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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호(1916)

파일:김중호(1916).jpg
한국광복군에 복무하던 시절의 사진.
파일:김중호(1916)-2.png
1992년 5월 7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등재된 사진.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허승룡(許昇龍)
본관 김해 김씨
출생 1916년 2월 21일
평안북도 철산군 백량면 동문리[1]
(현 평안북도 철산군 검암리)
사망 1992년 5월 5일 (향년 76세)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327-37번지 명신타운 자택
'가족''' 동생 김중섭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1묘역-373호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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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독립유공자 김중섭은 그의 동생이다.

2. 생애

1916년 2월 21일 평안북도 철산군 백량면 동문리(현 철산군 검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4년 동생 김중섭을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중화민국 하남성 상구현(商丘縣) 귀덕로(歸德路)[2]에서 한국광복군 제3지대 소속 특파 지하공작원 조동린(趙東麟)을 만났고, 그의 인솔하에 안휘성 부양현(阜陽縣) 삼탑집진(三塔集鎭)[3] 소조장(■棗莊)[4]에 있던 한국광복군 징(초)모제6분처[5]를 통해 한국광복군에 입대했다. 그해 5월[6]에는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편입되었고, 8월 섬서성 서안시에 주둔하고 있던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되었다.

그 뒤 한광반(韓光班)을 수료하고, 1945년에는 한미 OSS훈련반 무전반에서 훈련을 수료한 뒤 국내 진입을 준비하다가 8.15 광복을 맞았다.

1946년 귀국해 서울특별시에 정착했고,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 이어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파일:김중호(1916)-3.png
1992년 5월 7일자 경향신문 기사에 등재된 사진.

1992년 5월 5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327-37번지 명신타운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의 유해는 1992년 5월 7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1묘역에 안장되었다.

[1] 인근의 풍천리와 함께 김해 김씨 집성촌이다.[2]중화인민공화국 허난성 상추시 량위안구(梁園區) 구이더로(歸德路).[3]중화인민공화국 안후이성 푸양시 잉저우구(潁州區) 산타지진(三塔集鎭).[4]중화인민공화국 안후이성 푸양시 푸난현(阜南縣) 자오좡촌(棗莊村). # 광복군 김문택 수기에 의하면 흙벽돌로 만든 작은 4~5채의 집 마다 둘레에 '棗'라는 이름이 뜻하듯이 큰 대추나무 10여 그루가 앙상하니 서 있고 다시 그 둘레에는 큰 대추나무 10여 그루가 앙상하니 서 있고……'라고 표현했다.[5] 초모위원회라고도 하며, 정식 명칭은 한국광복군 제3지대였다.[6] 광복군 김문택 수기에는 한국광복군 초모위원회에 입대한 시기가 1944년 8월 초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