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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심명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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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십팔반(武芸十八般)의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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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오노파, 미조구치파, 나카니시파 등의 분파를 포함하며 후에 북진일도류, 일도정전무도류 등의 계파가 탄생했다.
오키나와 테, 오키나와 고무도
현대 무도
일본무도협의회 가맹 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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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본검도연맹 주관 삼도(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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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무술 및 격투기:
골법 · 발도도 · 일본권법 · 킥복싱 · 쿠도 · 타이도
² 가라테 유파로는 쇼토칸류(松涛館流, 송도관류), 고주류(剛柔流, 강유류), 시토류(糸東流, 사동류), 와도류(和道流, 화도류) 등의 전통 유파들, 2차대전 이후로 극진회관을 필두로 한 풀컨택트 계열, 쿠도타이도 등의 파생 무술들이 있다.
* 일본 고류 무술과 현대 무도를 나누는 기준점은 메이지 유신(1868)으로 여겨지나, 창시가 그 기간에 걸쳐있거나 그 이후지만 고류의 형식으로 수련되고 있는 경우 여기에 넣었다.
일본 고류 무술의 유파들의 경우 창시 세기별로 분류해 외래어 표기법/일본어 기준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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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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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鏡心明智流

에도 시대 중후기의 검호이자 야마토고리야마번(大和郡山藩 / 現 나라현 야마토고리야마시)의 무사인 모모노이 슌조(桃井春蔵)[1]가 그가 수련한 토다류(戸田流), 일도류(一刀流), 야규신카게류(柳生新陰流), 호리우치류(堀内流), 무헨류창술(無辺流槍術)을 합쳐 1773년 창시한 검술유파.

유파명은 토다류 발도술의 카타(形) 중 하나인 경심(鏡心)에서 따와 경심명지류(鏡心明智流)라고 했고, 후일 경신명지류(鏡新明智流)라고 고쳤으나 이후에도 양쪽 이름을 모두 사용하였다. 일본어로는 둘다 쿄신메이치류(きょうしんめいちりゅう)라고 읽는다.

죽도 대련에 중점을 두어 크게 융성하였고, 에도 막부 말기에는 본부도장인 사학관(士学館)이 신도무념류(神道無念流) 연병관(練兵館),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 현무관(玄武館)과 함께 막말 에도 3대 도장(幕末江戸三大道場)이라 불렸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계승이 끊겼다. 본래부터 죽도 대련 위주의 유파였던 탓에, 현대 검도의 성립 과정에서 흡수되어 유파의 형태를 소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진일도류는 패전 후 살아남은 제자에게서, 신도무념류는 여러 제자들이 분리한 계파들로 보존이 되었기에 이을 사람이 부재하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2. 역사

모모노이 나오요시는 1773년, 에도 니혼바시카야바쵸(日本橋南茅場町 / 現 도쿄도 주오구)에 사학관(士学館) 도장을 세우고, 자신이 익힌 여러 무술을 통합하여 경심명지류를 창시한다. 이때 유파를 창시하면서 시바다이 신궁(芝大神宮)에 액자를 봉납한 것이 타 유파를 자극하여, 계속해서 타류 시합을 요청받게 되었다. 그러나 슌조는 병을 이유로 거절하고, 양자 모모노이 나오카즈(桃井直一)가 시합에 나섰으나 패하는 경우가 많아, 경심명지류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나오요시 사후 2대 나오카즈는, 사학관을 남핫쵸보리오오토미쵸아사리강변(南八丁堀大富町蜊河岸 / 現 도쿄도 주오구)로 이전했다. 여전히 타 유파의 적대적 행위는 계속되었지만, 오히려 이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입문하고, 또 죽도 대련 위주의 수련이 호평을 받아, 문하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오요시 사후 3대 모모노이 나오타케(桃井直雄) 시절에 위기를 맞게 된다. 1831년, 신도무념류 연병관과 교류시합을 열게 되는데, 친선시합을 표명했으나 실상은 서로간의 문하생 쟁탈로 인한 분쟁이었다. 양 유파 간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북진일도류 개조 치바 슈사쿠(千葉周作)를 입회인으로 하여 시합을 개최한 것이다. 치바 슈사쿠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동생 치바 사다키치(千葉定吉) 등 면허개전을 받은 제자 10여 명을 데리고 입회했다고 한다. 이 시합에서 신도무념류 연병관에 패배했으나, 치바 슈사쿠의 중재로 시합은 없었던 것으로 합의한다.

나오타케의 서양자(婿養子)[2]인 4대 모모노이 나오마사(桃井直正)시기에 이르러 사학관은 크게 융성하여 에도 3대 도장으로 불리게 된다. 토사(土佐)번의 유신지사인 다케치 즈이잔(武市瑞山)과 오카다 이조(岡田以蔵)가 에도로 올라와 사학관에 입문한 것도 나오마사 때의 일이다. 타케치 즈이잔을 높이 평가한 나오마사는 곧 면허를 수여하고, 숙두(塾頭)[3]를 맡기게 된다. 사학관의 명성은 이후로도 계속 높아져 나오마사는 에도 막부로부터 요리키격 200석(与力格二百俵)을 받고 막신(幕臣)으로 등용되어, 강무소(講武所)[4] 검술사범역을 맡게 된다.

이후에도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의 상락에 경호로서 동행하는 등 막부를 섬겼으나, 무진전쟁(戊辰戦争) 개전을 반대하여 이탈, 이후에는 유신측에 합류하여 사츠마, 조슈 등의 번병들에게 격검을 지도하였다.

1879년 경시청에 격검담당계(警視庁 撃剣世話掛)가 설치되자, 나오마사의 제자인 우에다 우마노스케(上田馬之助), 카지카와 요시마사(梶川義正), 헨미 소스케(逸見宗助) 등이 채용되어, 경시청에서 제정한 경시청류(警視流木太刀形, 警視流立居合)에 경심명지류의 카타가 포함되었다.[5]

현재 경심명지류는 실전되었으나, 그 계파인 경심류(鏡心流)에 발도술 10본이 남아있고, 또다른 계파 직유심류(直猶心流)의 쿠미타치(組太刀) 역시 경심명지류와 공통된다고 한다.

3. 관련 문서



[1] 본명은 모모노이 하치로자에몬 나오요시(桃井八郎左衛門直由). 이후 경심명지류 종가는 모두 슌조라는 별칭을 이어받아 1대 모모노이 슌조, 2대 모모노이 슌조 식으로 불린다.[2] 사위를 양자로 삼는 것을 말한다.[3] 도장의 문하생을 아우르는 대표자.[4] 에도 막부의 무술 교육기관[5] 대도형 10본 쿠라이즈메(位詰), 거합 4본 우측의 적(右の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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