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13 00:10:08

석가장(군림천하)

군림천하/석가장에서 넘어옴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군림천하 등장인물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주력 인물들
종남파 초절정고수
주요 단체
구궁보 신목령 천봉궁 성숙해 쾌의당
무림맹(武林盟)
구파일방(九派一幇)
소림사 무당파 화산파 아미파 점창파
청성파 곤륜파 공동파 형산파 개방
오대세가(五大世家)
모용세가 남궁세가 제갈세가 사천당문 하북팽가
서장
흑갈방 천룡사 고수
그 외
석가장 초가보
}}}}}}}}} ||

1. 개요2. 구성원
2.1. 석분(石奮)2.2. 석숭(石崇)2.3. 철혈홍안(鐵血紅顔)2.4. 석동(石動)2.5. 석호(石湖)2.6. 석담(石潭)2.7. 석곤(石鯤)2.8. 석교(石鮫)2.9. 십이지공자(十二支公子)
2.9.1. 석성(石星)2.9.2. 석철욱(石鐵旭)2.9.3. 석단(石旦)2.9.4. 석조린(石晁麟)2.9.5. 석광호(石廣昊)2.9.6. 석대회(石大晦)2.9.7. 석지명(石志明)2.9.8. 막내(이름 불명)
2.10. 손검당(孫劍堂)2.11. 모일우(毛一禹)2.12. 집사(執事)
2.12.1. 하종요(夏宗耀)2.12.2. 공상춘(孔償春)2.12.3. 공영춘(孔迎春)2.12.4. 공망춘(孔望春)
2.13. 배민(裵敏)2.14. 낙양삼검(洛陽三劍)
3. 기타 석가장 관련인물
3.1. 조익현(趙益玄)3.2. 공치명(孔治溟)3.3. 낙양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들3.4. 석가장의 하인

1. 개요

무협소설 군림천하에 나오는 석가장의 인물들

화북 지방은 강북의 오개 성(省), 즉 하남과 하북, 산동, 산서, 그리고 섬서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로부터 이 지역은 물자가 풍부하고 상업이 발달하여 거부나 거상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거대한 부를 축적한 곳이 바로 석가장이다.

석가장이 부를 쌓기 시작한 것은 멀리 전국시대(戰國時代) 때부터라고 한다. 그 뒤로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석가장은 부침을 거듭하는 역사 속에서도 계속적으로 부를 축적해와 당대에 이르러서는 강호를 통틀어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황금의 가문을 이루게 되었다. 그들에 비길 만한 부를 누리고 있는 곳은 강소의 혁리가와 호남의 구양제일가 밖에 없다고 한다.

예전에 석동이 백모란과 결합한지 십 년도 되지 않아, 석가장의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져 하남성에서도 제일거부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었다. 그때 석가장에서 한 사람이 홀연히 나타나 가문을 다시 부흥시켰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석동의 부인 조여홍이다. 그녀는 유명무실해진 석동을 밀어내고 석가장의 실권을 장악한 후, 단 삼 년 만에 석가장을 과거의 위치로 돌려났다.

그녀는 모란을 보면 백모란이 떠오른다는 이유에서 평생토록 자신의 눈앞에서 단 한 송이의 모란꽃도 피지 못하게 함은 물론이고 모란이 들어간 그림이나 문양도 모두 부수거나 파괴해 버렸다고 전해진다. 눈물이... 또한 석동이 무공에 미쳐 집을 나가서, 그 후로 그녀는 조금이라도 무공에 소질이 있거나 관심을 보이는 자는 결코 장주의 자리에 앉히지 않았다.

석가장에서는 독특하고 엄격한 적자생존인 도선출재(挑選出財)가 있다. 자식이 스무 살을 넘으면 투자할 대상을 자신이 직접 고르게 하며, 오 년 동안 투자를 해서 원금의 세 배 이상을 벌지 못하면 본가의 자식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본가의 재산을 전혀 배분 받을 수 없을뿐더러, 어떠한 권리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한 마디로 이름만 석씨로 남을 뿐, 엄밀한 의미에서 석가장의 후예라고 말할 수 없게 되는거다. 철혈홍안 주도 아래 석가장 인물들은 답답해서 미칠듯...

2. 구성원

2.1. 석분(石奮)

전국(戰國)시대 때부터 내려온 석씨 가문은 한(漢)나라 초기에 만석군으로 알려진 석분 때부터 가세가 번창하였다.

2.2. 석숭(石崇)

석가장 가문의 25대조(祖). 진나라 시대의 전설적인 거부로, 오늘날 석가장의 토대를 이룬 사람이다. 석가장이 본격적으로 부와 명성을 천하에 떨친 것은 석분의 15대손인 석숭 때부터였다고 전해진다.

2.3. 철혈홍안(鐵血紅顔)

본명은 조여홍(趙麗紅)으로 천룡객 석동의 아내이자 조익현의 여동생. 현 무림의 판세를 만들어놓은 두 사람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과거 종남오선의 일원이자 배신자였던 비봉 조심향과도 관련이 있어 보이며 권력 면에서는 현 석가장주 석곤을 능가하는 진정한 석가장의 지배자이다. 자세한 내용은 군림천하/초절정고수 참조.

2.4. 석동(石動)

석가장의 전전대 장주이며 철혈홍안의 남편. 그리고 수화불침의 기보인 천룡궤와 그것을 열 수있는 유일한 열쇠인 봉황금시의 원 주인이자 전대의 고수인 천룡객이다. 그리고 사실 상 현 무림의 판세를 만들어놓은 두 사람들 중 하나. 자세한 내용은 군림천하/초절정고수 참조.

2.5. 석호(石湖)

석담의 형, 손검당에 의하면 무공에 재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석가장의 장주가 되지 못했다고 한다. 독자들 사이에선 연령대가 높고 조여홍의 아들이라 혹시나 신목령주가 아니냐는 추측이 많다.

2.6. 석담(石潭)

철혈홍안의 아들이자 석가장의 전대 (허수아비) 장주. 형인 석호(石湖)와 달리 무공에 재질이 없다는 이유로 철혈홍안에 의해 가주로 발탁되었었다.

석담은 철혈홍안의 기대에 부흥하여 석가장을 한층 더 부흥시켰고, 석곤이 가주에 오른 후 철혈홍안은 조용히 칩거에 들어갔다.

2.7. 석곤(石鯤)

검소한 생활로 유명한 석가장의 현 가주. 무공을 전혀 배우지 않았다. 석곤은 허름한 마의를 즐겨 입으며 반찬은 세 가지 이상 먹지 않는다고 알려졌다.전대 장주와 비슷하게 실권은 거의 전무한, 바지사장 급이지만 친구인 공치명과 더불어 그래도 나름대로 철혈홍안의 꼭두각시를 탈피하려고 노력하는 듯 하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거대한지 그 효과가 정말 미미한 듯. 그래도 결말 즈음땐 철혈홍안 측에 어느정도 꽤 아픈 카운터를 날리지 않을까. 네 명의 부인[1]과 12명의 아들을 두고 있으며, 이들 십이지공자에겐 십이지+결점을 고치라는 점에서 결점과 반대되는 아호를 지어주었다.

진산월에게 차를 대접해주며 천룡궤를 구궁보의 모용단죽에게 운송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철혈홍안이 석곤에게 천룡궤를 밖으로 옮기라고 말했고, 석곤은 그것을 옮겨줄 상대로 진산월을 지정한 것이었다.[2][스포일러] 진산월이 찻 값이 너무 비싸다고 말한적이... 공치명과의 대화를 들어보면 자신은 이젠 너무 지쳤다고 한다.

2.8. 석교(石鮫)

석곤의 아우. 석가장의 독특한 가법인 도선출재(挑選出財) [4]에 실패한 후 형을 질투해 암습하다 실패한 후 석가장에서 쫒겨난 패륜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철혈홍안이 주도하는 석가장의 가풍이 싫어서 스스로 석가장을 나오려다 철혈홍안의 눈밖에 나서 혹독한 보복을 받은 것. 이후 어머니의 성을 따 석교가 아닌 손교로 불렸고 어떤 일도 못하도록 방해받는 동시에 낙양 일대를 떠나지조차 못하게 감시당했다. 그런 와중에도 고아들을 위해 직접 돌을 날라 숙소를 지어주었던 천사표. 진산월의 세번째 친구인 손검당의 아버지기도 하다.

2.9. 십이지공자(十二支公子)

석곤의 네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열두 명의 아들들로, 각기 단점을 고치라는 의미에서 성격과 반대되는 아호를 석곤에게 하사받았다. 이름에 모두 날 일(日)자가 들어간 것이 특징. 석가장의 가법에 따르면 서른을 넘기 전에는 결혼을 할 수가 없어 가정을 이룬 이가 별로 없으며, 나이가 많은 편인 장남 석성, 차남 석철욱 등도 가정이 있다는 묘사가 없다.

2.9.1. 석성(石星)

12지공자 중 장남. 엄청나게 뚱뚱한 몸과, 그에 걸맞는 식욕 및 땀(...)을 자랑한다. 전형적인 능구렁이 타입으로 상재에 무척 밝아서 모용공자와 구궁보에도 연이 닿을 지경. 현재 화산파를 지원하고 있어서 조만간 종남파와 충돌이 불가피할 거라 사료된다. 아호는 천서(天鼠)인데, 결점을 고치자는 의미로 성격과 반대되는 아호를 붙여주는 석곤의 의도를 보면 어릴 때는 둔재였을지도 모른다.
팬들사이에선 쾌의당과 관계가 있지않나 추측중이다. 특히 조화=조일화를 미는 쪽에서 환우지이록으로 모용봉을 압박한점, 화산파를 지원하는점과 맞물려 추측하는 편.

31권에서 여러가지 떡밥을 던지는데, 먼저 그가 일전에 모용봉에게 해결을 맞긴 고대서적 환우지이록은 사실 고대의 책이 아닌 일대기인이 몇십년 전 절세무공을 범어로 기록해둔 책이며, 신목령의 백자목은 그에게 이지를 되찾게 해주는 기물인 칠채보원신주, 녹옥룡, 취수정을 구해달라 부탁하였으며, 석성 자신은 진산월에게 지나가는 듯 '백자목에게 신목오호의 이야기를 전달하면 수지맞는 장사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흘렸다.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듯.

이후 무림맹의 자금과 물자를 책임지는 금단(金團)의 책임자로 거론되었으나 화산파와의 친밀함이 지나쳐 다른 문파에서 거부했다.

상당히 계산적이고 남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석성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세상에서 딱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을 믿지 않는데, 한쪽은 남자고 한쪽은 여자라고 한다(...)[5]

2.9.2. 석철욱(石鐵旭)

차남으로 이름만 언급된다. 성격이 너무나 급하고 일을 빨리빨리 처리하려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매사에 좀 더 신중하라는 의미로 지우(遲牛)라는 아호를 받았다.

2.9.3. 석단(石旦)

삼남. 낙양의 문인으로 활동할 때는 진현(眞賢)이라는 자를 사용한다. 초가보에 투자했다가 진산월과 종남파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데다 쾌의당 혹은 그 배후세력과 내통하고 있어서 망화왕회 때 쾌의당의 살수들과 함정을 파 진살월을 살해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석곤의 안면을 감안한 진산월에게 한 번의 구원을 받았다. 어릴 적에는 소심하고 우유부단했던 성격이라 좀더 대범하고 독해지라는 의미로 석곤에게 노호(怒虎)라는 아호를 받았다.

2.9.4. 석조린(石晁麟)

사남. 삼보회동이 이루어질 때 석단, 석광호와 만나 석광호에게 장성 일대의 면화를 싹쓸이해갔다고 투덜거린 '얼굴이 길고 붉은 옷을 걸친 중년인'이 이사람이다. 행동이 느리고 굼떠 석곤이 조금 더 부지런하고 약삭빨라지라는 의미로 교토(狡兎)라는 아호를 주었다. 석단, 석광호와 함께 강북삼보에 투자했으나 투자처는 밝혀지지 않았다[6].

2.9.5. 석광호(石廣昊)

오남. 석지명과는 유일하게 어머니가 같은 형제로 부리부리한 눈에 당당한 태도를 지닌 호한. 비단옷에 진짜 순금으로 용을 수놓은 장포를 입는 등 자신을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물로 이로 인해 좀 더 몸을 숨기고 자중하라는 의미에서 운룡(雲龍)이라는 아호를 받았다. 장성 이북지대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도선출재의 대상은 삼월보.

2.9.6. 석대회(石大晦)

칠남으로 이름만 언급된다. 어릴 때부터 허약한 체질이라 명마로 유명한 호나라의 말처럼 건강하게 자라라는 의미로 호마(胡馬)라는 아호를 받았다.

2.9.7. 석지명(石志明)

팔남. 도선출재의 대상을 고르는 중 우연히 종남파가 일차로 강호에 출동했을 때 조우하게 된다. 이미 형/아우들이 웬만한 문파들은 다 찜해버린 관계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종남파에 관심을 보내게 되나 당시 종남파가 워낙 듣보잡 수준이어서 일단 두고 보자는 식으로 유예기간을 두기로 진산월과 합의한다. 이후 진산월이 절정 고수로 복귀해서 종남파를 재건하자 정식으로 투자하기로 결정한다. 아직 도선출재를 통과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왠지 석가장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듯. (하지만 주인공과 연결되었으니 해피엔딩은 따놓은 당상!! 역시 줄을 잘 서야 ) 어릴적엔 장난이 심한 개구장이로 순한 젖먹이 양처럼 행동하라는 의미의 유양(乳羊)이라는 아호를 받았다.

2.9.8. 막내(이름 불명)

석지명이 언급한다. 친가는 석가장, 외가는 대막과 장성 일대를 석권하고 있는 대막철기맹으로 상당한 금수저.

2.10. 손검당(孫劍堂)

석교의 아들로 별호는 풍류거사(風流居士) 또는 호접유객(蝴蝶遊客)[7].

아버지와 자신의 일생을 망친 철혈홍안을 증오하고 있으며 동시에 철혈홍안의 수족 노릇을 하고 있는 석가장 식솔들을 경멸하고 있다. 단 의외로 석가장주나 기타 석씨들은 미워하고 있지 않은데, 그들 역시 철혈홍안이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는 꼭두각시들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 원래 낙양제일고수인 동방표응에게 사사했다가 쾌의당에 들어가기 위해 스스로 파문당한다.

현재는 쾌의당 소속 살수로 낙양연쇄살인의 범인. 본인 말로는 3년 전 낙양제일미녀인 정난향을 본 직후부터 사랑에 빠져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랬다고. 살해를 끝낸 다음 정난향이 따라주는 술 한잔을 삶의 낙으로 여길 정도로 푹 빠져있다.[8] 진산월과는 난향원에서 만나 서로 친구가 되자고 약조한다. 진산월이 세 번째 사귄 친구[9]로 이후 쾌의당의 지시를 어기고 진산월이 마실 술에 산공독인 장인몽을 타지 않는 의리를 보인다. 이 때 진산월이 예전에 앙천지독에 중독되었다 살아나서 독에 대해 면역력이 있다고 쾌의당 일당에게 적절하게 이야기를 해 준 덕분에 손검당이 쾌의당을 배신한 것이 쾌의당에 밝혀지지는 않았다.
338장 음모지야 편에서 소수마후가 말하기를 "낙양일대에서 가장 무서운 검의 고수이며, 무림최고의 창의 고수 두명과 대결을 했었으며, 두 대결 모두에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창봉 유중악과의 대결에서 30초를 버텼으며, 봉구령의 혈영창을 상대로 50초까지 백중세를 보이다가 최절초인 혈망의 두번째 초식에 옆구리를 관통당했다고 한다. 같은 편에서 성락중이 봉구령의 혈망을 상대로 계속 약세를 보이다가 자신의 옆구리를 관통당하면서 봉구령의 어깨를 관통시켰지만, 계속 대결을 했으면 패했을 것 처럼 얘기한 것을 보면 손검당의 검 실력이 왠만한 구대문파의 장로급 이상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2.11. 모일우(毛一禹)

석가장에서도 귀빈들만을 모시는 객소인 정연각의 관리 밑 응대를 맡은 인물. 진산월 일행이 재출도하여 석가장을 방문했을 때 깍듯한 태도와 공손한 말투로 접대했다.

2.12. 집사(執事)

석가장에서 총 여덟 명의 집사가 있다.

2.12.1. 하종요(夏宗耀)

석가장의 오집사. 석지명의 초대로 처음 석가장을 방문한 진산월 일행을 접대했다. 이후 종남파 일행이 다시 찾았을 때는 자리에 없었는데, 석지명은 이에 대한 언급을 꺼렸다.

2.12.2. 공상춘(孔償春)

석가장의 이집사로 대외적으로는 장주 석곤을 모시고 있지만 실제로는 철혈홍안이 가장 아끼는 막내제자. 석곤의 친구인 공치명의 세 아들 중 막내로 나이는 45세이며, 애초엔 공치명이 철혈홍안에 대항할 인재로 키우라고 석곤에게 소개해 주었지만 재빠르게 철혈홍안 측에 붙어버렸다. 공치명은 거의 없는 자식으로 생각하는 듯. 철혈홍안이 진산월에 약간의 호감을 보이자 바로 질투신공을 시전한다. 전형적인 "재승박덕"형 인물로 배신 플래그에 주인공에 대한 질투 플래그까지 세웠으니 역시 앞길이 훤히 짐작가는 캐릭터.

2.12.3. 공영춘(孔迎春)

석가장의 육집사. 공치명의 세 아들 중 둘째로 역시 공상춘과 함께 철혈홍안 쪽에 붙었지만 아우와 달리 그리 재능이 뛰어나지 못해서 조직 내에서도 한직으로 밀려나 있다.

이를 만회한답시고 공연히 석가장을 찾아온 응계성을 기습해 사로잡은 후 초가보로 보내려 했지만 실패한다.[10] 이후 진산월이 응계성을 건드린 대가를 치루게 하기 위해서 공영춘을 찾았고 종남파가 자길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자 쾌의당의 살수들과 함께 진산월을 기습하지만 역시 참담하게 실패. 이후 응계성을 건드린 벌로 진산월이 휘두른 검에 왼쪽 발목이 잘려 절름발이 신세가 되었다.

2.12.4. 공망춘(孔望春)

풍림서각주로 석곤의 심복. 공치명의 큰 아들. 공치명의 아들 중 유일하게 석곤 측에 남아있다. 유학자지만 상당한 무공을 지니고 있어 낙양 연쇄살인 사건이 석가장 조직 내의 석곤 세력을 뿌리뽑기 위한 것임을 눈치챈 석곤 측의 지시로 반격함으로서 연쇄 살인을 막았다. 석곤의 명으로 지니고 있던 천룡고궤를 진산월에게 넘겨준다.

2.13. 배민(裵敏)

별호는 절정도(切情刀)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엄청난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기 우해서 자신의 몸을 팔아서, 자진해서 무림인들에게 천대받는 배달의 민족상인의 보표가 된 남자. 현재 친우인 낙양삼검과 함께[11] 석성의 보표이다.

2.14. 낙양삼검(洛陽三劍)

절정도 배민의 친구이자 석성의 보표, 낙양 일대는 물론이고 하남성에서도 손꼽히는 고수들로 '친구를 위해서라면 끓는 물속에라도 들어간다고 하는 인물'들보증도 써줄 기세...로 배민을 따라 석성의 보표가 됐다.

3. 기타 석가장 관련인물

3.1. 조익현(趙益玄)

철혈홍안의 오빠로 천룡객 석동과는 라이벌이자 사실상 현 무림의 판세를 만들어놓은 두 사람 중 한 명.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신공비급과 취와미인상 3개의 원 주인이다. 자세한 내용은 군림천하/초절정고수 참조.

3.2. 공치명(孔治溟)

낙양에서는 상당히 널리 알려진 유학자였다. 어떠한 인연인지는 모르나 석곤과 상당한 친분이 있으며, 석곤보다 열두 살 많음에도 불구하고 친우처럼 지내고 있다. 공망춘, 공영춘, 공상춘의 세 아들을 보내 석곤을 도우라 하였으며, 이중 철혈홍안의 편에 선 공영춘, 공상춘의 두 명을 아들로 생각하지도 않는 듯. 철혈홍안을 '마녀'라 부른다.

3.3. 낙양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들

쾌의당 측에서, 천룡궤를 보유하고 있는 의심자들을 살해해왔었다. 모두 석곤과 친분이 있는 인물들이며, 피해자들은 다음과 같다.

연삼야(燕三爺): 낙양에서 제일 큰 도박장인 무쌍루의 주인. 낙양의 오래된 거부인 연부귀(燕富貴)의 셋째아들이었으나 도박에 맛이 들리며 가문에서 심한 모욕을 받고 축출당한 이후 도박장의 하인에서 시작해 도박장의 총관까지 오르는 입지전적의 활약을 펼쳤다. 이후 사비를 털어 연가장을 둘러싼 땅을 모조리 구입, 연가장에 들어가는 모든 인원을 통제해 연가장을 몰락하게 한 후[12] 그 자리에 고아원을 짓는 기행을 보였다. 흉수에게 목이 잘려 살해되었고, 발견 당시 피바다 속에 머리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조패(曹佩): 낙양 동문대루에서 낙양 최대규모의 포목점을 운영했다.

현일소(玄逸笑): 조패의 친한 친구로 낙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규모의 전장을 운영했다.

초일화(楚一華): 주점인 매화선루의 루주로 낙양의 풍류아로 불리며 별호조차 낙양번공자(洛陽藩公子). 봉태평의 애첩이 머무는 집의 담벼락 밑에서 사지가 잘린 시신으로 발견되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봉태평(鳳太平): 낙양제일풍류아의 자리를 놓고 초일화와 경쟁하던 사이로 별호는 낙양야색(洛陽夜色). 초일화가 살해되자 자신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정하였으나 의심의 눈초리를 받던 중, 초일화의 집 주방에서 똑같이 사지가 잘린 시신으로 발견된다.

복손홍(福孫洪): 낙양 제일의 술도매상. 자신의 침실에서 아랫배가 갈라진 시신으로 발견된다.

임천명(任千命): 낙양에서 제일 큰 마장(馬場)을 운영했다. 자신의 마구간에서 난자당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3.4. 석가장의 하인

마칠(馬七)
곡노대(谷老大): 정확히 이야기하면 석가장의 하인은 아니며 야채를 대주는 고용인.


[1] 이중 세 명의 부인은 무림문파 출신이며, 한 명 (석광호와 석지명의 어머니)만이 무림과 관계가 없다[2] 철혈홍안은 단지 천룡궤를 밖으로 옮기라고만 말했다고 한다.[스포일러] 사실 모용단죽이 아니라 모용단죽으로 변장한 조익현이었다. 덕분에 조익현에게 알아서 운송되며 덕분에 대라삼검을 모두 모았다. 석곤이나 철혈홍안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불명. 다만 정작 받는 당사자인 조익현은 이를 몰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군림천하/초절정고수 문서의 조익현 항목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조익현의 숙원 중 하나는 이 천룡궤를 얻어 대라삼검을 완성시키는 것인데, 가만히 있어도 진산월이 자신에게 천룡궤를 가져다 줄 것임에도 불구하고 쾌의당 용왕 셋에, 서장 세력까지 모조리 다 끌여들여 개판을 만들면서까지 진산월에게서 그것을 갈취하려고 애를 썼다.[4] 20살을 넘으면 자신이 투자할 대상을 직접 골라 5년동안 투자해서 원금의 세 배 이상을 벌어야 한다. 대상은 오직 무림 문파. 이에 실패하면 석가장의 후예로서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게 된다.[5] 그 이후에 천지신명에게 행운을 빌자 의아하게 여긴 뇌일봉이 누구도 믿지 않는다며 따졌는데, 석성은 "천지신명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지 않습니까?"라며 맞받아친다[6] 단 석단이 초가보, 석광호가 삼월보에 투자한 것이 밝혀진 것으로 봐서 검보에 투자했을 가능성이 있다[7] 338장에서 운중용왕이 이야기한 별호로, 정난향에게 푹 빠져 그 주위만을 멤도는 손검당을 경원시한 사람들이 붙인 별호[8] 정난향은 대외적으로는 기녀지만 실제 신분은 쾌의당의 일원으로 쾌의당 화중용왕(花中龍王) 인 소수마후(素手魔后)가 가장 아끼는 다섯번째 제자이다.[9] 첫 번째 친구는 마검 조일평, 두 번째 친구는 삼공자 이존휘[10] 게다가 당시 종남파는 초가보에 의해 거의 멸문해서 그때 진산월의 사제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의미 자체가 없었다. 화중용왕의 제자인 소조림이 이렇게 평하며 공영춘이 괜한 공명심에 번거로운 일을 저질렀던 거라고 일축한다.[11] 배민이 보표를 한다고 하자 자진해서 들어갔다.[12] 당시 연가장은 연삼야의 큰형 연대보(燕大寶)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성격이 잔혹하여 평이 좋지 않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