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30 19:43:33

강유(삼국전투기)

파일:강유 삼국전투기.png

1. 개요2. 작중 행적
2.1. 기 전투2.2. 가정 전투2.3. 진창 전투 ~ 낙곡 전투2.4. 국산 전투2.5. 합비신성 전투 ~ 적도 전투2.6. 고관 전투 ~ 전투외편 5편2.7. 수춘2 전투 ~ 검각 전투2.8. 최후
3. 작중 묘사4. 명대사5. 여담

1. 개요

최훈 작가의 작품 삼국전투기에서 등장한 강유를 서술하는 문서.

만화 나루토나라 시카마루로 등장한다. 기린아, 천재 기믹 때문인 듯 하다. 엄청난 귀차니스트인 원본과는 달리 이쪽은 과하게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특징. 아버지인 강경은 나라 시카쿠로 등장한다.

2. 작중 행적

2.1. 기 전투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짧게 등장한다. 마초가 이미 항복한 위강을 죽이라고 하자 강유의 아버지 강경이 "항장을 죽이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대항하다가 방덕에게 살해당하고, 이 광경을 본 어린 강유는 아버지를 부르며 울면서 뛰쳐나가려고 하지만 어머니가 붙들고 만류한다.

2.2. 가정 전투

가정 전투에서 정식으로 등장한다. 기산 점령 소식을 들은 곽회가 상규로 돌아가자 천수태수 마준[1]에게 성으로 돌아가자고 권하지만 마준이 '너희들도 다 적이다'라며 '뭘 믿고 성으로 돌아가겠냐'고 거부하고 상규로 가버리자 태수가 신하와 백성들을 모두 적이라고 하는 거냐며 어이없어했다. 이후 기성으로 돌아와서 장로들과 회의를 하는데, 촉에 붙을지 위에 붙을지 장로들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자 강유 본인이 장로들에게 무언가를 제안했다.

이후 촉과 협상을 고민하는 서량 지역의 대표 자격으로 등장하여, 제갈양에게 찾아가 자신들은 촉을 지지하나 비전도 없는 곳에 붙어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으니 서량이 움직일 빌미를 달라고 요구한다. 이에 제갈양은 가정에서의 전투를 시험 무대로 잡기로 하였으며 그 동안 서량은 중립의 위치에서 어느 쪽도 돕지 않겠다고 합의를 보았다. 촉의 제장들이 의심하자 강유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서량이 촉을 공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정에서 마속왕평의 말을 무시하고 삽질하는 바람에 장합에게 참패를 당하면서 협력은 무위로 돌아가게 되고 강유 또한 귀환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서량에서 위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희생양이 되어 고향에서 쫓겨나고,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이내 서량 원로들의 선택을 이해하며 촉한으로 귀순한다.[2] 귀순한 뒤에는 패전했지만 어쨌든 작전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점이 인정되어 창조연으로 임명되었다.

2.3. 진창 전투 ~ 낙곡 전투

진창 전투 편에서도 북벌에 참여했다. 다만 별 활약은 없었고, 제갈양에게 군량이 바닥이 나 더 이상은 무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산 전투 편에서는 조진의 죽음을 계기로 제갈양이 북벌을 시도했을 때는 사령관인 조진이 죽었어도 위의 대촉 기지인 미성 부근의 방어는 탄탄하고, 반면 위연이 곽회군을 양계에서 거의 전멸시켜 상규가 텅 빈 상태라는 제갈양의 설명을 듣고 기산루트가 움직이기 편하겠다고 말했다.

사마의가 양동을 준비할 때는 제갈양에게 대응을 어떻게 할 지 물었고, 이에 제갈양이 장합 방면을 집중방어한다고 말하자 사마의의 대군이 큰 길을 따라 올라오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제갈양은 사마의는 움직일 거였으면 더 빠른 타이밍에 했을 거라며 적진에 내부적인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강유에게 설명했다. 강유는 이에 내부 문제 무마를 위해 장합을 버리는 카드로 쓰는 거냐고 놀랐고, 제갈양에게서 사마의가 이번 기회에 장합을 제거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은 뒤 그렇다면 차라리 장합을 잡지 않는 건 어떠냐고 제의했지만 적의 내부 문제까지 컨트롤하며 싸울 처지는 아니라고 거절당했다.

이후 보급 문제로 퇴각하면서 복병을 깔 때는 사마의가 추격대를 정말로 보낼까 의문을 표하기도 했으며, 이에 제갈양은 강유에게 추격대는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지만 만약 온다면 장합이 올 거라고 말해 줬다.

오장원 전투 편에서는 제갈양이 손권만총에게 패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양한 공략루트를 생각하면서 강유에게 학소가 죽었다는 사실이 확실하냐고 물은 뒤 진창을 공략할 생각으로 강유를 북원으로 보내는 모습이 나온다. 강유는 북원에서 곽회를 만나서 곽회의 방어에 고전하고, 이에 물러나는 척하다 기습을 가해보지만 결국 실패하고 제갈양에게 돌아간다.

제갈양이 쓰러지자 제갈양을 막사로 옮긴 뒤 임종을 지키고 유언을 듣는다.

제갈양이 유언으로 "다시는 북벌을 논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자 북벌을 논하지말고 실행하겠다며 자의적으로 유언을 왜곡하여 해석한다(...)[3][4] 이에 비의가 태클거는 것은 덤.

퇴각에 앞서 사마의의 추격을 염두에 두며 양의, 비의와 위연을 어찌 설득하여 데려갈지 고심하고 비의가 나서서 위연의 의중을 떠보고 오겠다는 말에 비의에게 감사해 한다.

하지만 비의가 위연의 의중을 파악한 뒤 그를 배제하고 행동을 결정하자, 제갈양이 죽은 것을 눈치챈 위연은 분노하여 잔도를 태워버린다. 사마의가 추격해오자 양의에게 사마의 쪽으로 위장 진격을 하도록 지시하고, 사마의는 제갈양이 살아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물러난다.

전투외편 2편에서는 239년 기준 보한장군으로 촉의 파워 랭킹 5위로 묘사된다.

작피 전투 편에서는 조상 일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위나라의 상황이 나빠지자 기존의 제갈양이 시도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북벌을 시도하려는 장완과 북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기존 북벌이 실패한 이유로는 험한 지형으로 인하여 군량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하였고, 이에 장완이 방향을 바꿔 수로를 통해 상용 쪽으로 진출해 보는 것을 제안하자 수로 쪽으로 이동하면 이동, 보급이 모두 편리하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며, 상대가 전력상으로 유리하니 양쪽 모두 움직임이 자유로운 전면전이 된다면 아무래도 자신들이 많이 불리할 거라고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장완이 이미 한중에서 실패가 여러 번 있었으니 변화를 가질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했고, 다른 방면으로 공략이 가능하다는 걸 알리면 한중 쪽에서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다고 하자 이에 납득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상용으로 갈 준비를 하려고 했지만 장완이 상용 방면으로 움직이기 앞서 기존의 방식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농서 방면으로 진격하라는 명을 받고, 상황에 따라 공격할 것도 허락받는다. 강유는 내심 수비가 허술했으면 좋겠다며 기대하며 출진했지만 곽회의 방어가 너무 단단해 후퇴한다.

낙곡 전투 편에서는 지병이 도진 장완의 병문안을 갔다. 한중까지 비워 뒀는데 자기 때문에 곤란하게 되었다며 사과하는 장완에게 너무 신경쓰지 말고 어서 쾌차하라고 위로해 주기도 했다. 그 밖에는 왕평 등이 낙곡과 자오도 방면을 막을 때 강유 본인은 기산의 곽회를 견제하는 모습이 살짝 나오기도 했다.

2.4. 국산 전투

비의와 함께 위와 오의 불꽃놀이를 감상하는 모습이 나온다.

강족이 낙곡대전의 일로 불만을 품은 것을 이용해 강족과 손을 잡아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킨 강족을 돕기로 한다.

강족이 움직이자 비의에게 적극적으로 북벌을 실행하자고 건의하며 비의를 설득하지만 비의에 반대에 부딪힌다. 하지만 절호의 기회를 놓칠수 없는 만큼 비의에게 북벌을 할 수 있는 권한은 받되, 군사 1만 제한(…)을 받게 된다.

운용 병력의 부족으로 신중히 움직이던 중 곽회가 농서로 갔다는 말을 듣고 위시로 향하지만 위시에 곽회가 있는 것을 보고 후퇴한다.[5] 그러나 강족들이 곽회에게 패퇴하여 치무대가 구원 요청을 하자 요화와 함께 급히 북진하나 요화가 곽회의 공격을 받자 요화를 구출하고 퇴군한다.

한중에 비의가 오고 위의 하후패가 투항하는 등의 호재가 이어지자[6] 다시 북벌을 주장하며 병사를 더 달라고 부탁하지민 거절당하며 그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지난번 성중산에서의 움직임, 즉 진영을 만들어 놓고 강족 패잔병들을 수용하며 전력을 키워 싸우려 했던 전술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이번에는 좀 더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국산에 거점을 마련하기로 시도했다.

강유는 구안을 보내 위시에 성을 쌓게 시켰고, 내부 사정이 복잡했던 위군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니, 성이 완성되자 바로 주변 강족들이 모였고 이렇게 모인 전력으로 주변 위나라의 군들을 침범하기 시작한 것으로 묘사됐다.

그렇게 북벌 기반을 만들려하지만 진태가 국성을 공략하며 구안이 위기에 처하자 국성을 빼앗기면 다시 제로 베이스가 된다고 판단하여 구안을 구하러 향했다. 그러나 진태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그가 예상 이상으로 선전했고, 곽회가 자신들의 뒤를 치고자 진군하는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퇴군한다.

퇴군하면서 요화에게 기습을 지시하지만 등애의 대비로 실패하고 한중으로 돌아간다.

2.5. 합비신성 전투 ~ 적도 전투

합비신성 전투 편에서는 서평을 공략핟던 중 곽수를 사로잡고 곽수의 평판을 듣고서 곽수를 설득끝에 회유하는 데 성공하지만 곽수의 진짜 목적은 유선 암살에 있었고, 이를 실패하자 비의를 살해해버리면서 본의 아니게 강유가 비의의 죽음에 일조한 꼴이 되었다.

이후 진지와 강유가 내정과 외정을 분담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비의가 걸었던 1만 병력 운용 리미트가 풀리게 되어 강유가 적극적으로 북벌에 나섰다는 언급이 나왔고, 제갈각과 함께 양동 작전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유는 급하게 움직이느라 준비가 미흡한 상태였기에 진태가 군을 이끌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퇴군했다.

적도 전투 편에서는 요화에게 적도성에서 항복의 밀서가 전해져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요화는 너무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라 역으로 함정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장억이 이 밀서에 대한 신빙성이 있음을 전해주면서 출격을 결정했다. 거기다 곽회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희소식까지 있었던 까닭에 상황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했다.

그러나 적도에 도착하자마 서질의 지원군이 도착했고, 이 과정에서 군을 정비하기 위해 장억이 스스로 나서 서질군과 전투를 벌이고 서질에게 부상을 입히고 그의 부대에도 큰 피해를 입혔으나 장억은 전사한다. 강유는 장억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서질의 군을 박살내고 서질을 참한 뒤 적도와 농서 부근을 점령한다.

하지만 적도 부근에 방어 거점의 상황이 좋지 않음을 확인하고 급하게 데려온 적은 병력만으로는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농서의 백성들만을 데리고 퇴군한다.

2.6. 고관 전투 ~ 전투외편 5편

곽회와 사마사가 죽은 틈을 이용해 북벌을 개시. 장익이 이를 반대하지만 장익을 승진시킨 뒤 자신을 따라 종군하게 한다.

곽회가 죽은 덕분에 더 자유롭게 군을 운용하게 된 강유는 군을 세 곳으로 나눠 기산, 석영, 금성으로 진격시키며 왕경을 낚으려 시도한다. 하지만 왕경이 진태의 지시에 따라 대기하자 곧바로 포한까지 진격한다. 이에 왕경이 적도로 이동하여 자신을 견제하자 이를 무시하고 금성으로 진격한다. 왕경은 이를 보고 강유의 뒤를 치려하지만 사실 이는 페이크였고, 곧바로 강유는 군의 방향을 돌려 왕경의 부대를 박살내버린다.[7]

왕경은 결국 군을 잃고 적도에서 수성을 하게 되자 적도를 포위하려하는데, 장익이 더 이상 전투를 치루는 것은 승리를 퇴색할 수 있다고 말하며 적도를 포위하는 것을 반대한다. 하지만 강유는 적도를 점령하면 강족과 호인들을 규합해 전력을 증강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한다.[8]

하지만 진태의 지원군이 와서 고지를 점령했고, 이에 강유는 진태군을 토벌하려 했지만 산 밑에서 산 위를 공격하는 건 공성만큼이나 어려웠기에 죽을 쑤게 된다. 왕경도, 진태도 자리만 차지한채 움직이지 않았기에 붙을 수가 없어 답답해할 수밖에 없었고, 보급로를 차단하러 움직인다는 거짓 첩보를 접하자 결국 퇴군한다.

등애가 부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장군으로 승진했고 다시 북벌을 실행하는 모습이 나온다. 적도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며 기산으로 가지만 등애가 기산을 점거하고 있었고, 이에 동정에서 남안으로 가기 위해 무성산으로 가지만 등애의 정확한 판단에 막혀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9] 이에 강유는 호제와 양동을 통해 틈을 만들어 공격한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호제가 나타나지 않아 결국 퇴군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등애에게 뒤를 찔려 하후패를 비롯한 20명의 장수들이 전사하고 많은 병력들을 잃게 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나온다.

강유는 리더로서 판단을 잘못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하필이면 상대가 위나라로 따져도 역대급이었고 타이밍도 묘하게 꼬이는가 하면 호제와 같은 내부자의 삽질까지 곁들여져 실패하게 되었다고 묘사했다.

전투외편 5편에서는 결국 패전의 책임을 지고 대장군이 된 지 1년도 안 돼서 대장군직을 내려놓았다고 언급된다. 다만 여전히 강유가 촉의 최고 군사령관임에는 변화가 없었다. 외정 담당이었던 강유는 내정 담당이었던 진지와 기본적으로 큰 마찰은 없었다고 묘사되기도 했다.

2.7. 수춘2 전투 ~ 검각 전투

수춘2 전투 편에서는 제갈탄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낙곡 루트로 북벌을 진행[10]하지만 사마망의 수성에 막혔고[11], 제갈탄의 반란이 진압되자 퇴군한다.

전투외편 7편에서는 관직 자체는 강유가 진지보다 훨씬 높았지만 여러 이유[12]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은 진지보다 크지 않았다고 언급되었다. 거기다 계속되는 북벌 실패로 인해 중앙에서의 여론도 악화되자 강유 스스로도 중앙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끊은 것도 겹쳤다고 묘사됐다.

검각 전투 편에서는 262년경 한 차례의 북벌을 또 시도하지만 등애에게 깨지고 적대세력이 크게 늘고, 동료인 요화까지 강유를 비꼬았다는 언급이 나온다.

지속적인 북벌을 하는 자신의 견제를 위하여 제갈첨과 동궐의 묵인 하에 황호의 세력이 커지고 황호가 넘어가는 낙하산을 자신과 같은 대장군직에 올리려하자 황호를 숙청해야한다고 유선에게 건의하지만 거절당한다. 이후 강유는 생각보다 훨씬 커진 황호의 세력을 보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성도에 돌아오지 않고 북벌에만 매진했다고 언급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강유가 이렇게 북벌에 매달리는 이유 중 하나로 유선의 신임을 받아 북벌사령관로서의 위치를 굳건하게 해준 것도 있다고 묘사됐다.[13]

사마소가 종회와 등애를 앞세워 촉을 정벌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즈음, 청주와 서주의 병사들이 낙양으로 움직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최근 등애의 움직임도 자연스럽지 않았다고 생각한 뒤 형주를 공략할 생각이었다면 완이라는 군사거점이 있으니 낙양에 군을 집결시켰다는 것은 촉으로 쳐들어오는 것밖에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고, 유선에게 위군이 쳐들어온다며 이른바 플랜 B[14][15]를 발동해야한다고 서신을 보낸다. 하지만 이는 황호에 의해 저지되어 플랜 B의 발동이 늦어져 내려오는 위군에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

답중에서 등애와 대치하게 된 뒤[16][17], 왕기와 견홍의 파상공격을 받게 되고, 양흔의 부대까지 내려오자 후퇴를 결정한다. 하지만 양흔의 부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격해오자 타격을 입게 되고, 간신히 요화의 지원군 덕분에 위기를 넘긴다.

요화에게 관성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전달받아 관성으로 이동하려 했으나, 제갈서에게 포위당했다는 소식을 연이어 듣게 되었다. 이에 강유는 공함곡으로 우회하여 퇴군한다고 말하며 공함곡으로 향하지만 이는 페이크였고 제갈서가 자신을 막기 위해 공함곡으로 움직였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엄청난 기동속도로 교두를 돌파해 음평으로 향했다. 음평에서 장익과 만났으며, 장익에게 관성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관성으로 향해야겠다고 말했지만 장익에게서 관성은 이미 함락당했다는 비보를 전해들었다. 이에 강유는 더 이상 있다가는 재차 포위당할 수 있으니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음평을 버리고 검각에 병력을 집중시켰다.

장익과 합류해 검각에서 종회를 막던 중 제갈첨의 면죽이 뚫렸다는 소식을 듣고 검각을 떠나 성도로 향한다. 그러나...

2.8. 최후

성도 바로 옆의 처현에서 유선이 항복했다는 비보를 접하고 검을 바위에 내려치며 오열한 뒤 강유를 뒤쫓아오던 종회에게 투항한다.

그리고 이후 종회의 난때의 강유의 역할이 제대로 그려졌다.[18]

성도 전투 편에서는 종회에게 투항한 뒤 종회의 야심을 꿰뚫어보고 촉한을 재건할 생각으로 종회에게 찬사를 보낸 뒤 진지하게 패업을 도모하자고 제안한다. 이에 종회는 강유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종회의 신임을 받으며 관인과 부절을 받아 군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자 유선에게 촉한을 부흥시키겠다는 밀서를 보낸다.

이후 종회가 등애를 모함하여 낙양으로 압송시키자 종회를 따라 성도에 입성하고 장익과 일부 멸망한 촉한의 병력들을 흡수한다.

하지만 사마소가 움직였다는 사실에 다급해진 종회가 때 마침 죽은 태후의 유서를 위조하고 제장들을 성도로 불러모아 뜻에 동조할 이들과 동조하지 않을 이들을 구분한 뒤 동조하지 않을 이들을 구금한다. 이에 강유는 그들을 죽여야한다고 진언하지만 유일하게 표면적으로 동조한 위관이 합리적인 이유로 반대하자 무산되고, 결국 구금된 제장중 하나인 호열의 아들 호연이 움직이게 되고, 위관이 각 제장의 본진에 격문을 보내자 사방에서 위군이 종회를 공격하기 위해 몰려들게 된다. 멘붕한 종회가 어찌해야할지 묻자

"적이 오면 격퇴할 뿐"이라고 말한 뒤 입고 있던 위군의 갑옷을 찢고 그 안에 입고 있던 촉군의 갑옷을 입은 채 쳐들어 오는 토벌군에 대적.

파일:bjQitzV.png

"덤벼라 위군의 개들아!!!"라고 소리치며 위군과 맞서며 마무리된다. 그야말로 간지폭풍의 사망씬...

사망 이후 성도에서 대학살이 벌어지면서 강유의 일족이 전멸했다고 언급되기도 했다.

3. 작중 묘사

촉한의 마지막 희망

1만 명이라는 병력 운용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위군을 흔들기 위해 노력하고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행동에 나서지만 곽회, 진태에게 격퇴되거나 이후에는 등애에게 패배하는 등 전적은 매우 좋지 않게 그려진다. 그러나 강유의 실패는 강유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당시 그가 상대했던 위나라의 장수들이 너무 역대급이었고, 그가 돌아가고 나서야 위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운이 따르지 않거나, 호제 같은 내부자가 제대로 호응을 안 해서 그런 것이라고 대변해 주었다.

촉한의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존재이지만 정치적인 능력보다는 북벌에 미친듯이 집중하는 야전 사령관으로서의 군사적인 능력이 부각된다. 후자는 유머러스하게 표현되는 편이다. 노름에 빠진 도박중독자로 묘사된다던지...

한중을 미끼로 놓은 방어 전략에 대해서도 상당히 효율적이고 고단수의 작전이며 사생결단을 내는 위험한 것도 아니었다고 평할 정도로 작가는 강유의 전략에 대해 좋게 평가하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초중반까지는 상당히 강유에 대해 박하게 이미지가 잡힌다. 제갈량의 유언을 신빙성도 없는 위략에서 따온 것이나, 비의의 죽음에 쓸데없는 말 한마디를 더 한다거나, 암살 위험 등 실제적인 위험에 대해서도 히키코모리 처럼 박혔다고 묘사 한다거나. 밖으로도 강유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등애를 높이 평가하거나 초주를 단순한 매국노로 볼 수는 없다는 등의 언급도 하였다.

그런데 이러했던 평가가 검각 전투에서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 사람들이 주로 까는 새로운 방어전략에 대해서도 호평하였으며, 강유의 행적 하나하나를 아주 멋지게 표현해준다, 역시 외부적으로도 등애는 변함 없지만 초주의 경우는 단순한 매국노로 볼 수 없다는 자신의 말이 무색하게 그냥 이기주의자로 만들어 버렸다.

작가의 심상의 변화에 대해 궁금해 질 정도로 이 시점에서 다수의 인물들의 이미지가 완전 변했다.

이에 대해선 워낙 장편이다보니 계속 사료를 보고 구상하는 과정에서 인식이 변했다는 추측이 우세하다. 조비를 비롯해 처음 소개한 것과 다르게 묘사되어간 캐릭터가 왕왕 있기 때문.

4. 명대사

"적이 오면 격퇴할뿐. 덤벼라!!! 위군의 개들아!!!"

5. 여담

강유의 사망씬은 삼국전투기에서 가장 임팩트 강한 사망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외에 명장면은 관우, 조조 ,이통가 있다.


[1] 갸루상으로 등장한다.[2] 그러니까 천수를 비롯한 서량의 일부 지역이 촉에 항복할 생각을 하고 강유를 사절로 보냈는데, 마속의 삽질로 전황이 촉군에 불리하게 흘러가니까 재빠르게 손절을 결정하고, 그 와중에 자신들이 촉에 붙으려고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발각될까 봐 사절로 보냈던 강유마저 손절한 것이다. 강유는 자신이 돌아가지 말아야 진상을 묻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귀향을 포기, 촉에 귀순한 것이고. 직후 서량 원로들이 "미안하네, 강유. 허나 자네 가족들만큼은 우리가 돌봐줄 터이니 안심하고 귀순하게."라고 한다.[3] 위략의 기록을 따라 제갈양의 유언을 그렸기 때문에, 여기서의 강유는 제갈량의 유언과 다른 방향으로 행동한다. 그런데 위략은 정사에 주석으로 인용된 부분을 제외하면 신뢰성 낮기로 유명한 사서이며, 해당 부분은 배송지가 따로 반박까지 할 정도로 신뢰성이 제로에 가까운 부분이다.[4] 게다가 제갈량이 정말 저런 유언을 남겼다면 제갈량의 정치적 후계자인 장완이 죽기 직전까지 북벌을 계획했던 부분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5] 위시에는 곽회뿐만 아니라 촉을 견제하기 위해 사전에 배치됐던 하후패도 있었다. 그 둘을 합치면 당시 서량에 있는 위군 병력의 거의 전부인데, 그에 반해 강유는 상술했듯 병사 1만 리미트가 걸려 있었다. 병력에서 상대가 안 되던 것.[6] 위의 대촉방면 에이스가 투항한 것만으로도 호재인데, 거기다 하후패는 당시 우장군 겸 위시의 수비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하후패가 투항하며 위시에 공백이 생겨 위시 근처에 거점을 만드는 걸 시도할 수 있었다.[7] 본편에서는 간단하게 지나가서 그냥 강유 1승 추가 정도로만 보여지지만 사실 이 때 강유의 승리는 상상 이상의 대승으로 여차하면 옹주 전체가 촉에게 넘어갈 수도 있었던 대사건이었다.[8] 강유도 장익의 의견을 어느정도 이해는 하고 있으나 적도의 물자가 거의 없다는 점을 들어 강행한다.[9] 차라리 막강한 전투력으로 후드려팰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언제나 위군이 먼저 와서 요지를 점하고 있었기에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고 묘사되었다.[10] 본디 지형 때문에 낙곡으로 진격하는 것은 평소대로라면 좋지 않은 선택이지만 마침 낙곡 끝지점의 장성에 군량이 많이 보관되어 있고, 거기에 더해 수비가 허술하다는 첩보를 받으면서 그리로 움직이기로 한 것. 심지어 장성을 수성하던 인물은 전투 경험이 거의 없는 낙하산이었다.[11] 하필이면 성 앞에 강이 있어 무작정 공성을 시도할 수도 없었다.[12] 황제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 주된 근무지의 위치, 실제적인 업무 실적.[13] 이에 따르면 강유의 북벌엔 유선의 의중이 끼어 있었을 수도 있다고 해석이 된다.[14] 과거 유비가 군주이던 시절, 한중의 주요 길목에 군을 배치했던 것과 달리 평시(플랜A)에는 한중을 비워놓은 상태지만, 플랜B에서는 양평과 양안에 병력을 집중 배치하여 위군이 험한 길목을 지나 지친 상태로 한중의 평야로 오면 양평과 양안의 주력군으로 일거에 위군을 공격해 섬멸한다는 내용이다. 넘어올때는 아무 저항 없이 왔지만 지세가 험준하여 되돌아가는 건 어렵기 때문에 이론대로라면 적을 완전히 섬멸시킬 수 있다. 입출구(자오곡, 야곡, 낙곡 등)가 좁은 한중이기에 사용 가능한 작전.[15] 이전 한중을 지키던 장익과 요화는 이렇게 강유가 한중 수비전략을 바꾸면서 평시(플랜A)에는 가맹 옆인 한수에서 대기하다 플랜B가 되면 장익은 관성에서, 요화는 음평에서 대기하는 스탠스를 취하게 됐다고도 묘사된다. 이 둘이 굳이 한수에서 대기하는 이유는 한중방면뿐 아니라 성도, 파서 등 어느 쪽으로도 대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묘사되었다.[16] 답중에서 등애와 대치하는 장면부터 강유에게 턱수염이 생긴다. 사실 바로 직전 장면까지 북벌에 몰두하는 폐인모드로 일관하고 있었기에 수염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었는데, 그 와중에 갑작스레 적이 침공하니 급하게 콧수염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17] 대놓고 한중이고 관성이고 다 뚫리고 있었지만 강유는 계속 서쪽 구석탱이인 답중에 처박혀 있었다. 이는 강유가 관성이 뚫렸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등애만 막으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이라 인식하고 있었기에 그런 것이었다고 묘사되었고, 등애도 강유와 거의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18] 삼국지연의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국내에서 종회의 난까지 조루 없이 스토리를 진행하는데 성공한건 삼국전투기가 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