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4-07 00:35:04

김성윤(독립운동가)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김해 김씨[1]
출생 1896년 5월 13일
대구부 인동군 읍내면 진평동
(현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2][3]
사망 1957년 9월 26일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성윤은 1896년 5월 13일 대구부 인동군 읍내면(현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인동군 읍내면 교동(현 구미시 인의동)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14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대구 계성학교 학생 김도길(金道吉)과 박봉술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200여명을 마을 뒷산에 모이게 한 다음,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57년 9월 26일 별세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2] 수형인명부에 따르면, 진평동은 본적이고, 인의동은 주소지라고 한다.[3] 독립유공자 박근술·박명언·박명출·박봉술·박삼봉·박순석·이내성·이범성·이상백·이영래·이윤약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