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안동 권씨[1] |
출생 | 1886년 1월 25일 |
한성부 동부 인창방 청량리계 (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 |
사망 | 1921년 2월 9일 |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회기리 (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 |
묘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공동묘지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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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권학규는 1886년 1월 25일 한성부 동부 인창방 청량리계(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에서 아버지 권영수(權永秀)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회기리(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으로 이주하였다.그는 1919년 2월 이동욱(李東旭) 등과 함께 독립군환영단(獨立軍歡迎團)을 조직했다. 그리고 그해 4월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이동녕과 연락을 취하면서 각종 경고문과 반일 유인물을 인쇄하여 비밀리에 국내외에 발송하였다. 1920년 2월에는 3·1독립만세 1주년을 계기로 학생들의 동맹휴교와 상인들의 철시투쟁을 호소하는 <대한독립 1주년기념 축하경고문>을 작성 및 인쇄하여 2월 28일 새벽 4시에 유진익(兪鎭翊) 동지를 시켜 이동욱(李東旭)의 집으로 몰래 보냈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되면서 인쇄기구 및 인쇄물 15,000매를 전부 압수당했고, 그 해 12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범 처벌령 위반 및 출판법 위반,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형(미결 구류일수 중 200일 본형에 산입)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1년 2월 8일 병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가혹한 고문의 여독으로 이튿날인 2월 9일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권학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부정공파 치중(致中)계 3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