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1-12 20:50:51

고2병

1. 설명2. 고2병의 모습

1. 설명

중2병이 반전, 파생된 단어다.

중2병을 심하게 지적하며 자신은 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고2병이라고 한다. 사기안 등으로 대표되는 중2병의 증상이 결국은 사춘기 소년의 방황과 망상벽을 희화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치기어린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 역시 어른스럽다고는 볼 수 없다. 누군가는 "중2병을 까는 중2병" 이라고 부른다. 중2병이 문제가 있음은 인식했지만 아직은 중2병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

중2병이 정신적 성장을 위한 진통인 만큼 그 단계를 거쳐온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도를 넘지 않는 자조에 그친다면 이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가 과거의 자신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순간이고, 때문에 그만 과도한 대응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어찌보면 과거의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 여기서 너무 나가서 상대방을 낮추고 자신을 높일 때 "고2병" 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고2병의 모습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이성적으로 대처한다면, 이것 역시 성숙한 태도라고는 할 수 없다. "중2병을 비판하는 고2병", "고2병을 비판하는 대2병" 같은 식으로 무의미한 비난의 악순환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2 다음은 이병이다 이병 다음은 술2병이라고 카더라

그리고 이런 식의 내리갈굼(?)은 꼰대들의 논리를 닮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주의. 급식충에게 꼰대질하는 학식충들이 노오력을 강조하는 꼰대에는 분노하는 거나, 20대가 고딩을, 고딩이 중딩을, 중딩이 초딩을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다라고 하는 촌극도 비슷한 것.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요점은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리고 "상대방의 미숙함을 수용할 수 있는가" 라고 할 수 있겠다. 진정으로 중2병을 극복한 자세라면, 아마도 "한때의 치기에 들뜨던, 아픈 성장통을 겪었던 시기" 정도로 자신의 유년기를 추억하며 미소짓게 되지 않을까? 억지로 상대방을 계몽하려 하는 태도보다는, 자신과 상대방의 부족한 모습을 너그럽게 이해하려는 태도가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말도 있고.

2. 고2병의 모습

중2병의 표출은 사춘기 소년들의 판타지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2병은 이 판타지를 비판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여기서도 초점은 "상대의 미숙함" 이다. 따라서 상대의 미숙함을 꼬집거나 자신의 성숙함을 과시하는 것이 주가 된다. 다시 설명하자면 과거의 "미숙한" 자신의 모습을 상대방에게 그대로 투영하여 비난하고, 얘? 현재의 "성숙한" 자신은 그것을 극복하는 데 성공했음을 확인하려 애쓰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덕계의 경우, 서로가 즐기는 서브컬쳐의 완성도를 비교하며 자신의 취향이 더 어른스럽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중2병 판타지가 필수적으로 가지게 되는 허구성을 비판하거나 원조논쟁을 벌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개의 경우 고2병이 나이도 많고 쌓아온 지식이나 경험으로도 우위를 보인다. 무엇보다 고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매체일수록 창작물로서의 완성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중2병의 논리는 쉽게 논파되곤 한다.

역덕의 경우, 중2병환빠라면 고2병은 환빠였던 자신을 혐오하면서 환빠를 증오하게 된다. 환빠에 빠진 중2병을 구제할 생각보단 그저 그들을 조롱하고 놀리는데 더 역점을 두는 셈이랄까? 물론 환빠가 욕먹어도 싸긴 하다만 하지만 어느 경우던 상대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맹목적인 비난만을 한다면 이는 중2병에서 깨어난 성숙한 태도라고 보기 힘들다. 고2병도 탈출하면 대2병이 된다카더라

그리고 고2병은 다음해 고3병으로 발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