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24:07

김용호(1893)

성명 김용호(金用浩)
생몰 1893년 2월 7일 ~ 1927년 10월 30일
출생지 경상도 창원대도호부 동면
(現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단계리)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919년 전국 각지에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경상남도 김해군에서는 그해 3월 하순부터 독립만세운동에 호응하는 애국군중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주동 인물들은 거듭 의논하여 앞서 3월 31일 하계면(현 진영읍) 진영리의 장날을 이용, 독립만세시위를 시도하였으나 확대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하여 대규모의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김용호는 1919년 4월 5일 진영리 장날에 2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였고 이를 폭력으로 탄압하는 진영헌병주재소의 헌병 오장 아오키 분지로(靑木文次郞)와 충돌하여 격투 끝에 팔, 다리와 배에 상처를 입고 일경에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그해 4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공무집행방해로 징역 1년 6개월형을 언도받아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5월 22일 대구복심법원 형사제1부에서 공소가 기각되고 원심 판결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옥고의 여독으로 1927년 10월 30일 별세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