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PROJECT M이 제공하는 Financial Repression에 관한 소개 영상(영어) |
금융 억압에 대한 한국어 소개 영상 |
2. 역사적 사례
2.1. 대공황 이후 미국
대공황 당시 미국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도 하에 뉴딜 정책을 펼치고 있었지만, 뉴딜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재정 지출이 필요했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은 모두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획기적으로 금 채굴량이 늘어나는 지질학적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통화량과 재정 지출을 증가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그래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3년 4월 5일, 행정명령 제6012호를 발동해 "금화, 금괴, 금 증서의 사재기를 금지"한다는 명령을 내려 사실상 미국 내 사인(私人)들이 소유하고 있었던 금을 몰수해버린다. 미국 내 사적 경제주체들이 가지고 있던 금의 몰수가 마무리되자, 이듬해인 1934년 미국 의회는 "Gold Reserve Act"라는 법안을 통과시켜 미국 달러의 금태환 비율을 1트로이온스당 20.67달러에서 35달러로 70% 가까이 올려버린다. 금으로 환산한 달러화의 가치는 40% 가까이 폭락한 것이다.
이러한 사인의 금 소유 제한은 수십 년이 지난 1975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 의해 풀렸지만, 그 당시에는 이미 닉슨 쇼크로 인해 금본위제가 폐지된 뒤였다. 이러한 선례는, 향후에도 미국 정부가 재정 부담이 많을 경우 금과 같은 안전자산을 몰수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남기고 있으며 이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긍정론의 핵심 논거가 되기도 한다. 암호화폐는 정부가 몰수할 수 있는 수단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
2.2.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 이후 본격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급등한 전쟁 수행 비용으로 인해 엄청난 재정 지출 부담을 지게 된다. 이에 1942년 4월, 연방준비제도는 단기 미국 국채(Treasury Bills, 만기 1년 이내)의 이자율을 연 0.375%, 장기 미국 국채(Treasury Bonds, 만기 25년 이상)의 이자율을 연 2.5%로 상한선을 두는 수익률 곡선 통제를 시작한다.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났지만,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계속 재정 조달을 위해 수익률 곡선 통제를 유지하기를 원했다. 1947년에 이르러 인플레이션이 연 17%에 이르러, 연준은 만기 1년 이내 단기국채에 대한 이자율 통제를 철폐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50년에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의 전비 부담은 다시 커졌고, 정책 결정자들은 전비 부담을 위한 재정 조달과 인플레이션율 조절 사이에서 갈등하다 1951년 물가상승률이 연율 20%에 이르자 결국 연준과 미국 재무부 간의 밀월관계가 끝나며 수익률 곡선 통제는 끝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