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10-02 13:32:16

MIU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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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과거 북파공작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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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틀: 대한민국 군의 특수첩보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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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상륙공작대[1]
大韓民國海兵隊 北派特殊工作隊
Marine Intelligence Unit
[참고]
파일:MIU.png
모조리 죽여라, 심판은 신께 맡기고
KILL'EM ALL, LET GOD SORT'EM OUT
<colbgcolor=#cc101f><colcolor=#ffcc00> 창설년도 1968년
해체년도 1975년(추정)
상징명칭 해병대 북파특수공작대
별칭 해병대 특수공작대
마니산 까치부대
소속 대한민국 해병대
상급부대 해병대사령부(추정)
해군 예하 (해병대 해군 통합 이후)
역할 북파공작
후신격 부대[3] 812망치부대
해병대 특수수색대[4]

1. 개요2. 창설과 해체
2.1. 812망치부대

1. 개요

해병대 첩보부대(Marine Intelligence Unit, MIU[5]), 통칭 '마니산 까치부대'는 1.21 사태 이후 대북응징보복을 목적으로 창설된 해병대 내의 북파공작부대였다. 1973년에 해병대가 사령부 해체로 인해 해군과 강제로 통합된 시절엔 'UDU 제3부대'라는 명칭을 썼다. MIU가 해체된 뒤 해병대에는 그 후신격으로 대북 특수작전 부대인 '812 망치부대'가 새로 창설됐다.
파일:2758814352462A5E088B12.jpg
훈련 받는 해병 북파 공작원들

2. 창설과 해체

1968년, 북한 공비들이 청와대 코앞까지 뚫고 들어오는 1.21사건이 벌어지자 한국의 수뇌부는 분노했다. 이에 대한 응징보복을 위해 중앙정보부장[6]은 대한민국 국군에게 대북 응징보복부대를 만들 것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육해공군은 각기 응징보복부대들을 긴급하게 창설했고, 해병대 또한 까치부대라는 응징보복부대를 만들게 되었다.[7]

영화 실미도로도 유명한 "실미도 부대"(684부대)는 공군 첩보부대(AISU) 소속이었고, "선갑도 부대"는 육군 첩보부대(HID) 소속, "장봉도 부대"는 해군 첩보부대(UDU) 소속, 그리고 "마니산 까치부대"는 해병대 산하의 첩보부대였다.

MIU는 해병대 수색대 출신 하사관들을 중심으로 인원을 선발하여 창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MIU가 기존의 해병대의 수색, 특수임무 역량을 활용하여 별도의 대북 공작부대로 조직화된 것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며 이들이 단순히 대북 보복 작전만을 목표로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북 보복 부대들은 당초 1968년 후반기로 예정되어 있던 보복 작전투입 계획이 갑자기 취소됐고, 그 뒤로도 이 작전이 잠정 연기된 건지 완전히 취소된 건지 아무런 지시도 상부로부터 못 받고 그저 시간만 흘러갔다.

이후 감정적인 상호 보복보다는 남북대화와 화해 쪽으로 가야 한다는 대북정책으로 기류가 완전히 바뀌면서, 응징보복부대들[8]은 사실상 버려지거나 방치된 채 군 수뇌부로부터 점점 잊혀져 갔다. 이후 MIU 같은 기존 군인들로 이루어진 부대가 아닌 684, 선갑도, 장봉도 부대들은 아무 기약없이 몇 년째 계속 대기만 하고 있는 상태에서 기본적인 지원도 점점 줄어들어갔고 이후 684부대가 처우의 불만을 갖고 반란을 일으킨뒤 대북 응징 부대들은 줄줄이 해체되기 시작했으나 MIU는 현역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별 문제가 없었는지 한동안 계속 존속되었고 이들이 정확히 무슨 임무를 맞을 예정이었는지 행적이 어땠는지에 대한 기록은 희미하다.

이들은 다른 급조된 부대들과 달리 해병 수색대 출신 하사관들이 주축이 되어 창설된만큼 단순 일회성 부대나 보여주기식 부대로 보긴 어려우며 창설 이후에도 추가 인원을 선발하여 보충했다는 증언이 있어 단순 버림패로 보긴 어렵다. 해병대사령부 해체 및 해군 통합 이후의 행적은 불분명하며, 1970년대 중반경 해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2.1. 812망치부대

파일:247D894C580737091A.jpg
해병대 제812 망치부대

1980년대 이후 북한의 각종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해병북파공작대를 재창설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MIU의 후신격인 812망치부대다. 상륙공작대 자체가 응징보복부대 성격이었던 만큼 그 후신격답게 자살특공대식의 무모한 임무를 맡았으며 이쪽은 MIU보다 대북 보복과 응징에 더 초점을 둔 부대로 알려져 있다. 까치부대와 마찬가지로 해병대 내에서 우수 자원들을 선발하여 약 2년간 훈련시켰다고 한다.


[1] 국가 기록원이 기록한 공식 명칭[참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영문명이지만 공식적인 풀네임은 아니다.[3] 후신임이 확인된 것은 아니며, 임무·인력·특수수색 계통의 연속성을 근거로 후신격으로 분류한다.[4] 1980년대 기존에 수색대가 아닌 특수수색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면서 수색대가 현재의 특수수색대처럼 해병대의 특수전 전력으로도 기능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볼 수 있으며 시기상 MIU의 해체 이후 얼마 안 된 시점이며 MIU 구성원들이 해병 수색대 출신들이 많았던 만큼 특수수색대 창설에 영향을 줬다고도 볼 수 있다.[5] Mission Impossible Unit이라고 하는 이도 있는데, 당연히 먼 훗날에 나온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힌트를 얻어 멋내기의 의미에서 출신자가 후대에 유머러스하게 갖다붙인 명칭이다.[6] 현재의 국가정보원장에 해당하지만 그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자였다.[7] 다만 해병대는 이전부터 실전경험이 풍부했고 6.25 때는 도서지역을 점령해 유격활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했으며 베트남전에서는 미군과 전술 교류도 이루어진 만큼 684부대 같은 급조한 부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오히려 급증한 특수전 수요를 채우기 위해 기존에 수색대의 형태로 흩어져 있던 특수전 전력들과 전쟁 때부터 지닌 독자적인 정보수집 역량을 조직화하여 북파공작부대로 발전시킨 것으로도 볼 수 있다.[8] 실미도부대, 선갑도부대, 장봉도부대