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T-80의 실전 기록을 정리한 문서.2. 8월 쿠데타
8월 쿠데타 당시의 소련 육군 제4근위전차사단 소속 T-80UD |
3.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국회의사당에 포격을 가하는 제4근위전차사단 소속 T-80UD |
4. 체첸 사태
제2차 체첸 전쟁 당시 체첸군을 향해 중기관총을 발사하는 러시아 육군 소속 T-80BV |
비록 1차 체첸 분쟁에서의 총체적인 실패는 개별 무기체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소련 붕괴 여파 때문이지만, 이때의 실패는 T-80 계열의 프리미엄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T-72 계열의 우랄열차공장이 유일한 차기 러시아 주력전차 생산자로 지정되는 결과에 기여했다. 물론 T-72라고 훨신 우월한 성과를 낸 것은 아니기에 크게 보면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고 일설에 따르면 오히려 1991년 쿠테타 당시 T-80UD를 운영한 칸테미롭스카야 사단이 소련 보수파 측에 붙으면서 옐친의 눈에 띄었고, 이는 훗날 정권을 잡은 옐친이 정치적 보복으로 우랄바곤자보드를 대신 밀어준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3]는 내용도 있지만 애초에 1980년대 소련 시절부터 가스터빈 엔진의 비싼 가격 때문에 물량 양산이 안된다는 보고서가 쏟아져 나왔고 이에 따라 하리코프가 T-80U 대신 T-80UD 같은 디젤엔진 전차를 만들 수도 있었기 때문에 소련이 쪼개지며 우크라이나의 하리코프가 떨어져나간 이후 돈이 없던 러시아로서는 어쨌건 T-90을 뽑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2차 체첸-러시아 전쟁에서는 1차 전쟁의 작전실패를 본보기로 삼아 폭발반응장갑을 충실히 장착했으며 보병부대 등과 충분한 협동[4]아래 고속기동을 하며 적과 맞서서 피해를 줄이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5. 돈바스 전쟁
6.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도네츠크주에서의 러시아 해군 제155해군보병여단 소속 T-80BV "로시야" |
우크라이나 육군 T-80BVM "Bunny" |
이 전쟁에서 확인된 첫번째 전차 에이스도 T-80이 배출했다. 주인공은 하르키우 방면에서 우크라아나 육군 제93기계화여단에게 T-80BVM "BUNNY".[5]# BUNNY는 이듬해 2023년까지 건재하게 살아남아 활약하다 4월 바흐무트에서 진창에 빠지자 자폭처리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차 지휘관 인터뷰에 의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차 통틀어 가장 방호력이 우수한 기종이 T-80BVM이고, 2번째가 T-90A, 3번째가 T-72B3 계열 이라고 한다.#
노획한 T-80BVM을 운용하는 우크라이나 승무원들의 평가는 호평 일색이다. 강한 화력과 넓은 시야, 최대 80km까지 올라가는 고출력 가스터빈 엔진이 제공하는 빠른 속력과 조작 편의성을 겸비해 먼저 도착해서, 쏘고, 즉히 이탈할 수 있다며 매우 강력한 차량(Very powerful vehicle)이라는 극찬을 내렸다.# 우크라이나 전차병들이 꼽은 단점은 연비뿐이었다.[6]
7. 바그너 그룹 반란
바그너 그룹 소속 T-80BV "시비리" |
[1] 옐친의 민영화 정책으로 물가가 폭등하고 복지 시스템이 박살나자 러시아 공산당은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지지 세력을 모았다.[2] 이 부분이 애초에 T-72가 케로젤 장전기를 채택한 이유중 하나였다. T-64와 T-80의 코르지나는 장약을 세워두기 때문에 자동장전기가 차지하는 면적이 더 넓고 유사시 차체의 운전수와 포탑의 전차장/포수가 전차 내에서 서로 돕는 것도 매우 어려웠는데 케로젤은 이 부분에서 코르지나보다 더 안전하다.[3] 일례에도 T-80 전차를 개발한 키로프 공장은 니키타 흐루쇼프 시절에도 T-10 중전차 양산에 관해 정치적으로 보복을 받은 적이 있었다. 키로프 공장 전차 설계국장 및 T-10 수석 설계자인 조제프 코틴은 정치적으로 라브렌티 베리야의 후원을 받고 있었고, 나중에 흐루쇼프가 정권을 잡으면서 이전에 자신의 정적이던 베리야가 밀어주던 키로프 공장과 ChTZ를 눈엣가시로 보고 고의로 T-10 양산을 중지시키는 등 보복을 가했다.[4] 제병과 연합.[5]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것을 노획한 것이다.[6] 물론 이는 가스터빈 엔진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