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f 길원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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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출생 | 1928년 11월 30일 |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희천군[1] | |
사망 | 2025년 2월 16일 (향년 96세) |
인천광역시 연수구 | |
직업 | 인권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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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2. 생애
(여적) 길원옥 할머니의 희망
1928년 11월 30일 평안북도 희천군에서 태어나서 자란 곳은 평양이었다. 1940년 12세 때 고물상을 하던 아버지가 물건을 잘못 구입해 잡혀들어갔고, 그것 때문에 학교도 그만두고 집에 있다가 만주의 위안소로 끌려갔으나, 성병을 얻어 1년 뒤에 돌아왔지만 전시태세 속에 더욱 어려워진 집 사정을 보고 병이 낫자 마자, 중국에 취직을 시켜준다는 말을 듣고 나갔으나 이번엔 허베이성 위안소로 끌려가 '요시모토 하나코'로 불리며 고초를 겪었다. 해방 이후 귀국해 충남과 천안 등에서 돈을 모으고 있었으나 전쟁으로 분단되는 바람에 끝내 고향으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새롭게 정착한 곳에서 가족을 비롯해 누구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지 않고 살았으나, 1998년 TV에 나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장면을 보고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했다.[2] 이후 2004년부터 정의기억연대가 세운 평화의 우리집에서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살면서 수요시위와 일본 현지 집회, 2014년에는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실을 찾아 전 세계 150만 명의 서명을 전달하는 등 여러 해외 활동을 하며 여성 인권 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이 터져 위안부 피해자가 본인 혼자 남을 때까지 평화의 우리집에 기거하다 2020년 6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2012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에서 함께 기거하는 김복동과 함께 나비기금을 출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