기생하기로 결정하였다. 비슷한 시기 캐논이 서버를 잘못 건드려 내용물이 증발하자 막장 맵퍼 연합도 마찬가지로 본진이 초토화돼 농가니컬 맵스에서 불편한 동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두 세력은 2010년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를 맹비난하였으나 강경파들이 사망하자 긴장이 완화되어 힘을 합쳐 합작을 만드는 등 사실상 구분이 유명무실해졌다. 사실 2009년 말 이미 양쪽 모두 팀으로서의 기능이 정지한 상태에서 서로 욕만 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도 볼 수 있다.

2.4.4. 암흑기, 그리고 멸망

수능이 점점 다가오자 테빈은 본인이 더이상 농가니컬 맵스를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흔히 구마게라 불리는 Gw-MagE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사실상의 덴노-쇼군 체제로 전환한다. 문제는 구마게가 독선적인 성격으로 상당히 적을 많이 만들었다는 것으로, 그가 집권하자 공지사항이 바뀌며 하단에 "운영자는 규정을 무시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 삽입되었는데, 이를 대놓고 저지른 것은 내가 독재하겠으니 꼬우면 탈퇴해라 수준의 공갈이었으며, 더이상 갈 데가 없는 회원들은 앞에서는 구마게를 소우상님이라 부르며 찬양하였으나 뒤로는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권력을 이용해 파라솔을 왕따시키고 프로젝트들을 통보 없이 마음에 안 든다고 삭제하는 등 극악무도한 패악적 발광 행위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였으나 목이 날아갈 판에 소리내어 비난하지 못했다. 또한 이 시기에 농가니컬 맵스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맵배틀이 무기한 연기되어 흉흉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했다. 이후 구마게도 관리에 소홀해지고 10pckin이 권한대행을 맡아 이 시기 규제가 조금 완화되었으나 이미 농가니컬 맵스는 크게 무너진 상태였다. 폐허만 남은 농가니컬 맵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어디선가 흘러 들어온 뉴비 서넛, 그들의 신상을 털어 조롱하는 캐논과 가끔 나타나 상스러운 글 또는 이호성 사진을 남기고 가는 유령들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FTP 접근 권한을 탈취해 본인이 설립한 엠버스타로 이들을 강제 이주 시키고자 농가니컬 맵스를 폐쇄하였다. 이 최후의 순간까지도 생존자들은 테빈이 귀환하여 사이트를 복구해줄 것이라 믿었으나 그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주의: 위 내용은 사견이며, 테빈 이후 구마게 집권 후, 농맵은 황금기 맞이했음. 멸망은 스타크래프트2 출시에 맞물려서 진행된 것.

2.4.5. 부활

그런데 4년이 지나 누군가 도메인을 확보하였는데, 충격적이게도 역대 명작맵들의 하이라이트 영상들과 8월 15일, 리마스터 출시일에 맞춘 카운트다운이 올라와 있어 재건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3. 몰락의 원인

대부분 친목질

3.1. 적은 유입과 회원들의 고령화

농가니컬 맵스는 회원들 절대다수가 중고등학생들이었으며 이들이 나이를 먹을 수록 학업에 더 열중할 필요가 있었기에 활동히 눈에 띄게 감소하였다. 이를 상쇄하려면 고등학교 3학년으로 진급하는 회원들의 수만큼 젊은 신규 가입자들이 수혈되어야 하는데, 농가니컬 맵스는 커뮤니티들 중에서도 상당히 접근성이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나가는 것이 들어오는 것보다 월등히 많았다. 겨우 가입한 회원들도 그중 절반은 막장 맵퍼 연합 붕괴의 여파로 정신이 나가 모든 것의 종말을 부르짖으며 잃을 게 없던 캐논이 집요하게 건드려 쫓아내고는 했다. 대표적인 예가 나이트워로, 2012년 정말 간만에 가입한 열심히 활동하는 순수한 신규 회원이었으나 캐논은 그의 사진을 합성하며 대안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을 조롱하자 끝내 욕을 내뱉으며 나가버린 비운의 인물이다.

주의: 캐논은 존재감이 없었던 변방 오랑캐였음.

3.2. 스타크래프트의 쇠락

사실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하는 원인으로, 농가니컬 맵스가 후기로 갈수록 일반 커뮤니티화 되어가긴 했지만 본질적으로 맵 제작이 목표한 사이트였다. 하지만 이 맵 제작이라는 것이 굉장히 매니악한 취미로 스타크래프트의 전성기에도 수가 적었는데 리그 오브 레전드 등 신규 게임의 부상으로 영원할 것만 같던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식자 맵 제작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사라졌다. 대체 누가 인기 없는 게임의 맵을 만들고 싶겠는가? 더군다나 누군가 자신의 맵을 플레이하리란 보장도 없는데? 사실 아무리 신규 유저에 적대적이고 관리를 개판으로 했어도 스타크래프트가 영원히 한국 게임 시장의 왕좌를 차지했더라면 농가니컬 맵스는 아직도 건재했을 것이다.

3.3. 테빈의 방임과 구마게의 독재

심연을 너무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본다 하던가. 평생 덩빅을 증오하며 살아온 테빈은 끝내 덩빅과 똑같은 길을 걸었다. 덩빅이 무책임하게 게하오에게 맵사이드를 넘기고 도망갔듯이, 테빈은 구마게에게 농가니컬 맵스를 넘기고 잠적했다. 무한한 권력은 구마게의 악랄한 인성을 증폭시키며 회원들을 압제에 신음하게끔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타 사이트의 깐깐한 규율을 경멸하여 발언의 자유가 보장된 농가니컬 맵스로 온 것인데 그 곳에서 더한 일을 겪게된 것이다.

3.4. 스마트폰의 보급

본래 회원들은 MSN 메신져를 대화를 나누곤 하였으나 이게 어느정도 불편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사이트에 글을 올릴 이유 또한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널리 퍼지고 카카오톡이 인기를 끌자 더 이상 웹 브라우저로 사이트에 접속하여, 로그인 후 글을 올릴 필요가 사라졌다. 애초에 유입이 끊기다시피한 당시에는 친한 회원들끼리 놀면 되는 것이었고 흔히 말하는 단톡방이 이러한 일엔 안성맞춤이었다.
그결과 공개적으로 나누던 대화는 보이지 않는 카카오톡에서의 대화로 대체되었고, 게시판에는 아무 글도 올라오지 않았고 이를 보고 죽은 사이트라 판단한 사람들이 떠나는 악순환이 지속되며 망했다.

4. 구조 및 콘텐츠

4.1. 공지사항

사이트의 법전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후기에는 관리자들이 꼴리는 대로 배설하는 공간으로 변질되었다.

4.2. 의사당

2008년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설립되어 회원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고 투표하는 선진적인 게시판이었다. 분탕종자 추방 투표, 명작맵 자료실 등재 등 합의가 필요한 사안들은 꼭 의사당을 거쳤다. 하지만 구마게 집권 이후에는 사실상 체육관 선거하는 곳이나 다름없는 곳이 되었다. 자신의 최측근들만 투표할 수 있도록 제한하거나 국민투표 비슷한 사항이 있으면 다음 예시와 비슷한 식으로 올라오곤 했다.
ㅇㅇ의 추방을 찬성하십니까?
1. 예 2. 네 3. 찬성합니다

4.3. 자유 게시판

잡담, 뻘글, 질문 등의 카테고리가 있었으나 이들이 제대로 활용되는 꼴은 보기 드물었다. 다른 커뮤니티에도 흔히 있는 말그대로 아무 글이나 올라오는 곳이었으며 때문에 가장 저열한 곳이기도 했다.

4.4. 리뷰 게시판

맵에 대한 리뷰를 올리는 게시판이었으며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진 글보다 의미 없더라도 삐까뻔쩍하게 포토샵으로 만든 이미지 리뷰가 매우 인기가 좋았다. 북극곰이라는 존재감 없던 회원의 평론 능력이 매우 뛰어난 것이 알려지자 그가 관리자가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신분이 상승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아직도 전설로 전해진다.

4.5. 프로젝트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을 올려 타인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반영해 수정하는 등 매우 건설적인 취지에서 설립된 게시판이었다. 초기에는 진행중, 포기, 완성 세가지 카테고리만 있었지만 이후 구상을 추가하면서 이 게시판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섰는데, 구상은 말그대로 구상으로 구체적인 내용 없이 단편적인 생각만 적어도 되는 카테고리였다. 이를 정신병자들이 악용하며 알고리즘 등의 구현 방식이나 시스템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도 없는 한줄글로 게시판이 범람하게 되었다.

4.6. 자작 맵 자료실

본인이 만든 맵을 올리는 자료실로 댓글로 짤막한 반응들이 달리고는 했고, 여기서 더 심화된 분석을 하고자 하는 자들은 리뷰 게시판에 맵에 대한 평가를 올렸다. 초기에는 나름대로 맵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물건들이 올라왔지만 막장 맵퍼 연합이 득세하며 데이터가 아까운 쓰레기들이 넘쳐흐르자 제대로 된 맵은 진흙에서 진주를 찾는 것만큼 어려워졌다. 또한 자작이라고는 하지만 딱히 타작을 올린다고 처벌되지는 않았다.

4.7. 명작 맵 자료실

관리자들이 훌륭하다고 인정한 맵들이 자작 맵 자료실에서 이곳으로 승격되며, 수작, 특작, 걸작 카테고리가 있었다.
분류 기준이 매우 추상적이며 관리자 마음대로였다.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정치적 거래의 일부로도 활용되었으며, 대표적으로 막장 맵퍼 연합 합병 당시 테빈이 캐논의 권위를 세워주고자 그나마 덜 쓰레기같은 맵을 하나 골라 수작으로 등재한 예가 있다. 이후 연합이 붕괴하고 캐논의 이용 가치가 없어지자 쥐도 새도 모르게 그 맵은 삭제되었다.

4.8. 맵 배틀

에센스에서 유래한 문화로, 격주마다 특정한 주제를 바탕으로 한 맵을 제작하는 대회였다. 기한은 이틀이었으며 심사위원은 가장 훌륭한 맵을 선정해 이를 우승작으로 선포하면 테빈이 문화상품권을 우승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본래는 다들 문화상품권을 노리고 진지하게 임했으나 한 작품이 음의 점수를 받아 파란을 일으키자 이에 눈이 돌아간 막장 맵퍼들이 최대한 낮은 점수를 받아 기록을 갱신하고자 치열하게 경쟁하는, 주제에 맞는 최고의 맵을 만들어서 겨루자는 처음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가장 쓰레기같은 맵을 만들자가 되어버린 비운의 콘텐츠였다. 역대 최저 기록은 패배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알타니스의 Penisian Ruin으로 음의 무한대의 점수를 기록하였으며 규격 외로 캐논이 옛 이야기 4k의 전설로 3개월 출장 정지를 당했다. 쉐이크는 역대 최고의 패배왕으로 캐논을 뽑았으며 그 뒤를 리커, 알타니스가 이었다. 웃기게도 이들 사이서도 일종의 공감대가 있었는데 바로 쓰레기같은 맵을 만들더라도 주제와의 연관성은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주제와 맞지 않는 맵은 아무리 쓰레기같아도 맵 배틀에 대한 모욕이라며 인정해주지 않았다. 또한 이들 중 가장 악질은 심사위원은 모든 맵을 끝까지 플레이해야 한다는 규칙을 악이용한 놈들로, 체력 9999 방어력 255 건물로 맵을 가득 채운 뒤 공격력 1의 유닛으로 모든 건물을 파괴하는 식의 맵을 당당하게 제출하고는 했다. 나중에 가서는 심사위원도 실제로 플레이하지 않고 트리거를 까보는 방법으로 대응했다.

4.9. 유즈 맵 대회

방학마다 열리던 대회로, 맵 배틀과 비슷하지만 시간이 훨씬 넉넉하고 주제가 아닌 장르 제한이 있었다. 첫 대회는 비교적 정상적으로 진행된 편이나, GTA와 테빈과 토키코의 미트스핀이라는 희대의 괴작들이 역사를 바꿨다. 너무나 쓰레기같았던 나머지 심사위원이었던 쉐이크가 이례적으로 동영상을 통한 심사를 진행하였고 이것이 너무 강렬한 인상을 준 나머지 막장 맵퍼들에게 꼴등이 1등보다 더 큰 주목을 받는다는 그릇된 생각을 심어줌으로서 차기 대회들과 맵 배틀들이 막장맵들로 얼룩진 계기가 되었다. 1차는 영상, 2차는 디펜스, 3차는 대전이었으며 이후 아마도 테빈의 재정 악화로 인해 중단되었다. 부록으로 맵에디터 이론 필기 시험이 있었는데, 워낙 재미가 없었기 때문에 돈이 당장 급한 사람들이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아 참여율이 저조했다.

4.10. 명예의 전당

맵 배틀 및 유즈 맵 대회 우승작들이 등재되는 게시판이었다.

4.11. 사운드 자료실

맵에 쓰일 각종 사운드 파일들을 올리는 곳. 저작권 문제로 폐쇄되었다.

4.12. 막장 맵퍼 연합 게시판

막장 맵퍼 연합이 농가니컬 맵스 밑에 있을 때 사용하던 게시판으로, 팀장이었던 캐논에게 관리 권한이 주어졌는데 그는 제로보드의 게시판 수정 기능을 극한까지 발휘하여 배경 이미지를 바꾸거나 끌 수 없는 음악을 삽입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운영자인 테빈도 이를 묵인하는 등 사실상의 치외법권 지대였다.

4.13. 앙 게시판

분리를 추진하던 앙의 사이트가 연달아 폭파되자 체념하고 농가니컬 맵스에 기생하며 사용한 게시판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주요 회원들은 거의 대부분 스타크래프트1에 흥미를 잃고 다른 게임을 하러 갔기에 막장 맵퍼 연합 게시판에 비교하면 활동이 매우 저조했다.

5. 관련 항목


[1] 다만 맵사이드 뿐 아니라 다수의 커뮤니티에서 이런 이중성을 인지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2] 특히 맵계에 몸담은 자들이 주로 학생이었는데, 어릴 수록 나이 한두살에 목 메는 것은 지금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물며 2000년대 초,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던 시절에 이들의 나이에 대한 집착은 나치즘과 다름 없는 수준이었다.[3] 원래 NG팀의 맵제작 속도는 느린편.[4] 당장 유튜브에 핏덩이들이 혐오스럽게 마인크래프트, 언더테일 관련 댓글을 꾸준히 다는 것을 연상하라. 이건 이들이 자신이 하는 게임에 일종의 소속감을 느끼며 이에 따라 정신적 안정을 취하는 과정이다.[5] 회원들이 의심하자 그는 게시판 배경을 빌리 헤링턴 사진으로 바꾸고 배경에서 미트스핀을 재생하는 등 그의 권력이 아직 정당하고도 확고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