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문재(文在) |
본관 | 안동 권씨[1] |
출생 | 1881년 9월 8일 |
충청도 아산현 현내면 차현리 (현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신현리 배내마을) | |
사망 | 1957년 4월 27일 |
충청남도 아산군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 |
서훈 |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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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81년 9월 8일 충청도 아산현 현내면 차현리(현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신현리 배내마을)에서 아버지 권택(權澤)과 어머니 달성 서씨 사이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서산군 대호지면(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로 이주하였다.그는 1919년 3.1 운동이 서산 지역으로까지 파급되자, 그 해 4월 4일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한 대호지면장 이인정을 도왔다. 이인정은 각 마을의 구장에게 도로 보수를 명분으로 주민들을 동원하도록 통지하고 송재만의 제의에 의해 면내 유지 남계원(南桂元)을 중심으로 모든 계획을 진행하여 이날 장에 나가 격문 수백 매를 뿌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니 1,000여 명의 군중이 이에 호응하여 장터를 누비며 천의(天宜) 장터까지 시위행진을 벌였다.
이때 그는 이인상의 주도하에 다수의 동지들과 함께 천의경찰주재소에 이르러 주재소를 파괴할 목적으로 투석을 행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1년 6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아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7년 4월 2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권주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시중공파 여경(餘慶)계 36세 상(相)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