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3 01:26:02

김영일(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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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총리
김영일
金英日 | Kim Yong Il
파일:김영일 총리.jpg
출생 1944년 5월 2일 ([age(1944-05-02)]세)
함경남도
국적
[[북한|]][[틀:국기|]][[틀:국기|]]
학력 나진해운대학 (학사)
직업 관료, 정치가
주요서훈 김일성훈장(2002)
정당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1. 개요2. 생애3. 여담4. 경력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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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정치인. 내각 륙해운상, 내각총리를 역임하였다.

2. 생애

1944년 5월 2일,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1961년 조선인민군에 입대, 9년간 군생활을 하고 제대했다. 이후 함경북도 나진해운대학을 졸업, 항해기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3년간 3대혁명소조원으로 근무하다가 1980년, 정무원 륙해운부 지도원으로 배치되어 부총국장까지 승진하였다. 1994년 3월 정무원 해운부 청년건설여단 참모장을 거쳐 1994년, 오성렬의 뒤를 이어 정무원 해운부장에 임명되었으며, 남한에서는 이를 1995년 11월에 파악하였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및,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에서 김일성헌법이 입헌되면서 정무원 해운부가 내각 륙해운성으로 개편, 륙해운상에 유임되었다. 1999년 9월, 리종옥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2년 3월 27일, 김일성 탄생 90주년 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2003년 9월, 11기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륙해운상에 유임됨으로 총 9년간 륙해운상을 지냈다. 앞선 해운부장을 합치면 운수 관련으로 무려 13년을 종사한 잔뼈 굵은 테크노크라트였던 것.

2005년 남포항 령남배수리공장, 대형콘테이너선 부두 건설 등의 대형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면서 김정일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내각총리였던 박봉주는 급진적 개혁을 추구하면서 북한의 시장화를 독려하고 당과 군, 정부의 구조조정을 단행하려 했지만, 이 때문에 보수파의 반발을 사고 김정일의 신임도 잃고 말았다. 2006년, 김정일은 박봉주에게 부여하였던 여러 권한을 회수하고 그를 징계하면서 새로운 총리를 물색하기 시작했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김영일이었다.

2007년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11기 5차 회의에서 륙해운상 자리를 라동희에게 넘겨주고 순천비날론련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된 박봉주를 대신하여 새로운 내각총리에 임명되었다. 북한 언론은 이례적으로 김영일의 사진과 경력을 상세히 소개하였다.[1] 김영일 내각은 3실주의를 강조하면서 실력, 실리, 실적을 강조하고 부총리에 테크노크라트인 태종수를 임명하는 등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변화를 추구하였다. 하지만 그의 내각은 전체적으로 시장을 비사회주의 서식지로 규정한 김정일의 의도에 발맞추어 시장을 통제하려는 보수적인 경제정책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으며 로두철 등 무게감 있는 장관들을 제치고 갑자기 임명된 그에 대해서 사고 치면 뒤집어씌울 희생양으로 임명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었는데, 나중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이 시절 남한을 방문하여 한덕수 국무총리와 총리 회담을 가졌다.

2008년 6월 18일, 김정일은 6.18 담화를 발표하여 시장은 필요하지만,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온상으로 규정하고, 개혁 철회를 공식적으로 천명하였다.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본격적인 시장 단속은 잠시 미뤄졌으나 김정일의 건강이 회복되면서 반개혁 조치의 시행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2008년 10월, 박성철 장의위원, 2009년 3월, 홍성남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9년 4월, 김영일은 12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에 선출되고 총리에 유임되었다. 김정일은 돈벌이의 폐해를 지적하며 뙈기밭 회수, 종합시장 단속 등의 반시장 정책을 계속 지시하였으며 이는 국가계획위원장 박남기가 주도한 재앙적인 화폐개혁으로 정점을 찍었다. 화폐개혁의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이었고, 김영일은 2010년 1월 31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 인민반장 수백명을 소집하여 내각 총회를 열고 반개혁조치와 화폐개혁의 부작용에 대해서 사과하며 3개월만 참으면 쌀이 풀릴 것이라고 사정해야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민심 이반에 김영일 내각은 1월에 시장을 임시로 허용하고, 2월에 외화 사용 금지 조치를 철회하였다. 3월에 박남기를 총살했으며, 노동당의 5.26 조치가 내려지면서 시장을 전면 허용하였다. 4월 9일, 김영림은 최고인민회의 12기 2차 회의에 출석하여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해 인민소비품과 알곡 생산을 비약적으로 늘리고, 인민경제의 기술 개건과 현대화를 다그치자고 호소하였으나, 김정일은 이에 대한 희생양이 필요했고, 2010년 6월 7일 긴급히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12기 3차 회의에서 김영일에게 책임을 물어 해임하고 최영림을 새로운 총리로 임명하였다. 그 이후로 그의 동향에 대해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전임과 후임 총리인 최영림과 박봉주가 원로로서 대접받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불우한 인물이다.

3. 여담

  • 북한의 역대 총리 중 현역 내각 총리 신분으로 유일하게 남한을 방문했다. 2007년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와 서울에서 총리 회담을 했었다. 한덕수는 2022년에 다시 총리가 됐지만 김영일은 해임된 이후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으니 극과 극의 운명을 걷게 된 셈이다.
  • 북한의 역대 총리 중에서 유일하게 정치국은 고사하고 당중앙위원회에조차 들었는지 의심되는 인물이다. 김일성 시대의 총리들인 김일, 리종옥은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냈고 박성철, 리근모, 연형묵, 강성산은 모두 정치국 위원이었다. 김정일 시대의 첫 총리인 홍성남은 김일성 시대에 정치국 위원을 지낸 바가 있으며 총리 시절에는 현직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다. 그 이후 총리인 박봉주는 김정은 시대에 다시 총리가 되면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다. 김영일이 해임되고 나서 임명된 최영림도 김일성 시대에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되어 총리 임명 당시 현역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다. 여기에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임명되었고 박봉주의 후임 김재룡은 정치국 위원, 현임 김덕훈은 정치국 상무위원이다. 김정일 시대에는 당중앙위원회 인선이 마비되었으므로 아마도 평당원으로 머물렀을 것으로 보인다.

4. 경력

임기시작 임기종료 비고
정무원 해운부장
1994년 1998년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에서 직함 개편
내각 륙해운상
1998년 9월 5일 2007년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에서 임명
최고인민회의 11기 1차 회의에서 유임
최고인민회의 11기 5차 회의에서 내각총리로 영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총리
2007년 4월 11일 2010년 6월 7일 최고인민회의 11기 5차 회의에서 선출
최고인민회의 12기 1차 회의에서 재선
최고인민회의 12기 3차 회의에서 숙청

5. 참고문헌

  • 김창희, 「북한 시장화와 화폐개혁의 정치‧경제적 분석」『북한연구학회보』 14(2) (2010.12)
  • 임강택 외, 『2010년 북한경제 종합평가 및 2011년 전망』(서울: 통일연구원, 2011)
  • 임수호 외, 『북한 경제개혁의 재평가와 전망: 선군경제노선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세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5)
  • 전현준, 「최근 북한 권력엘리트 변동 분석」『통일정세분석』2008-3 (2008.4)
  • 최수영,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5차 회의 평가」 『통일정세분석』2007-6 (2007.4)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2014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4)
  • 홍민 외, 『북한 변화 실태 연구: 시장화 종합 분석』(서울: 통일연구원, 2018)

[1] 이러한 친절한 경향은 2013년 3월 전원회의까지 유지되다가 이후 아쉽게도 얼굴과 직함만 공개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