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7 11:00:23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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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
Nathan Bedford Forrest
파일:Nathan_B._Forrest.jpg
출생 1821년 7월 13일
미국 테네시 채플 힐[1]
사망 1877년 10월 29일 (향년 56세)
미국 테네시 멤피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 파일:아메리카 연합국 국기(1865).svg 아메리카 연합국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8cm, 82kg
직업 군인, 노예상, 정치인
소속 (前)아메리카 연합군 육군
쿠 클럭스 클랜
별명 안장의 마법사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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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메리카 연합국의 군인으로, 기병을 이끌고 남북 전쟁에서 활약했다. 쿠 클럭스 클랜의 초대 회장이다. 본래는 노예제 지지자였고 본인도 노예주였으나 말년에는 흑인 차별에 반대하기도 하였다.

2. 생애

테네시주의 가난한 가정에서 1821년 탄생했다. 1841년 미시시피주에서 삼촌과 사업을 시작했으나 삼촌이 매틀록 형제들과 시비가 붙어 살해당하자 총으로 매틀록 형제 둘을 죽이고 둘을 칼로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2] 삼촌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포레스트는 사업을 키워나가 노예 매매, 부동산 중개, 목화 농장 운영 등으로 미국 남부 최고의 부자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남북 전쟁이 발발하고 고향 테네시주가 연방을 탈퇴하자 막내 동생과 아들을 데리고 남군에 사병으로 입대한다. 테네시 주지사는 병역을 기피하던 대부분의 부자들과 달리 입대한 포레스트에 감명을 받았고, 마침 남군의 열악한 사정을 본 포레스트가 테네시 병사들을 위해 자비로 말과 무기를 사겠다는 제안을 하자 아예 자신의 부대를 만들 수 있도록 포레스트를 중령으로 진급시키고 기병 부대원들을 모집하고 훈련시킬 권한을 부여한다.

포레스트는 정규 군사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으나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며 남북전쟁의 가장 뛰어난 지휘관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대활약한다. 전투에서의 활약들은 물론이고 북군의 후방을 기습하여 북군 장군들을 포함해 많은 포로들을 잡거나 기반 시설을 파괴해 율리시스 그랜트의 작전에 많은 차질을 빚었다. 포레스트를 악마라고 불렀던 윌리엄 테쿰세 셔먼도 북군의 무어 장군과의 전투에서 포레스트가 전사했다는 잘못된 정보를 얻었을 때 무어 장군을 소장으로 진급시키고 자신의 후임으로 추천하겠다고 했을 정도로 포레스트의 기병대라면 아주 이를 갈았다. 기병을 지휘한 것을 감안할 때 신기하게도 잠깐이지만 북부 해군의 함선을 노획해 일종의 해군을 휘하에 두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항복한 북군 병사들(주로 흑인 병사들)이 학살당했다는 논란이 일어난 포트 필로우 전투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남부의 패전을 막지는 못하고 로버트 리 장군의 항복 소식이 전해지자 포레스트도 항복했다.

이후 아칸소주 일대에서 철도를 부설하는 사업을 했고, 앨라바마주에서도 철도 사업을 했으나 말아먹고 테네시주로 돌아가 농장을 운영했다. 이후 1870년대 초 미국과 스페인 간 전운이 고조되자 자신과 남북전쟁 당시 싸웠던 셔먼에게 자신이 참전하여 셔먼을 돕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셔먼도 감사를 표하며 영광이라 답했으나, 전쟁이 나지 않아 불발되었다.

그렇게 지내던 도중 남군 출신들의 친목단체 쿠 클럭스 클랜의 초대 회장이 되었고, 이들을 이끌며 정치권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쿠 클럭스 클랜이 본래부터 인종차별적이긴 했으나 당대 기준에서도 극단적인 흑인 혐오 성향이 점점 커지면서 1870년 연방 대배심에서 KKK가 공식적으로 반국가적 테러 단체로 인정받을 만큼 흑인이나 공화당원들을 향한 린치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이에 충격을 받은 포레스트는 쿠 클럭스 클랜 탈퇴나 클랜 해산 등을 시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포레스트는 이 때 성향이 바뀌어 흑인의 참정권이나 인권을 지지하는 연설[3]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1877년 당뇨 합병증으로 사망했으며, 수만 명이 참여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3. 여담

포레스트의 증손자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 3세 준장은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독일에서 전사했다. 이는 유럽 전선에서 미군 장성의 첫 전사였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인 포레스트는 극중에서 이 인물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1] Chapel Hill, Tennessee[2] 부상을 입고 살아남은 매틀록 형제 중 한 사람은 남북전쟁 당시 포레스트의 부대원이 되기도 했다.[3] 당시 이 연설이 뉴욕 타임즈에 보도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