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16 01:45:12

관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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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민간 전승3. 정사, 연의4. 미디어 믹스5. 관련 문서

1. 개요

중국 민간 전승에서 등장하는 관우.

2. 민간 전승

관우의 딸은 이름을 은병이라고 했으며, 총명하고 예쁘게 생겼다. 관우는 그녀를 손안의 옥구슬처럼 애지중지하였다. 손권이 사람을 보내어 자신의 아들과 혼인을 맺자고 청했다가 관우에게 욕만 먹고 쫓겨났고 이 일은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관우는 군부대 안에서 여자아이를 키우는 일은 여러 가지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은병을 성도로 보내 형님인 유비에게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관은병은 장비에게 특히 귀여움을 받아 호로관 전투에서 여포와 싸웠을 적에 손에 넣은 진주를 선물받았다. 이 진주는 재앙을 쫓는 힘이 있다고 전해졌는데 형주가 함락되어 관우와 관평이 참수되었을 때, 관은병만은 살아 남았다. 그래서 그 진주덕분에 관은병이 목숨을 구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관우가 맥성에서 죽음을 당하자, 은병이 그 소식을 듣고 상심하여 밥도 물도 삼킬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유비는 어린 조카딸이 매일 매일 여위어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매우 가슴이 아팠다. 한번은 제갈량이 그녀를 불러놓고 꾸중을 했다.
은병아! 너도 이만큼 자랐으니 너의 부친과 형제들처럼 나라의 일을 중히 여기고 백부를 위하여 근심을 함께 나누어야지, 이렇게 늘 슬퍼하고만 있어서야 되겠느냐?

이에 은병은 비로소 슬픈 감정을 참아내고 정신을 차려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얼마 후 유비가 또 백제성에서 숨을 거두며 자신의 자식들을 탁고했는데, 이때 제갈량에게 특히 은병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에 제갈량은 은병을 친딸처럼 여기고 그녀에게 학문을 가르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었으며, 황부인은 그녀에게 바느질 등 여인네가 해야할 일들을 가르쳤다. 또 조운에게 사사해 무예를 연마하였다. 그녀의 나이 18세에 제갈량이 남중 정벌을 수행하려고 할 때 남중 유원 출신인 이회를 부관으로 삼았다. 또한 그의 아들 이울도 우수하다는 것을 알게되어 관은병과 이울을 혼인시킨 후 함께 종군했다.

그 해, 제갈량은 남정을 감행하면서 이회 부자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함께 출전토록 명했다. 이회는 남중 유원 사람으로 남중의 상황을 상세히 알았고 있었고, 또 남중지방에서 덕망이 높았다. 이에 제갈량은 남중을 평정한 후 이회 부자를 그곳에 남겨 지키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은병이 남편을 따라 거칠고 황폐한 땅으로 갈 일에 생각이 미치자, 죽은 관우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유비의 부탁도 상기되어서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은병이 그 사실을 알고 말했다.
승상 아버님, 남중은 촉의 후방으로 보통 사람이 지킬 수 없는 곳입니다. 저의 시아버님과 남편이어야만 그 중임을 감당할 수 있으니, 안심하고 그들을 보내십시오. 일찍이 승상 아버지께서 일을 함에 있어 나라 일을 중히 여기라고 하신 말씀을 이 조카딸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새기고 있으니, 저 개인의 안일을 위해 근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갈량은 이 말을 듣고 감동이 되어 의연하게 결정을 내렸다. 이회 부자는 남중에서 많은 공로를 세웠다. 은병은 이울과 함께 그대로 유원에서 살면서 그 지방의 백성들과 친하게 지내고 양잠, 농경, 글자, 무술 등을 가르쳤다고 하며, 백성들의 존경을 받아 관삼소저(關三小姐)라 불렸다. 또한 그 지방 강도들이 노리는 것을 알고 와우석이라는 큰 바위를 관색이 힘도 들이지 않고 옮기는 것을 선보일 때 관은병은 입김으로 그 바위를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관은병은 유원을 떠나는 일은 없었으나 금련산에서 매일 아침 올라 북방을 바라보고 화장을 하며 아버지와 고향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관은병 부부의 시신은 합장되었다고 하며 현재 윈난성 등강현에는 그녀의 묘와 그녀가 단장을 하던 유적지인 소장대가 남아 있다. 물론 관은병 자체가 가상 인물이니만큼 진짜가 아니라 삼국지의 인기를 이용한 돈벌이에 불과하다.

3. 정사, 연의

관은병 자체는 가공인물이지만 모티브가 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관우의 딸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정사 삼국지》에서 손권이 관우에게 서로의 자식을 결혼시켜 혼인 동맹을 맺자는 언급이 있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일화에서 손권이 자신의 아들과 그대(관우)의 딸을 혼인시키자며 사자를 보내오자 관우는 그 사자를 꾸짖은(罵) 다음 혼인을 거부하며 돌려보냈고 손권은 이에 분개했다.[1] 정사에서 관우의 딸이 언급되는 건 이 한 장면 뿐이다.

삼국지연의》에서도 이 기록을 그대로 따왔는데 여기에 관우의 말을 덧붙였다.
호랑이의 새끼를 의 새끼에게 줄 수 있겠느냐[2]

다만 이 대사는 삼국지 연의의 창작.

그리고 정사에서 이회의 아들은 이울이 아니라 이유다. 당연히 관우의 딸과 결혼했다는 기록은 없다.

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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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문서



[1] 자치통감 68권, 權嘗為其子求昏於羽,羽罵其使,不許昏;權由是怒[2] 관우의 이 말을 두고 그럼 관우의 형동생과 결혼한 격이라며 그 모종강이 관우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