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남도국악원 공식 발행 영상[1] |
1. 개요
대한민국의 민요로서 경기민요에 속한다.경복궁 수리 과정을 소재로 한다. 그러나 실제로 작곡된 일자, 작사가와 작곡가의 정체 등은 밝혀진 바가 없다.
2. 역사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1865년(고종 5년) 경복궁 중건[2] 사업을 진행할 무렵에 한양 및 경기도 일대의 사당패나 소리꾼들에 의해 불리기 시작하였다.본래 작자 미상의 민요로서 부르는 사람에 따라 음정과 가사가 조금씩 달랐으나, 협률사를 위시한 근대식 공연장의 유행과 사당패를 계승한 전국 순회 공연단의 등장으로 수많은 민요들이 근대적 감각으로 재탄생할 때 경복궁타령 또한 현존하는 형태로 음정과 가사가 정립되었으며, 경기 사당패 출신 공연단의 이동과 함께 전국 방방곳곳으로 전파되어 각지의 노동요로 현지화되기도 하였다.
경복궁타령의 후렴구에 '방아로다'라는 구절이 있는 것은, 경기 방아타령을 정립하던 경기 소리패 출신 소리꾼에 의해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3. 특징
3.1. 음정 및 박자
빠른 템포의 3소박 4박자로, 음정은 '라-도-레-미-솔'로 부를 수 있으며 '라'로 끝이 난다.[3] 소리패에 의해 퍼진 노래답게 소리꾼 특유의 높이 질러 내는 선율로 구성되며 후렴구에 이 점이 특히 도드라진다.3소박 계열이지만 반주에 2소박을 많이 넣어서, 부를 때 당김음[4]을 형성하여 경쾌하고 신명나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음정 및 박자 또한 상술했던 후렴구의 구절과 더불어 당대 경기 소리패의 음악적 성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3.2. 가사
'경복궁타령'이란 곡명에 걸맞게 가사 또한 경복궁을 다룬다.본래 궁궐 짓겠다고 동원한 장정들이 노동의 고됨을 호소하고 국력을 탕진할 만큼 무리한 토목 공사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보니 대규모 건축 자원 징수나 끌려온 백성들과 장인들의 노역을 대놓고 드러내는 내용이었으나, 소리꾼들이 높으신 분 앞에서 공연할 땐 부적절한 가사였기에(...) 경복궁의 자태와 풍경을 찬양하는 가사도 생겨났다.
현재는 두 내용의 가사가 다 전해진다.
4. 가사[5]
(후렴) 에- 에헤이 에-이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 남문(南門)을 열고 파루(罷漏)를 치니 계명산천(鷄鳴山川)이 밝아온다
- 을축(乙丑) 사월(四月) 갑자일(甲子日)에 경복궁을 이룩하세
- 도변수(都邊手)의 거동을 봐라 먹통을 들고서 갈팡질팡한다
- 단산봉황(丹山鳳凰)은 죽실(竹實)을 물고 벽오동(碧梧桐) 속으로 넘나든다
- 남산하고 십이봉(十二峯)에 오작(烏鵲) 한 쌍이 훨훨 날아든다
- 왜철죽 진달화 노간죽하니 맨드라미 봉선화가 영산홍이로다
- 우광쿵쾅 소리가 웬 소리냐 경복궁 짓는 데 회(灰)방아 찧는 소리라
- 조선 여덟 도 유명한 돌은 경복궁 짓는 데 주춧돌 감이로다
- 우리나라 좋은 나무는 경복궁 중건에 다 들어간다
- 근정전(勤政殿)을 드높게 짓고 만조백관(滿朝百官)이 조하(朝賀)를 드리네
- 석수장이 거동을 봐라 망망칠 들고서 눈만 꿈벅한다
- 경복궁 역사(役事)가 언제나 끝나 그리던 가속(家屬)을 만나나 볼까
- 춘당대(春塘臺) 연못에 노는 금잉어 태평성세(太平聖世)를 자랑한다
- 수락산 떨어져 도봉이 생기고 북악산 줄기에 경복궁 짓세
- 삼각산은 천년산(千年山)이요 한강수는 만년수(萬年水)라
- 한양조(漢陽朝)가 생긴 후에 경복궁을 이룩했네
- 광화문을 중심하여 좌우편에 십자각 섰네
- 북악산을 등에 지고 한강수를 띠하였네
- 광화문은 정문이요 북으로는 신무문(神武門)일세
- 동쪽에는 건춘문(建春門)이요 서쪽에는 영추문(迎秋門)일세
- 근정전은 정전(正殿)이요 강녕전(康寧殿)과 사정전(思政殿)이라
- 아미산(峨嵋山) 뒤의 함화당(咸和堂)은 향원정(香遠亭) 조망이 더욱 좋다
- 경회루(慶會樓)의 웅장함은 반천 년 역사를 자랑한다
- 북악산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경회루라
- 연꽃 우거진 향원지(香遠池)에 묘한 정자가 향원정(香遠亭)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